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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시사저널 파업기자가 본 YTN 투쟁 2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30.






1년 전 요맘때, 나는 그림을 팔고 있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정치부 기자가 아는 사람들의 팔을 비틀어 그림을 기증 받고, 다시 다른 사람의 팔을 비틀어 그 그림을 팔았다. 차 트렁크와 뒷좌석에 담요를 한 장씩 가지고 다니며 그림을 받아오고 그림을 배달했다. 팔지 못한 그림은 창간선포식 뒤풀이 때 경매로 팔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서글픈 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그림값을 가로채는 갤러리 주인이 있었고, 그 와중에도 그림값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다.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파업 때만큼 답답하지는 않았다. 평생 술안주로 쓸 얘기꺼리를 만들고 있다고 자위하며 그림 장사에 몰입했다.


1년이 지났다. 아직 ‘안정적인 적자구조’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촛불정국을 거치며 <시사IN>은 조금씩 안정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 나는 기자 생활을 하기에 가장 자유로운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가 되었다. 반면 그때 우리를 도왔던 언론사들은 ‘기자 생활을 하기에 가장 끔찍한 언론사’로 바뀌고 있다.


YTN이 그렇다. 지금 YTN에서는 출입처에 가서 취재를 하는 기자보다 회사에서 낙하산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하는 기자가 더 많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시간보다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더 많다. 기자가 기사를 쓰지 않고 악을 쓰고, 기자가 마이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용역 깡패 멱살을 잡는 ‘개와 늑대의 시간’을 그들은 보내고 있다. 그 살풍경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걱정이 많다. 지난 한 달 동안 들불처럼 일었던 ‘YTN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의 불씨가 잦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두 차례 구본홍 ‘사장 내정자’를 만난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박경석 지부장은 ‘공정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과 중간평가’ 등을 포함한 구본홍 ‘사장 내정자’의 제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붙였다. 박 지부장은 찬성이 절반 이상이면 구씨를 받아들이고 반대가 절반 이상이면 다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냉정하게 보았을 때,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YTN 노조가 이 투표를 실시한 것 자체로 낙하산 사장에게 투항한 것이 된다. 투표 결과 구본홍씨 제안을 받아들이는 결론이 나오면 언론사 낙하산 사장 임명에 대한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 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낙하산 사장에 대한 노조 내부의 이견을 노출한 것이 되기 때문에 투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구성원들 사이의 이견 때문에 노조 집행부가 힘에 겨웠을 수 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의 역할은 내부 이견을 좁히고 뜻을 모아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지 이견이 있다고 무조건 타협부터 하려드는 것은 분명 순서가 아니다. 투표를 하려거든 구본홍 내정자의 진퇴를 걸여야지, 왜 노조위원장의 진퇴를 걸고 투표를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 수 있다. 우리도 똑같은 상황을 거쳤었다. 파업 중반, <PD수첩> 방영 이후 ‘시사저널 사태’가 알려지기 시작하자 회사 측은 대화를 제안했다. 나는 대화 테이블에 앉는 조건으로 우리 요구조건의 절반은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집행부는 조건 없이 대화 테이블에 앉았다.


우려했던 대로, 회사에 철저하게 기만당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슈가 잦아들자 회사는 태도를 돌변해서 기자들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했다. 물론 우리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노조 집행부에 대한 불신임 과정을 거쳐서 새롭게 집행부를 꾸려 후반기 투쟁을 전개했다. 심상기 회장 집무실 맞은편에 노조 사무실을 내고 더욱 바짝 회사를 압박했다.  
 

YTN 노조가 우리가 거쳤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노조위원장이 구본홍씨를 만난 것 자체가 실수였다. 7월21일 첫 출근저지 투쟁이후 만난 박 지부장은 “대화로 서로 해결책을 모색하자고 하는데, 대화가 필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최선의 해결책이자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그가 물러나는 것이다. 구본홍 내정자가 ‘용퇴’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라고 말했었다.


김인규 노조 사무국장은 “주주총회 자체가 원천 무효다. 구본홍 내정자를 받을 수 없고, 따라서 대화할 이유도 없다. 그가 물러나는 것만이 유일한 결말이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구본홍 사장 내정자’로 표기하고 있는데, 박 지부장은 구씨와의 대화에 응함으로써 그의 사장 임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우를 범했다.   


무엇보다 노조의 이런 투항은 너무 일렀다. 구씨의 제안을 투표에 붙이는 것에 대해 박 지부장은 “구본홍 씨가 사장으로 선임되고 실질적 사장 역할을 시작하면서부터 노조위원장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무한정 길어지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것이 충심으로 회사와 조합원을 위하는 길이라 여겼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의 출근저지가 길어질 것을 예상해 외부에 사무실까지 냈던 것을 감안하면, ‘질서 있는 퇴각’을 논의하기에 너무 일렀다 .


상황이 꼬여버렸다. 노조위원장의 결정에 반발하는 노조원들도 딜레마를 겪고 있다. 노조 집행부를 불신임할 경우 노노 갈등으로 비추고 자칫 내부의 분열로 최악의 결과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제기마저 속 시원히 하지 못하는 답답한 처지다. 노조위원장이 진퇴를 걸고 조합원 투표를 걸었기 때문에 투표 결과가 구본홍 내정자의 진퇴 문제에서 노조 집행부의 진퇴로 왜곡되어 있는 것도 부담이다.


유일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박경석 위원장이다. 그가 노조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구본홍 내정자를 만나 타협안을 받아왔듯이, 그 반대로 구 내정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결별안을 들고 가면된다. 그렇게 회사를 기만하면, 노조위원장 한 명만 희생하면 회사가 내건 조건을 확보한 채로 투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얘기다.


‘정부의 언론장악 저지’ 국면의 나쁜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낙하산 사장을 퇴진시키는 전략과 전술적인 차원에서, 혹은 시점에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YTN 노조를 지지한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시사저널 파업’의 경험으로 YTN노조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YTN 투쟁을 ‘시사저널 파업’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YTN노조 집행부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곤 했고, 집회를 지원하러 온 언론단체 분들도 “YTN 노조도 시사저널 파업 때처럼 잘해야 할텐데...”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만을 기억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성기사 삭제 사건’ 이후 벌어진 항의 집회와 파업, 그리고 결별선언과 창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갈팡질팡 했는지, 그 ‘개와 늑대의 시간’ 동안 안에서 서로 치고받으며 상처를 주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시사IN 창간을 이뤄낸 ‘신화’의 결과만을 보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결국 졌잖아요. 우리처럼 지면 안 되죠. YTN이 우리처럼 방송사를 새로 차릴 수도 없는 것이고”라고 말하곤 했다. 파업 당시 우리를 아낌없이 지지해주던 동아투위 선배들은 “어떤 수모와 치욕을 안고서라도 꼭 돌아가라”라고 충고했는데, 나중에야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있었다.


'언론 자유 투쟁' 참 좋은 얘기다. 그 성전에 임했을 때 사람들의 박수소리는 크고 높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박수소리는 허기까지 해결해주지 못한다. 박수소리가 사라지고 난 뒤 모든 고통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에어컨을 내다 팔고 적금통장을 깨도 다른 동료의 걱정을 늘릴까봐 침묵해야 한다. YTN 노조원들에게 그런 투쟁을 하라고 절대로 권하고 싶지 않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왔다. 좋은 결론을 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YTN 노조원들은 상처를 안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은 안고 가는 또 다른 투쟁이 되도록 마음을 바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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