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썼던, '박원순 리더십'에 대한 글을 조금 수정해서 올립니다.)
지난해 서울시립대를 졸업한 기명성씨(25)는 전형적인 ‘박원순 키드’다. 병역을 마치고 복학해서 서울시의 ‘반값등록금’ 혜택을 누렸다. 서울시의 ‘주민참여예산제도’ 주민위원으로 참여해 500억원의 서울시 예산을 배분하는 데에도 참여했다. 교통 중심지에 난립하는 버스 정류장에 기호와 숫자를 표기해 혼란을 줄이자는 아이디어를 ‘시정연구논문대회’에 내서 수상했고, 서울시의 미래계획을 구상하는 ‘2030 서울플랜’ 거버넌스의 시민위원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그에게 박원순 시장은 박 시장이 선거 때 내세운 구호처럼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었다.
그러나 기씨의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서울시민은 박원순 시장의 성과를 체험하지 못한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하거나 버스 노선을 개편하거나 디자인도시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등 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전임 시장들처럼 대형 사업을 추진하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전체적으로는 “그냥 열심히, 잘하고 있는 것 같다”라는 수준의 평이 나온다.
하지만 서울시에서 기관에 의뢰해 파악한 박원순 시장의 시정 운영에 대한 서울시민의 평가는 체감지수보다 높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60% 초반대로, 50% 후반대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앞선다. 게다가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할 의지를 내비치고 있고 차기 대선주자로도 언급되는 까닭에, 민주당 처지에서는 박 시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다. 특히 그간 박 시장이 보여준 독특한 리더십 때문에 민주당의 ‘무능’과 ‘불통 정당’ ‘이념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켜줄 카드로 관심을 모은다.
홈런보다는 출루율이 높은 타자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시장은 기존 정치인들과 리더십 모형이 다르다. 비유하자면 그는 홈런 타자가 아니라 안타를 치든 볼넷을 고르든 어떻게든 출루하는, 출루율이 높은 타자다. 개인의 스타성이 높기보다 팀 공헌도가 큰 선수다. 한 방을 노리는 사냥꾼이 아니라 농사꾼처럼 차근차근 깨알같이 일구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면서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만들어내며 시민운동사를 다시 썼다.
시민운동가 리더십이 시장 리더십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단체장들과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결과보다 과정, 느림을 지향한다 △서울이 대한민국, 서울 밖을 고민한다 △개발은 그만, 랜드마크를 만들지 않는다 △홍보보다 소통, 시장의 마이크를 빌려준다 △온라인은 충분, 오프라인을 고민한다 △서울시 공무원은 파트너, 시정은 개혁 대상이 아니다 △시장은 리더가 아닌 컨설턴트이고 코디네이터다, 라는 식이다. 일종의 역발상 리더십인 셈이다.
시민운동가 시절 박 시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였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이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아가서 묻고 토론하고 기록했다. 현장을 방문할 때는 손바닥 크기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하나하나 찍었고 간담회를 할 때면 노트북을 펴놓고 직접 기록했다. 그렇게 기록한 내용은 그날그날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그 내용을 세미나나 토론회 자리에서 발표했고 묶어서 책으로 펴냈다.
@ 답은 현장에 있다
박 시장은 보고 들은 바를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길쌈을 해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천을 만들고 그 천으로 옷을 만들듯이, 보고 들은 바를 묶어내어 반드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결심하기 전 결행한 백두대간 종주 때도 매일 일기를 썼다. 심지어 탈진 직전에는 ‘어, 정신이 혼미하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렇게 기록한 종주일기가 이번에 묶여서 <희망을 걷다>라는 책으로 나왔다.
현장을 중시하는 박 시장은 서울시장이 되어서도 현장 목소리에 주목했다. 그가 서울시에 도입한 ‘청책회(聽策會)’가 상징적이다. 이슈가 되는 현안과 관련해 이해 당사자와 시민 그리고 시청 공무원을 전부 모아놓고 각자의 소리를 듣는 행사인데, 주요 현안은 반드시 이 청책회를 거치도록 했다. 시장은 주로 듣는 쪽이고 당사자들이 직접 발언하게 했다. 발언의 방식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나 질문이 아니라 발표 형식을 취하게 했다.
