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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열이 만난 사람/내가 본 독설人

최시중 위원장에게 꼭 전달되어야 할 편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19.

이기명  vs 최시중


이명박 정부의 방송 및 언론 장악 문제와 관련해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인물은 바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다. 그가 일련의 방송 및 언론 장악 작업의 기획자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국정 수습책으로 청와대 수석진의 대폭 교체를 발표하자 야당과 시민단체는 먼저 최시중 위원장부터 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꼭 한 달 전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 라디오21 회장을 저녁 자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리가 끝날 무렵 한 일간지 논설위원 선배가 합류했는데, 이 회장에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글을 한번 써야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최 위원장이 KBS 정연주 사장을 퇴진시키기 위해 역할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던 무렵이었다.


옆에서 듣자니, 말이 되는 이야기 같았다. 이 회장은 최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했다. 이 회장도 노무현 정부 당시 방송위원장 일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했다. 방송작가 일을 오래했던 그가 신문기자와 리서치회사 대표만 했던 최 위원장보다는 방송에 대해서는 전문가였다.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해 보였다.


살짝 숟가락을 얹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음날 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시사IN>에 그 내용을 기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회장은 흔쾌히 승낙하고 다음날로 원고를 보내왔다. 편지 형식의 완곡한 글이었지만, 내용만은 의표를 찌르고 있었다. 이 편지는 <시사IN> 38호에 게재되었다.


이 회장이 주장하는 바는 간단했다. 물러나라. 물러나는 것이 예의다. 그리고 물러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버티면 버틸수록 이 대통령에게 해가 될 뿐이다. 물러나고 집에서 손주 손녀 재롱이나 보자.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최시중 위원장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최 위원장이 보이는 행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다. 그만큼 그가 방송 및 언론 장악을 위해 활동반경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언론사에 길이 남을 ‘악업’을 행하지 않고 이기명 회장의 충고대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를 다시 전달한다. 원문 그대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기명(왼쪽)  vs  최시중(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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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방송통신위원장님’께.


인사도 없는 처지에 공개적인 글을 씁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최시중 하면 사람들 입에 하도 오르내려서 속도 많이 상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좋던 그르던 입에 오르내리게 되어 있으니 유명세를 치른다고 생각하십시오.


다만 속이 상해도 남들이 하는 말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만은 생각하셔야 된다고 믿습니다.


최시중 위원장을 멘토(후견인)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후견인이라고 합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십니까. 그럴 만합니다. 한 인간을 대통령이란 자리에 오르게 한 후견인이라면 대단한 영광일 수 있습니다. 그게 어디 보통 일입니까.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고 하는데 후견인이 되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처럼 온 국민이 인정하는 대통령의 후견인이라는 영광과 영예, 그러나 실은 자칫 오명을 남기기 쉬운 ‘상처뿐인 영광’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생각이 모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미 위원장은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자주 드는 비유입니다만 욕을 자주 먹다보면 면역이 됩니다. 마음대로 하라는 자포자기에 빠지기 쉽습니다. 유치하지만 ‘이왕에 버린 몸’이라는 심정이 된다는 것이죠.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는 버팀목과 바람막이가 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위원장께서 해야 할 일은 그냥 조용히 사는 것입니다. 저나 당신이나 이제 70 고개를 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위원장께서 하신 그 많은 말씀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전혀 영양가 없는 말씀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게 KBS 때문이라는 주장을 어느 누가 이해해 줍니까. KBS와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는 주장을 멀쩡한 정신 가진 사람이 어떻게 믿을까요.


저는 대통령의 멘토(후견인)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방송관련의 일이라면 위원장님 보다는 좀 더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위원장이야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했으니 정치는 많이 알겠지만 방송이야 좀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요즘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의 인기하락이 KBS 정연주 사장 탓이라는 말을 듣고는 이 양반이 정말 방송을 모르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쑥스러운 말이지만 저도 참여정부 초기에 방송위원장을 해 보면 어떠냐는 권유를 주위에서 받았죠. 생각해 봤습니다. 헌데 아무래도 그게 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방송위원장 자리에 앉으면 내가 후원회장으로 있던 대통령에 대해서 방송이 좋게 해 주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바로 공정성의 문제입니다. 사람이기에 공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도 있죠. 그러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일체 귀를 닫았습니다. 속이 편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최시중 위원장님.


