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
  • 어른의 여행 큐레이션, 월간고재열
  • 어른의 허비학교, 재미로재미연구소
위기의 기자들, PD들

KBS PD들 MBC에 가서 통곡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9. 1.


 

KBS 사원행동은 KBS 노조의
‘같기도 투쟁’을 고발한다.
정부가 KBS 장악을 진행하는 동안
KBS 노조가 교묘하게 방관하며
‘이것은 막는 것도 아니고
안 막는 것도 아니여~’ 식의
‘같기도 투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D수첩> 이춘근 PD와 김보슬 PD, 검찰의 강제구인에 대비해 MBC 구내에서 농성 중이다. 농성기간 동안 이PD의 뱃살 마블링이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PD는 독감을 얻었다.




죄송합니다. 좀 읽혔으면 하는 생각에 낚았습니다.
KBS PD들이 MBC에 가서 통곡한 적은 없습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KBS PD ‘둘’이 지난주 금요일(8월29일) 검찰의 강제구인에 대비해 MBC 노조 사무실에 피신해 있는 <PD수첩> PD들을 위로하기 위해 갔다가 작금의 KBS 사태에 대해서 ‘통탄’하는 말들을 쏟아 냈습니다.
이것을 좀 과장해서 제목을 달아 보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정은 이렇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298세대 언론인 중 MB에게 영혼의 상처를 입은,
(주 298세대는 제가 만들어본 말입니다.
386세대-88세대로, 386 세대 이후 IMF 이전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를 말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세대론은 다음에 따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른바 ‘소울 저널리스트’ 모임을 가졌습니다.
MBC 이춘근 PD와 김보슬 PD와 저,
그리고 KBS PD 두 명과 영화 프로듀서와 마케터 각 1명이 참석했습니다.
(여행에서 갓 돌아온 EBS 김진혁 PD는 다음 모임부터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오기로 했던 KBS 기자 한 분은 아이가 아파서 못왔습니다.
YTN에서도 한 분 모시려고 했는데, YTN 상황이 창졸지간인지라 부를 엄두를 못냈습니다.
영화판에 계시는 분들은 정부의 방송 장악 현실을 반영한 영화를 제작해 주십사, 불렀습니다.)


‘소울 저널리스트’의 첫 미션은 <PD수첩> 이춘근 PD와 김보슬 PD 위로였습니다.
다음 미션은 이명박 시대를 즐기는 방식을 함께 고민하자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이런 자리를 갖고 이 촌스러운 시대를 어떻게 즐길지 고민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PD수첩> PD들처럼 주변에 즐길 일이 생기면 꼭 같이 즐겨주기로 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에서 ‘즐기는 놈이 이긴다’로 코드를 좀 바꿔봤습니다.
<독설닷컴>은 이명박 시대를 가장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블로그가 되려고 합니다.


<PD수첩> PD 위로는 이상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MBC 노조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KBS PD들이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PD를 편의상 여PD 남PD로 부르겠습니다.)
먼저 여PD가 말했습니다. “저 노조사무실 처음 들어와봐요. 와 노조사무실이라는 데가 이런 곳이구나. 들어오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라는 현수막 보고 눈물나올 뻔 했어요. 우린 언론노조도 아니잖아요(KBS 노조는 탈퇴한 상태다)”
다음 남PD가 말을 이었습니다. “난 항의하러 들어가 봤어. 이병순이 왜 낙하산 사장이 아니냐고 따지러. 낙하산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더군.”
여 PD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웃겨 죽는 줄 알았아요.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가 생각나서...낙하산이 과학적 개념이 아니라는데...”
 

그리고 여PD가 노조위원장 부위원장과의 악연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일전에 노조 사무실 앞을 지나는데 ‘정연주 물러나라’는 만장이 세워져 있는거에요. 이 와중에도 이 타령이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엎었어요. 뒤에 바로 노조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오고 있었나봐요. 저 보고 반말로 ‘야 세워’ 그러더군요. 그래서 ‘난 동의 안 하니까, 동의하는 사람이 세우세요’ 하고 따졌어요.”


