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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SI 누리꾼 수사대

네티즌 집단지성으로 재구성한 경찰의 폭력진압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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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진보신당 칼라뉴스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사진 사용을 허락해주신 이지안 부대변인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어제 (6월30일) ‘조중동 1면 사진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제 블로그(고재열의 독설닷컴)에 올렸습니다. 6월30일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촛불 시위대가 전경부대를 둘러싸고 폭행하는 장면 사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6월29일 0시20분경).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30/2008063000189.html


저는 그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전경들이 시민들에게 폭행당하는 과정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날 시위대는 전경버스를 사이에 두고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시위대와 전경들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경들이 전경버스와 서울시의회 담 사이의 좁은 틈으로 빠져나와서 시위대에 달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인상적인 한 부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틈새로 빠져나와 진압을 시작한 부대인데, 그들은 도로를 대각선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전속력으로 질주했습니다. 그리고는 프레스센터 앞 쪽에 와서 원형으로 모여 웅크리고 방패로 자신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들은 고립되기 위해 온 부대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이 부대의 이상한 행태에 대해서 세 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하나는 진압의 목적이 무엇이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위대를 도로에서 밀어낸 뒤에도 태평로는 새벽까지 교통이 재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밀어낼 이유가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고립된 부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의문은 왜 종로와 동시 진압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위대의 절반은 종로에 있었습니다. 만약 집회를 종료시키기 위해서 진압한 것이라면 종로 시위대도 동시에 진압했어야 맞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몇 가지 확인을 해주시고 보충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반론을 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날 발생했던 대규모 폭력사태의 진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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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luxury_yun’님이 “저는 저 시간에 언론재단 건물 앞에 서 있었습니다. 상황은 위에 묘사된 것과 같구요. 저도 당시 그 장면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너무 이상했었습니다. 저들은 왜 나왔을까? 왜 나와서 저렇게 고립되었을까? 바보 xx들 아냐? 했었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일부러 저랬을거라는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다음날 조중동의 보도와 정부의 담화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시나리오처럼 딱 맞아 떨어지더군요.”라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ID ‘봄날앤’님은 종로 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제보해 주셨습니다. 그는 “그랬군요...맞습니다...전 종각방향에 있었는데 경찰의 집압작전이 시작되고 조금씩 후퇴하고 있을때 그때도 한부대정도가 후방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더군요. 놀란 여성들은 소리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소수의 전경들이 시위대 중간으로 나와서 남자들에게 곧바로 포위 되었죠...전경들도 당황하더군요 곤봉으로 위협방어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섰죠. 다행인지? 시청쪽상황처럼 전경폭행은 없었습니다...다만 몇몇시위대들이 위협을해서 뒤로 후퇴하게 만들었죠..제가 바로 옆에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기억합니다. 바보같은 그 부대 무전을 잘못 받아서 죽을뻔했다고 지인들에도 이야기했죠.. 근데 이글을 보니 사전에 계획된 작전같네요...희생양을 던진거죠...이말이 사실이면 정말 무서운 정권입니다....ㅡㅡ;;;”라고 증언했다.


ID '음...'님은 제가 제시한 세 가지 의문 중 세 번째 의문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28일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약간의 보충설명이 필요한거 같아 글을 남깁니다. 글을쓰신 기자님께서 프레스센터 7층에서 계셨다면 그 앞 상황만 보고 계셨겠군요. 의문점 세가지중 세번째는 좀 이견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시위현장에 나갈때마다 한곳에만 있지않고 계속 돌아다닙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및 사실들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시청에서 광화문가는 길쪽에서 길 건너쪽에도 있어보고 프레스센터쪽에도 있어보고 하다가 아마 진압 직전이었을겁니다. 어느 여성분이 돌아다니시며 동아일보 뒤쪽이 뚤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청계광장을 지나 종각-광화문 길쪽으로 갔더니 진압들어오고 있더군요. 한 삼십분정도 대치및 진압이 반복되다가 시청쪽은 어떻게 됐나 다시 돌아왔더니 이미 진압되었더군요. 종로쪽은 완전 진압을 하진 못했지만 진압은 거의 엇비슷하게 들어왔습니다. 종로쪽이 시간적으로 조금 먼저 들어온걸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시청쪽보다 종로쪽이 버스 차단벽도 허술하기에 먼저뚤렸겠고 그래서 진압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시청쪽도 진압한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세번째 의문에는 동의할수가 없네요. 종로쪽을 5시간이나 지나 진압이 들어간게 아니라 1~20분 먼저 진압이 들어간겁니다. 사소한거지만 짚고 넘어가야할거같아서...”라고 지적했습니다.