청책회에서도 박 시장은 깨알같이 기록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담당 과장이나 국장에게 의문이 가는 사항을 묻고 기존 정책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메일을 보낸다. 그런데 이때 오가는 내용이 무척 방대하다. 한 서울시 간부는 “청책회를 마치면 보통 100여 항목 내외의 질문을 담은 메일이 시장으로부터 온다. 엄청난 숙제가 떨어지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소통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박 시장은 단지 어떻게 된 내용인지 알고 싶어서 보낸 메일인데 담당 공무원은 문제 추궁이라고 생각하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하고, 때로는 박 시장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안한 내용을 ‘시장 지시 사항’으로 받아들여 실행 방안을 짜느라 골머리를 앓는다는 것이다.
@ 시장은 리더가 아니라 컨설턴트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박 시장의 역할을 ‘지시자’가 아니라 ‘컨설턴트’로 규정했다. 그는 “시민단체에 있을 때 지방자치단체에 컨설팅을 많이 한 경험이 시정에서도 나타난다. 지시를 이행했는지 여부보다 함께 토론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 된 다음에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슈를 다룰 때 중요시하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그 이슈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토론은 박원순 시정의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박 시장의 집무실에는 파일이 수백 개 있다. 씨줄과 날줄이 만나서 형성된 이슈의 덩어리들이다. 이 파일의 특징은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시 동물정책’이 아니라 ‘제돌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식이다. 법률가로서 동물권에 대한 논문을 냈던 문제의식부터 제돌이의 성공적인 방사를 위한 방안, 그리고 문제의식을 확장해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으로 바꾸기 위한 아이디어까지 담아내고, 마지막으로 ‘동물이 행복한 도시, 서울’이라는 카피로 끝을 맺는다.
@ 서울 밖을 고민하라
다양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가끔은 서울시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원전 하나 줄이기’가 대표적이다. 박 시장은 원전 감소 의제를 서울시에 에너지 절약 화두로 끌고 왔다. 옥탑방에 사는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를 면담한 후에는 보훈정책을 모색하기 위해 보훈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서울시가 고민할 범위를 넘어선다 할지라도 시민의 삶과 관련이 있다 싶으면 과감히 이슈에 뛰어든다.
이렇게 오지랖은 넓지만 조급하지는 않다. 폭우나 폭설이 올 때 박 시장은 트위터로 신속한 처리를 진두지휘한다. 이때는 속도가 중요하다. 그러나 박 시장은 전반적으로 느림의 행정을 지향한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은 다음에는 이슈를 묵히는, ‘숙의’ 과정을 거친다. 이때는 시민사회의 힘을 빌려서 민관 협치 모형인 ‘거버넌스’ 형태로 논의한다. 서울시 정책 담당자와 시민사회 활동가,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 인식을 공유하고 해결안에 대해서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시 행정에 시어머니가 생기는 셈이어서 서울시 공무원들이 달가워하지 않는 모형이지만 박 시장은 이 과정을 중시한다. 박 시장은 “머리를 맞대면 방법이 나온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숙의의 결과였다”라고 말했다.
@ 해야 할 일만큼, 하지 말아야 할 일도 고민한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보통 서울시가 결정한 사업은 서울시 의회의 승인을 거쳐 예산을 배정받아 시행되는데,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서는 하나 더 거치는 과정이 있다. 규모가 있는 사업의 경우 서울연구원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에 타당성 검토를 요청한다. 박 시장은 이 센터를 설치하며 “시정 성과를 내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세금을 아끼는 것에 주목하기 바란다. 시장이 하려는 일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노’를 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런 논의 구조에서 전임 시장과 확실한 차이가 난다. 전임 시장들은 시장이 결정한 사업을 어떻게 잘 시행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구조로 조직을 편성했다. 반면 박 시장은 사업을 할지 말지를 신중히 결정할 수 있는 쪽으로 조직을 재편했다. 여기서 전제될 것은 시장이 치적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박 시장은 이 부분이 확실하다. 서울시장이 몇 개의 치적 사업에 집중하게 되면 시민의 삶에는 신경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슬로건은 ‘No More Landmark’이다.
서울시민이 박 시장이 잘한 사업으로 꼽는 것은 △낭비성 보도블록 교체 금지 △9호선 요금인상 저지 △서울시 채무 1조2000억원 감축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실시 등이다. 그리고 박 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민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소통’은 ‘현장’과 함께 박 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데 리더의 소통과 관련해 박 시장은 하나의 전범을 보여주었다.