남PD는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때 보여준 노조의 ‘방관 행보’를 비판했습니다.
정부는 올림픽 개막식에 맞춰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켰고 올림픽 폐막 하루 뒤 선수단 귀국에 맞춰 새로운 낙하산 사장에 대한 임명 제청을 마쳤습니다.
정부가 펼친 18일간의 방송장악 열전 기간 동안 KBS 노조는 ‘방관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KBS 인기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같기도’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동작을 동시에 하면서 ‘이것은 ~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여’라고 말하며 동작을 하는지 안하는지 시청자를 혼란시키며 웃기는 코너였습니다.
KBS 사원행동 소속 사원들은 이사회를 통한 사장 갈아치우기로 정부가 KBS 장악을 진행할 때 KBS 노조가 보여주었던 이중 플레이를 비판하면서 이 ‘같기도’에 비유합니다.
노조가 ‘정부가 보낸 낙하산 사장을 막는 것도 아니고 안 막는 것도 아닌’ ‘같기도 투쟁’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8월8일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를 열리던 날 KBS 사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3층 이사회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이사회장은 회사 안전관리팀과 청원경찰들이 막고 있었습니다.
이 시각 KBS 노조는 1층에서 사복경찰을 막는 시늉을 하다가 뒤로 빠졌습니다.
경찰들이 3층으로 몰려가자 집행부는 노조 사무실에 가서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이사회 회의장 앞 KBS 사원들은 회의장 앞의 청원경찰과 난입한 사복경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사원들이 한 시간 정도 몸싸움을 하고 있을 때 노조에서 사원들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공권력 침탈을 막기 위해 노조원들은 이사회 회의장 앞으로 집결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사원들은 이미 와서 막고 있는데 노조에서 한 시간 뒤에 집결하라고 문자가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 KBS 기자는 정말 어이없다며 이 문자 사진을 찍어 놓으라고 부탁하더군요.


8월25일 이사회의 낙하산 사장 임명 제청 과정에서도 KBS 노조의 ‘같기도 행보’는 여전했습니다.
사원들은 이사회를 저지하기 위해 노조와 함께 6층 이사회장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노조 집행부는 이사회장 입구에서 그냥 멈춰섰습니다.
앉아서 구호를 외치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원들은 이사회 회의장 진입을 막는 노조와 다퉈야 했습니다.
‘이사회를 막을 것도 아니면 왜 같이 올라왔느냐’고 따졌습니다.


이사회가 끝나자 사원들은 노조 비대위에서 노조가 이사회를 막지 않은 것과 KBS 노조가 이병순 사장으로 보지 않은 것에 항의했습니다.
사원들은 ‘사장추천위원회’를 통하지 않으면 누가 와도 낙하산 사장이라고 주장했던 노조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은 것에 항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낙하산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라는 발언이 나왔습니다.
사원들이 비대위에 앞서 ‘조중동 기자 나가라’라고 요구하자
노조는 ‘MBC 기자 나가라’라고 요구했습니다.
사원들이 이유를 따져 묻자 노조는 질서 유지와 회의 진행을 위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이사회가 임명 제청한 이병순 사장을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하자 사원들은 출근 저지에 나섰습니다.
8월27일, 사원들이 이 사장의 출근을 막기 위해 몸싸움을 벌일 때 KBS 노조는 옆에서 본관 앞에 걸렸던 ‘KBS 독립, 공정방송 사수’라고 쓰인 현수막을 뜯어 내렸습니다.


제가 이해심이 부족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KBS를 장악해 나가는 동안 KBS 노조가 보여준 행태는 정말 이해가 안 되더군요.
KBS 노조와 '참언론'의 거리는 마돈나와 순결과의 거리만큼 멀어 보이더군요.
흠....


노조위원장 이야기가 끝나고 ‘사장 뒷담화’가 이어졌습니다.
KBS 이병순 낙하산 사장의 잠자리 안경이 단연 화제였습니다.
잠자리 안경과 함께 너저분한 장발에 대한 지적도 나왔습니다.
KBS 간부들이 요즘 낙하산 사장에게 ‘안경 코드’를 맞추기 위해 잠자리 안경을 구하느라 혈안이 되었다는 유쾌한 뒷담화도 나왔습니다. 
‘패션 꼬라지 하고는....’
그리고 이어지는 씁쓸한 문답,
“그래도 MBC 사장은 생긴 거라도 멀쩡하잖아요”
“생긴거만 멀쩡하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MBC와 KBS PD들의 집단 심리치료에 쓰인 약품. MBC 노조의 부탁대로 테이크아웃 하지 않고 노조사무실에서 모두 거덜냈다. 죄송~ ㅋㅋ




이날 방담은 집단 토론을 통한 심리치료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KBS PD들에게 "오늘은 <PD수첩> 위로 차 온 것이니까 주제에 충실하자"라고 이야기 했더니
김보슬 PD가 "이것도 나름대로 위로가 되는데요"라고 말하더군요.
일종의 카타르시스라 할까요, 실컷 뒷담화를 나눴더니 갑갑한 마음이 아주 조금은 뚫린 것 같았습니다.
첫 모임이니 그것으로 족하지요.
앞으로 이명박 시대를 즐기는 방식에 대해서 더 고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