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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I 누리꾼 수사대

오늘 조중동 1면 사진의 진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6. 30.

사실을 담은 사진이라도 때로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오늘자(6월30일)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에는 똑같은 상황을 담은 사진이 실렸다. 지난 6월29일 새벽 서울시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도로에서 경찰 진압부대가 시위대에 둘러싸여 폭행을 당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의 앵글만 조금씩 달랐다. 조선일보는 최순호 기자가 좀 멀리서 찍었고 동아일보는 홍진환 기자가 가까이서 찍었다(위험한 현장에서 동아일보 기자 신분으로 근접 촬영했다는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중앙일보는 직접 찍지 못했는지 연합뉴스 사진을 받아서 게재했다.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30/2008063000189.html


물론 이 사진은 조작된 사진은 아니다. 말하자면 ‘사실’을 담은 사진인 셈이다. 그러나 이 사진이 ‘진실’이냐의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물컵에 물이 조금 담겨 있는 것을 위에서 보고 ‘물이 차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옆에서도 보고 ‘물이 조금 차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사는 '사실성' 외에도 '진실성' '공정성' '전체성'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 사진들과 함께 게재된 조중동 기사는 '사실성'을 만족시킬 지는 모르겠지만,'진실성' '공정성' '객관성'은 현저히 부족한 기사였다.


29일 0시20분경 분명 시위대에 의한 전경 폭행 사건이 있었다. 중앙일보 표현대로 6분 정도 시위대가 전경들을 때렸다. 흥분한 시위대를 진정시키며 말리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여기 저기서 전경들에 대한 린치가 가해졌다. 나는 이 장면을 프레스센터 7층에서 내려보았다.


문제는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폭행당하는 과정이다. 그날 시위대는 전경버스를 사이에 두고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시위대와 전경들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경들이 전경버스와 서울시의회 담 사이의 좁은 틈으로 빠져나와서 시위대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시간 이후 20여분 동안 지켜본 장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젊은 여성들은 나에게 “기자님이시죠. 제발 저 장면을 본대로 사람들에게 알려주세요. 부탁드려요”라고 말하며 흐느꼈다.


그 장면은 영화 <괴물>에서 괴물이 고수부지에서 시민들을 덮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참혹한 것이었다. 당시 시위대는 대부분 우비를 입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비를 입고 젊은이와 노인이, 남성과 여성이, 부모와 아이가 어우러져 있었다.


검은 전경들이 달려들자 우비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부 시민들이 전경들을 막으려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곤봉 세례뿐이었다. 괴물이 덮칠 때처럼 대 혼란이 일었다. 약 1만 명의 시위대가 뒤돌아 도망치면서 아비규환의 전쟁터가 되었다. 도망치다 넘어진 사람에게 전경들은 발길질을 했다.


그때 인상적인 한 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틈새로 빠져나와 진압을 시작한 부대인데, 그들은 도로를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그리고는 프레스센터 앞 쪽에 와서 원형으로 모여 웅크리고 방패로 자신들을 보호했다. 그들은 고립되기 위해 온 부대처럼 보였다.


냉정하게 봤을 때, 그들은 어청수 경찰청장이 격앙된 시위대에 내놓은 ‘떡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약 6분간 진행된 폭력 때문에 그날 집회에 참여했던 10만명의 시민이 ‘폭도’로 매도되었고 조중동은 신문 1면에 실을 소중한 사진을 건졌다(이날 부상당한 전경의 부모들은 자녀를 ‘폭력의 제물’로 내놓은 어청수 청장에게 항의해야 할 것이다).


시위 취재과정에서 전경에게 팔과 머리를 얻어맞은 시사IN 윤무영 기자의 치료를 위해 들른 강북삼성병원에서 당시 고립되었던 전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부 백승기 팀장이 그들에게 “괜찮냐”라고 묻자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괜찮은 걸로 보여요? 제가 몇 명한테 맞았는데요.”
 

이날 경찰의 전격적인 폭력 진압에 대해서 다시 곰곰이 되짚어 보았더니, 세 가지 의문이 생겼다.


하나는 진압의 목적이 무엇이었냐 하는 것이다. 시위대를 도로에서 밀어낸 뒤에도 태평로는 새벽까지 교통이 재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밀어낼 이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위대를 진압한 후 10분쯤 지나자 조선일보가 소유한 코리아나 호텔 투숙객의 20여명이 경찰의 인도를 받고 호텔로 들어갔다. 멀리서도 그들이 시위대가 아니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우비를 입은 것이 아니라 우산을 쓰고 있었다. ‘설마 저 투숙객들의 길을 터주기 위해서 그런 폭력 진압을 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두 번째 의문은 고립된 부대에 대한 것이다. 왜 그들은 전속력으로 내달려 시위대 한 가운데에 고립되었을까? 강북삼성병원에서 만난 부상 전경에게 물어보았다. “왜 후속 부대도 없는데 시위대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나”라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는 그저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문제의 부대 전경들은 306이라는 숫자가 써진 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306부대가 어떤 부대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306 부대원들은 어떻게 말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와 관련해 정보가 있으신 분은 덧글을 통해 제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당시 대한문 쪽에서도 한 부대가 시민에게 포위되다시피해서 본진으로 쫓겨왔는데, 그들도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그쪽에 있다가 본진으로 합류한 것으로 보였는데, 그들의 정체도 궁금합니다.)

세 번째 의문은 왜 종로와 동시 진압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시 시위대의 절반은 종로에 있었다. 만약 집회를 종료시키기 위해서 진압한 것이라면 종로 시위대도 동시에 진압했어야 맞다. 그렇지 않으면 태평로 시위대가 종로로 합칠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런데도 종로에서는 동시에 진압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섯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진압이 이뤄졌다.  


29일 새벽의 상황은 ‘폭력 시위’가 먼저인지 ‘폭력 진압’이 먼저인지, 그 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시민들은 이 ‘폭력의 굿판’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이 ‘폭력의 굿판’을 걷어치울 또 하나의 ‘집단지성’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 시민이 제보한 시위현장 사진이다. 경찰이 던진 쇠뭉치에 맞은 시민이 흘린 핏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