@ 온라인 소통의 달인, 오프라인 소통을 고민하다
박 시장의 소통과 관련해서 주목할 것은 SNS 활용 방식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막대한 예산을 SNS 홍보에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소통하지 않았다. 반면 박 시장은 본인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직접 활용해 소통한다. 트위터 팔로어는 66만명이 넘고 페이스북 친구는 15만명이 넘는다. 국내 정치인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양이 아니라 소통의 질이다. 다른 정치인은 대부분 트위터를 쌍방향 소통 정도로 이해한다. 많이 들어주고 많이 답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박원순 시장은 트위터를 정보의 생산·유통·소비가 함께 이뤄지는 ‘3방향 소통’의 미디어로 이해한다. 그래서 많이 듣고 많이 답하는 것 외에 많이 전하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시민의 목소리를 공무원에게 전달하고 공무원의 답을 시민에게 들려준다. 이 과정이 시민들에게 ‘우리를 대변해준다’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박 시장이 SNS를 이용하는 방식을 보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완전히 다르다. 트위터가 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서 서울시 공무원에게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면, 페이스북에는 좀 더 정리된 생각의 덩어리를 올려서 알리는 데 주목한다. 트위터에 올리는 글이 단문이라면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은 중문 정도 되는데 미디어의 성격에 맞게 활용하는 셈이다. 박 시장의 페이스북 글 중에는 1만 회 이상의 ‘좋아요’ 클릭을 받은 글이 부지기수다.
서울시는 이제 오프라인 소통 방식에 주목한다. 온라인과 모바일 소통은 시장이 직접 하고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니 이런 미디어를 이용하지 않는 시민과 만날 방식을 궁리하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와는 방향이 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박원순 리더십은 '위키피디아 리더십'
이런 박 시장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위키피디아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함께 만들어가는 백과사전이다. 시정에 대한 정보를 개방(서울시는 정보개방 비율이 99%에 이른다)하고 시민이 시정에 직접 참여하게 만들면서 실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아직은 실험단계지만 예산 심의에 참여하는 등 시민 참여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박 시장의 역발상 행정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서울연구원’으로 바꾼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시정’과 ‘개발’을 뺐다는 것은 시정의 범위를 넓혔다는 것과 보존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창현 서울연구원장은 서울이 ‘민자 유치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며 “지난 시장들이 가장 잘못한 부분이 민자 유치다. 민자 유치는 달콤함이 있다. 재정 투입 없이 SOC 건설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공짜가 아니었다. 엄청난 자본의 욕망이 깔려 있었다. 9호선이나 우면산 터널이 그랬다. 그걸 보더니 박 시장이 서울시가 하고 있는 민간투자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하고 검토 체계를 아예 재구축했다”라고 말했다.
서울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은 박 시장의 거대한 비전이다. 각 지역의 마을 공동체를 살려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고 협동조합·공정무역·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의 주체들이 설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소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은평구의 옛 질병관리본부 부지에 ‘사회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다. 이곳은 박원순이 그리는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곳이다. 이 그림이 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박 시장은 재선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 그는 과연 새로운 서울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까?
주) 아래는 지난 여름 박원순 시장에 대한 새누리당의 파상공세가 집중될 때 썼던 기사입니다.
“이게 다 박원순 탓” 근데 왜 인기 오르지?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를 다녀오는 동안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곳저곳에서 욕을 먹었다. 이창희 경남 진주시장은 7월31일 “서울시가 진주시의 등축제를 모방했다”라며 1인 시위를 벌였고, 8월2일에는 새누리당 서울시당 위원장인 김성태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의원들이 노량진 배수지 수몰사고와 방화대교 공사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서울시 부실공사 연속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서울시청 로비에서 열었다.
참여정부 시절 한동안 ‘노탓놀이’라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경제가 안 좋아도 노무현 탓, 날씨가 안 좋아도 노무현 탓, 심지어 축구 국가대표팀이 경기에 져도 노무현 탓,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고 하면서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식이었다.