혹시 지금의 KBS를 5공 때나 전두환 시절의 KBS로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닌가요. 그저 찍어 누르면 순한 양처럼 말 잘 듣는 그런 KBS로 아시나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긴 세월에 세상 변한 줄을 아셔야 합니다.


대통령과 가까웠던 사람, 남들이 멘토라고 할 정도의 측근이라면 그저 조용히 있는 게 대통령을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가만히 있으면 오해는 사라집니다. 괜히 나대다가 욕보는 것 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변변치 않은 제 경험입니다만 대통령 측근이라면 가만히 있어도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권력주변에는 어슬렁거리면서 뭔가 주워 먹을 권력부스러기라도 있나 눈이 벌건 군상들이 많습니다. 제가 아는 언론인이 그 중에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어쩌겠습니까. 이제 위원장님이 잘 가려내야죠.


솔직히 목이라도 바칠 것처럼 설치지만 그거 거짓입니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처신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떨어져 나갑니다. 저 인간 영양가도 없으니 편히 살다가 죽게 내버려 두자.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죠. 제 경우 사실입니다.


솔직히 위원장께서 조용히 있지 않은 탓에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국회출석도 거부하고 전천후 요격기나‘올 라운드 플레이어’로 이것저것 다 참견을 한다는 평가인데, 말도 많던 탈도 많았던 내각구성이나 청와대 수석비서들 인선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누가 믿겠습니까.


이제 방통위원장이 되어 KBS 사장 쫓아내는데 열과 성을 다 하고 있으니 천성이 저런 분이구나 오해를 사도 할 말이 없게 됐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김금수 KBS 이사장에게 정연주 사장 퇴진시키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으니 김금수 이사장의 속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친구지간에 격의 없이 한 소리라고 변명을 했지만 방통위원장과 KBS이사장과는 정말 할 소리와 못 할 소리가 있다는 것은 너무 잘 아실 것입니다.


KBS와 MBC는 민주언론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KBS와 MBC의 구성원들은 결단코 정부의 언론장악 기도에 무릎 꿇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 살벌하고 야만적인 독재정권 아래서도 감옥에 가면서 언론민주와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자존심을 가진 조직원들입니다.


저는 KBS민주광장에서 MBC 앞마당에서 눈물 가득히 고인 채 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던 젊은 언론인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위원장님.


이제 우리는 인생을 정리할 나이가 됐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는 손녀딸이 촛불 시위에 참가한 후 지친 몸으로 돌아 온 모습을 보며 이놈의 세상이 왜 너희들 까지 거리고 내 몰고 있느냐고 한탄을 했습니다. 이제 위원장님이 정말로 하실 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워원장님은 이명박 대통령 주위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권위도 있고 또 후견인으로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위치에 있습니다. 위원장님이 하실 일은 KBS의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데 앞 장 설 것이 아니라 언론 탓 하면서 제 할 일 모르는 대변인이나 신재민 차관 같은 사람들 불러 일 좀 제대로 하라고 따끔하게 야단치시고 가끔 대통령 만나서 조촐한 저녁상이나 드시는 게 좋습니다. 당연히 방송통신위원장은 그만 두셔야죠.


위원장님이 매일 언론에 나올 때 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혹시 나는 참여정부 5년간에 욕먹을 짓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봅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주위의 평가 때문에 할 말도 못하고 할 일도 못하면서 죽어지낸 게 좀 억울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바로 대통령 측근이 해야 할 처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대통령도 저도 그래서 서로 편하게 지냅니다. 끝으로 위원장께서 방통위원장 자리를 사퇴하신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소나마 오를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위원장님. 격무에 건강 조심하십시오.


2008년 5월23일


이기명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