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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KBS PD가 내게 들려준 시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29.


다음은 우리다

- 마르틴 니묄로 -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국민의 방송’ KBS에는 옛날 옛적부터 구전되는 농담이 하나 있다. ‘KBS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농담이다. ‘1/3은 열심히 쉬고 있고, 1/3은 남이 일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고(그래서 쉬는 사람만 못하고), 그리고 나머지 1/3만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KBS의 방만한 경영을 비꼰 농담인데, 요즘 이 농담이 바뀌었다.


정부가 낙하산 사장을 보내 KBS 장악을 본격화하는데 반응이 세 가지로 갈린다는 것이다. ‘1/3은 방관하고 있고, 1/3은 KBS 장악을 돕고 있고(그래서 방관하는 사람만 못하고), 1/3만 KBS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KBS의 한 PD는 “국민이 지켜주겠다고 촛불을 켜는데 성문 열어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노조 출범 때부터 정연주 사장 퇴진을 주장했던 KBS노조는 요즘 정연주 사장이 식물사장이 되었다고 비꼰다.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이미 KBS 내부는 이미 친정부적인 이사회가 ‘평정’한 상태였다. 이사회 회의 취재를 하려던 기자들은 입구에서 취재를 거부당하고 발걸음을 돌려야했다(출입기자만 허용). 안전담당자는 취재 봉쇄가 이사회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7월24일의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를 위한 범국민행동' 발족식을 비롯해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들이 KBS 앞에서 행사를 하려고 할 때마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애를 먹는다. 도로가 아닌 KBS 현관 앞에서 하는 행사기 때문에 KBS 측의 시설보호 요청이 있어야 경찰이 막는 것이 가능하다. 요즘은 KBS 직원들이 직접 나와 KBS 사장을 지켜주겠다는 집회 참가자들과 몸싸움과 언쟁을 벌인다. 그들은 이미 사장 편이 아니었다. 정권에 공영방송 KBS의 성문을 열어주려는 움직임은 KBS를 지켜내려는 움직임보다 더 크고 조직적이었다.


이런 줄서기와 함께 혈기방장한 젊은 기자와 PD들을 절망시키는 또 하나의 벽은 구성원들의 ‘복지부동’ 자세다. 입사 8년 차 한 PD는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든 안되든,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든 안오든 나는 상관없다”는 냉소주의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PD는 선배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자신의 블로그에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의 시를 올려놓았다. 그는 이 시가 KBS 직원들의 운명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다음은 우리다 / 마르틴 니묄로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7월24일, ‘민언련’ ‘언론노조’ ‘언론연대’ 등이 주축이 되어 긴급히 ‘방송장악 네티즌탄압저지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을 결성하고 정부의 언론 장악 음모에 대한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그런데 범국민행동에 참여한 단체 중에 언론노조 KBS본부는 없었다. KBS 부산지부는 있었지만 정작 KBS본부는 없었다. 시민사회단체와 촛불 시민들이 KBS를 지켜주겠다고 모였지만 KBS노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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