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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아홉, 투쟁을 하기엔 너무 늙었지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8. 11.


 

(중계) KBS에서 울리는 양심의 소리 1편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한국 선수들의 금메달 사냥이 본격화 되면서,
올림픽 중계도 탄력을 받아 열기를 더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독설닷컴>은 좀 다른 중계를 해보려고 합니다.
정부의 KBS 장악 작전과
이에 막으려는 KBS 내부 기자 PD 등 직원들의 움직임을 중계하려고 합니다.


그 중계의 일환으로
KBS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호소문을 
<독설닷컴> ‘KBS독립 특설링’ 게시판을 통해 중계해 드리려고 합니다.
(<독설닷컴>이 ‘사이버 대자보’ 기능을 해보려고 합니다)


애초에는 올라온 글을 묶어서 소개해 드리려고 했는데,
글을 읽어보니 한편 한편이 너무나 절절해서
그런 무례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어보시고
KBS 내부에 어떤 움직임이 일고 있는지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성자 : 심00 (편성제작팀)
작성일 2008-08-11 10:56 
조회수 625, 찬성수/반대수 44 / 160 


다시 민주광장에서


새벽밥을 먹고 청주에서 출발, 여의도에 도착하니 정각 9시다. 회사주변에는 수십 대의 경찰버스와 전경들이 장벽을 만들고 있고 민주광장 한켠에는 사복경찰들이 줄을 맞추어 앉아 있다. 우리는 일단 민주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조끼를 갖추어 입은 노조 집행부도 나타나 북을 치며 구호를 외쳐댄다. 누군가는 노조 집행부와 합류하자고 한다. 나는 즉시 반대 의견을 냈다. 우리의 목적은 실질적인 이사회 저지이지 적당히 모양새 갖춘 구호나 성명서가 아니다.  이사회 장 앞으로 진출하는 게 우선이다. 이사회가 열릴 본관 3층은 이미 출입문이 굳게 닫히고 엘리베이터도 운행되지 않는 상황. 권오훈 PD가 어딘가 급히 어디론가 다녀오더니 통로를 개척했단다.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비상계단을 통해 3층에 도착. 오전 9시 30분경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몸싸움은 이사회가 끝나고 볼일(?)을 마친 이사님들이 무사히 돌아가실 때까지 4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일단 이사회는 막아보자고 몸을 던졌지만 100여명으로 청원경찰과 사복경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10여 차례의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결국 뒤로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11시를 넘겨서인가 노동조합에서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긴급 문자 메시지가 뿌려졌지만 조합집행부를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가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난 참으로 야릇한 경험을 했다. 1선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고함을 외쳐대는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동작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점차 느려지고 고함소리도 아련하게 멀어졌다. 마치 또 하나의 내가 그 상황을 내려다보듯, 아니면 내가 배우가 아니라 관객으로 영화를 보듯 그렇게 그 장면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18년 전, 그 뜨거웠던  90년 4월로 돌아간 듯한 착각 속에서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지금은 분명 90년이 아니라 2008년이고 나는 서른 한 살의 신입사원이 아니라 오십을 코  앞에 둔 노병(?)이다. 그런데 우리가 몸을 던져가며 지켜 냈다고 생각했던 상식들이 어쩌면 이렇게 가볍게 무너진단 말인가? 이 반복되는 야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순간 뜨거운 눈물이 울컥 솟아오른다. 제길, 이 상황에서 눈물이라니.......

90년 4월.  당시 나는 입사 4년차에 결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새신랑으로 충주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노태우 정권에 의한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던 조합원들이 백골단에 의해 개처럼 끌려 나가자 사원들은 모두 분노해서 일어났다. 파업이 장기화 되고 선배들과 함께 충주에서 울로의 원정시위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당시에는 대략 1000명에서 많으면 2000명이상의 조합원들이  민주광장에 모이곤 했던 것 같다.


지루한 파업이 끝나고 우리는 10원짜리 월급 명세서를 받아야했지만 나는 90년 4월이 결코 실패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KBS 사원들은 우리가 정권과 가까운 선택된 엘리트가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선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후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KBS 더 나아가 우리사회를 이 만큼이나마 진보시키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4월 항쟁은 나로 하여금 노동조합과 KBS를 정말 사랑하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감사하고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자랑스러웠던 4월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 또 다시 정권 앞에 몸을 내 던져야 하는가?


 그것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피를 대가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조금 더 잘 살고 싶다는 욕망과 가볍게 바꾼 것과 같은 맥락은 아닐까? 우리 KBS인들도 복지대박과 고용안정을 외치며 내 밥그릇 지키기에,  솔직히 말하면 혹시라도 내 밥그릇이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감을 이기기 위해 방송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을 내버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공정방송 노조니 정연주 퇴진이니 하는 목소리도 팀제와 지역 구조조정에 대한 불만에서 싹튼 것이 사실이고, 온 사원이 힘을 모아도 될지 말지 모를 이 난국에 KBS지키기가 아니라 산별탈퇴의 목소리만 높은 지금의 상황도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결국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전혀 황당하지 않은, 지난 몇 년간 우리 스스로 선택해 온 필연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민주광장에 다시 섰다. 구호도 낯설고 노래도 많이 잊어버렸다. 적당히 후배들 뒤로 숨을 만큼 나이도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지난 20년간 KBS인의 자부심이었던 자랑스러운 4월 항쟁이 다시 군화 발에 짓밟히고 있는데,  아니 당장 구조조정에 임금삭감에 2TV 사영화에.... 우리의 일터가 유린당한다는데 그냥 기다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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