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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KBS인들이여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지 말자" (전주KBS 이휘현PD)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12. 31.

KBS인들이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독설닷컴'은
'깨어나라 고봉순'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적극 후원하겠습니다. 

KBS PD협회와 특약을 맺고 
내부에서는 '잘 아는 얘기'지만 
외부에서는 '익숙치 않은 얘기'를 
'독설닷컴'을 통해 전하기로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병에 걸린 KBS인들에 대한
전주 KBS 이휘현PD의 질타입니다. 







 ‘어쩔 수 없지…’의 정치경제학


이휘현PD(전주방송총국)



“형, 어젯밤에 우리가 만나서 지금 이 시각까지 형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뭔지 아세요?”

일주일 전 주말 오후, 나의 가장 친한 벗이자 동생이기도 한 후배에게서 나는 이런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근 1년 만에 내가 사는 이 곳 전주에서 만남을 가진 서울의 그 후배에게, 나는 “글쎄”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저 소주잔만 기울였다. 그런데 후배의 표정을 보니 그 물음이 그냥 농담으로 던진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왜 그런 질문을 던졌지?”라는 물음 대신 진지한 눈빛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좀 부담스러웠던지 그 후배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젯밤 열 시에 우리가 만나서 지금까지 열다섯 시간 동안(그 때가 후배와 만난 다음 날 오후 세시였고, 다시 서울로 떠날 후배와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열차시각이 임박한 때에 전주역 앞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형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어쩔 수 없지…’ 였어요.”


‘아, 그랬었나!’라는 자각과 함께 곰곰이 되뇌어 보니, 나는 정말 후배와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이면서 계속 ‘어쩔 수 없지…’를 끊임없이 내뱉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에 차오르는 당혹스러움과 허탈감이라니...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후배에게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내가 정말 그랬었나? 아, 그것 참.. 허허.. 그것 참…… 어쩔 수 없지…”.





뼛속 깊이 박힌 “체념”의 미학...어쩔 수 없지!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어쩔 수 없지’라는 화두에 얽매어 살고 있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체념’의 미학을 뼛속 깊이 받아들이게 되었지? 라는 물음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그 후배가 아닌 다른 누군가들에게도 끊임없이 ‘어쩔 수 없지…’를 남발하고 다녔던 것 같다. 다만 지난 일주일을 전후로 해서 ‘어쩔 수 없지…’라는 말을 자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었을 뿐, 그 말의 빈도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꼼꼼하게 셈해보지는 않았지만, 일주일에 대략 수십 회 이상은 되는 듯하다. 아침 점심 저녁 때 끼니 챙기는 것보다 더 부지런히 그 말을 내뱉고 또 내뱉었다는 것이다!).


나의 성향이 그리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면을 감안하더라도, 일주일에 수십 회에 걸쳐 체념의 말들을 내뱉는다는 것은 지난 1년 동안 내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굳이 서울에서 내려온 후배의 지적을 의식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 환경에는 분명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 그 환경의 변화는 내 심경의 변화에 여러 가지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기는 하다.


우선 지극히 사적인 환경에서의 변화를 말하자면, 아내와 나 두 사람으로 꾸려지던 가정에 새로운 구성원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겠다. 나를 닮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세상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로 하여금 삶의 보수화를 더욱 부추기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이래저래 현실과 타협하고 적당히 눙치며 사는 삶에 내 피붙이가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공적인 환경에서의 변화는 더욱 버라이어티하다. 인간의 시간이란 더디가는 경우는 있어도 뒷걸음질 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내 순진한 낙관은 지난 1년 간 보기 좋게 박살났다. 내가 몸담고 있는 방송환경의 여러 변화들은(그게 정치적이건 혹은 비정치적이건) 비관과 체념의 발걸음을 부추겼다. 공중파의 위기, 공영방송의 위기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고 있지만,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현실적인 모색이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지 그리고 또 앞으로 얼마만큼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 지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만 앞설 따름이다.


한 치 앞도 제대로 내다보기 힘든 언론환경의 격변 속에서 일개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 더군다나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그 목숨줄을 연명한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여러모로 자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든다. 모두 힘드니 너희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고통분담의 논리는, “지방방송 좀 꺼!”라는 말이 여전히 횡행하는 이 사회에서 지역의 전파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무력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어쩔 수 없지...” 보다는 “어쩔 수 없어?” 로!



기존 방송환경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지방’이라는 말은 어쩌면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출구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번드르르한 말들만 실없이 떠돌 뿐 지역방송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진정한’ 움직임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탓을 지역민들의 지역방송 천대(?)와 지역방송 구성원들의 무기력에서 찾아야 할까? 그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딱히 옳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지역방송의 ‘촌티’는 그 전파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무성의함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애초부터 ‘처절하게 지는 게임’을 치러야 하는 지역방송의 숙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앙’ 이나 ‘서울’은 주류의 언어다. 반대로 ‘지방’은 철저한 소외의 언어다. 그 처절한 빙벽을 깨부시는 데에 제 역할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우리네 방송은 한국사회의 지독한 ‘주류 콤플렉스’를 오히려 더 부추기고 조장한다. 아니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사실은 그저 엄연한 사실로 존재할 뿐이다. 언제부턴가 내 입에 배어버린 ‘어쩔 수 없지…’라는 체념어린 말이 그 증거다!
언제쯤 나는 말줄임표로 끝맺는 ‘어쩔 수 없지…’ 대신, ‘정말 어쩔 수 없어?’라는 의문문으로 자신 있게 말을 끝맺을 수 있을까. 아, 도통 알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 '언론노조 총파업 블로거 특별취재팀' 12월31일 취재 일정입니다.

오후 1시 - 여의도 국회의사당 맞은편 국민은행 앞, '언론노조 총파업 총력 결의대회'

오후 4시 - '깨어나라 고봉순' 블로거간담회 (협의중) / KBS 젊은 기자, KBS 젊은 PD, KBS 사원행동, KBS 협회, KBS 기자협회, KBS 노조와의 합동 블로거간담회를 지금 협의 중입니다(오전 중 확정). 

저녁 7시- 광화문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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