ID 'moogee'님은 “본문에 등장하는 306부대는 서울 4 기동대 소속이구요, 정식명칭은 306 전투경찰대(전경)입니다. 진압중대에 속합니다. 참고로 91년 명지대생 강경대군을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한 전경은 서울 4기동대 사복 94중대 소속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http://blog.naver.com/web99/100014266895 에서 자세히 확인가능합니다”라고 제보해 주셨습니다. ‘moogee’님이 알려준 블로그(윌리스 데스크)는 문제의 서울 제4기동대 306 중대에서 근무했던 전직 전경분이 개설한 곳인데, 그곳에 가서 의경과 전경부대의 편재에 대한 추가 정보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ID '개밥' 님은  당시 진압 상황 사진이 올라와 있는 사이트를 알려주었습니다.
http://dvdprime.dreamwiz.com/bbs/view.asp?major=ME&minor=E1&master_id=17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Txt=&bbslist_id=1336927&page=6


사진과 함께 당시 상황 설명이 나와 있는데, 이런 내용이 올라와 있습니다.
“먼저 문화제 참석자들이 별다른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경들이 순식간에 2~300명정도 뛰쳐나와서 군중을 밀어 붙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흥분도 하고 별다른 경험들이 없는지 상식밖의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감탄하며 너무 많이 밀고 나옵니다.. 그래서.. 본진과의 연결이 되지 않게 되는 실수를 합니다..순식간에 국민들이 그 중간을 메우고 허리가 짤린 전경들은 고립되기 시작합니다..이렇게 지휘부가 생각이 없으니, 정말 전쟁시에 작정을 하고 죽이려고 했다면 저 전경들은 올 다이입니다..
아예 끊어졌습니다.. 이제 고립되었다는 것을 전경들이 알기 시작했습니다..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큰일 났다라고 생각했을까요, 지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 그냥 날 놔 두겠지라고 생각했을까요?"


이 사이트 운영자는 이와 관련된 진보신당 ‘칼라뉴스’ 기사를 링크해 놓았습니다. 저는 ‘http://colornews.org/main/bbs/board.php?bo_table=photonewslive&wr_id=342’에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28-29일 격렬한 악몽의 밤’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진 수십장이 간단한 사진 설명과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칼라뉴스에서는 당시 진압 직전 상황을 “시민들이 버스 위의 전경들에게 소화전으로 물을 뿌리고 있다. 시민들은 네 개의 줄을 묶어 힘차게 잡아당겼으나 아무리 심하게 버스가 흔들려도 넘어지거나 끌어내지지 않았다. 반대편에 견인차의 와이어 두 개가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민들의 당기는 힘은 더욱 거세졌고 곧 버스가 넘어지거나 끌려내지겠다고 보이던 순간, 종로경찰서장은 전경들에게 "나가서 모두 검거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들렸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칼라뉴스에서는 경찰의 당시 작전 상황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의회와 버스 사이로 성인 남자 2명 정도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원래부터 만들어져 있었다. 이 틈을 전경들이 메우고 있었는데, 이 시각에는 그쪽을 시민들이 방어하지 않고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무런 방비가 없던 틈으로 전경들 2~3백명이 시민들을 밀고 나왔고, 시민들은 갑작스런 전경들의 진입시도에 급작스럽게 대열이 무너지며 후퇴했다.
이 때 진입한 전경 2~3백명은 시민들을 너무 많이 몰아부쳤고, 약 6~7천여명 이상에 달하는 시민들은 거꾸로 이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밀려났던 시민들이 소화전으로 물을 뿌리며 전경들을 막고 있다. 전경들이 수십명씩 고립되어 시민들에게 포위되어 있다. 경찰의 작전은 이렇게 선발대를 투입하여 시민들을 와해시킨 뒤 그 사이에 많은 수의 전경들을 버스 틈으로 투입하여 진영을 만든 뒤 시민들을 밀어붙이는 것이었다.”



주> 폭력 시위가 먼저냐? 폭력 진압이 먼저냐?를 판단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폭력 사태가 없었던 6월27일 금요일의 시위와 6월30일의 시국미사입니다. 경찰의 폭력 진압이 없었을 때는 시위대도 얌전했습니다.

<추가내용> 블로그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http://news.egloos.com/)'를 운영하시는 '자그니'님께서 트랙백을 걸어놓으셨는데, '조중동 1면 사진의 진실 - 관련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동영상을 올려놓으셨습니다. 저는 플래시 플레이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못보고 있는데, 한 번 보시면 참고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