‘노탓놀이’와 같은 ‘박(원순)탓놀이’가 보수 누리꾼 사이에서 유행이다. 보수 누리꾼들이 주로 활동하는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에서는 이전 시장 때 인허가가 났는데도 강남역 상습 침수가 박원순 시장과 삼성그룹의 결탁 때문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대통령을 대신해 부쩍 존재감이 커진 박원순 시장이 실컷 욕을 먹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박 시장이 이 같은 상황을 부른 측면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문제 있는 곳에는 현장 시장실을 설치해 직접 지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박원순 시정’에 대한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놓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7월15일 노량진 수몰 피해 현장 방문 시간에 대한 논쟁이다. 보수 언론은 박 시장이 피해 현장에 사고 발생 5시간25분이 지나서야 왔다고 비난했다. 노량진 배수지 내 서울시 상수도관 공사장에서 매몰사고가 발생한 것은 오후 5시였고, 최초 사망자가 발견된 시점은 5시30분이었다. 6명의 작업자가 실종된 상황이었는데, 박원순 시장은 밤 10시25분쯤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서울시가 밝힌 당일 박 시장의 동선은 이렇다. 저녁 6시30분 행정2부시장으로부터 박 시장이 대면보고를 받고 현장 초동조치를 지시했다. 7시까지 약식으로 수해 상황 보고를 받은 박 시장은 공식 만찬을 취소하고 7시30분까지 집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8시25분까지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한 뒤 현장으로 출발했다. 호우가 계속되어 시내 교통이 극심한 정체를 빚으면서 10시25분이 되어서야 박 시장은 현장에 도착했다. 수해 현장에 오기 전까지 박 시장이 개인적으로 보낸 시간은 도시락을 먹은 30분이 전부였지만, 비난의 화살은 따가웠다.
‘외환’에 시달리던 박 시장이 강력한 ‘내우’를 만난 것은 7월24일 ‘서울시 도시철도 종합발전 방안’을 공개하면서다. 이날 박 시장은 총비용 8조5000억원을 들여 도시철도 9개 노선을 신설하고 1개 노선을 연장하는 등 총 85.41㎞의 경전철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박 시장은 이 방안이 교통 소외지역을 해소하고 경제적 타당성과 노선 구축 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계획이 발표되자 박 시장의 우군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맹비난하고 나섰다.
가장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이었다. 언론 기고문에서 그는 “서울시 주변 토건족들의 무분별한 요구를 박원순 시장이 수용한 것 같다. … 이 사업은 ‘박원순표 4대강 사업’이 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용인·의정부·김해시 등에서 이미 실패한 사업으로 판명된 경전철 사업을, 그것도 인천 월미 모노레일이 예산 853억원을 허비하고 정상 운영 불가 판정을 받은 시점에 발표한 것은 판단 실수로 비쳤다. 박 시장이 당선 직후 ‘타당성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던 사업을 갑자기 최고의 사업으로 치켜세우는 것을 두고 ‘(토건족들의 이해에 편승한) 박원순 시장의 재선 전략’이라는 의심이 불거졌다.
새누리당도 박 시장을 비난했다. 8월2일 서울시청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예산 낭비를 이유로 전면 보류키로 한 서울 경전철 사업을 8조원이나 들여 재추진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라고 날을 세웠다.
박원순 시장은 대규모 토목사업에 지금까지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경전철 사업에서만은 관련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반대하는 단체와 끝장 토론을 하겠다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박원순 시장의 한 측근은 “꼼꼼히 재검토를 해서 보완할 점을 보완했다. 모든 시민이 10분 안에 도시철도를 탈 수 있는 서울을 만들겠다는 것이 박 시장의 비전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새누리당도 경전철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경전철 사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무작정 보류해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예산을 낭비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전임 시장이 하자는 대로 했으면 혼선이 없었을 텐데, 중단될 것처럼 얘기했다가 발표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말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가만두었으면 오세훈 전 시장의 업적이 되었을 일인데 중단시켰다가 재개하면 박원순 시장의 업적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애초 참여정부의 회심작이었던 세종시 건설 문제를 이를 중단시키려던 이명박 정부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이 재추진하면서 자기 자산화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경전철 노선 신설 지역은 ‘서북권’ ‘동북권’ ‘서남권’ 등 서울에서도 새누리당 취약 지역이라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박원순 때리기는 국정원 대선 개입 국정조사 파행에 항의하는 야당의 장외 정치에 대한 물타기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이런 박원순 때리기가 오히려 박원순 키우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여권은 곤혹스러워한다. <전남일보>가 조사(7월13~14일, 500명, 리얼미터)한 광주광역시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박 시장은 안철수 의원(33.5%)에 이어 2위(19.1%)를 기록하며 문재인 의원(17.5%)을 앞질렀다. 이는 지난 5월의 <시사IN> 조사(5월25~28일, 500명, 리얼미터)와 순서가 바뀐 결과다. <시사IN> 조사에서는 안철수(37.4%), 문재인(25.1%), 박원순(11.6%) 순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