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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관심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마니아인 사람의 대중문화칼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4. 1. 16.


'스포츠 잘 모를 것 같은데 의외로 정통한 사람의 스포츠칼럼'에 이어 '대중문화 관심 없을 것 같은데 의외로 마니아인 사람의 대중문화칼럼'을 시사IN 문화면에 신설했습니다. 취지는 다양한 앵글로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대중문화 콘텐츠를 단순히 완성도나 인기 비결로 들여다 보는 것은 좀 식상한 듯 해서요. 다른 앵글과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읽어내는 것도 다르겠죠? 


- 국문학자가 본 드라마 <기황후>

- 뉴미디어 전문가가 추억하는 김광석

- 문화사회학자가 본 <응답하라 1994>

- 신경과학자가 본 막장드라마

- IT-경제학 전문가가 본 <상속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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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그의 노래가 애달픈 양식이라오 


아마 1987년 가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6월 민주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난 파도가 지나고 마침내 부활한 대통령 직선제를 향해 세간의 관심이 서서히 옮아가던 바로 그해 가을이 틀림없다. 운동권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콘서트 소식이 대학가에 들려왔다. 세상이 바뀌었음을 피부로 느낀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집회 현장에서나 보던 운동권 노래패 공연에 돈까지 내고 티켓을 사면서 말이다. 무대에서 노래 몇 곡이 흐른 뒤, 한 사내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라며 ‘녹두꽃’을 불렀다. 자그마한 그의 체구를 보며 내내 녹두장군 전봉준을 떠올렸다. 김광석과의 첫 만남은 아무튼 그랬다.


이듬해 어이없게도 노태우의 보통 사람들 시대가 시작됐다. 그해 데뷔한, 보통이 넘는 밴드 동물원의 ‘거리에서’를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스산한 거리에서 미니 카세트로 꽤나 많이 들었건만, 정작 이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그 사내였음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쩌렁쩌렁한 울림의 녹두장군이 보통 사람들 시대에 처연한 목소리의 가객이 되어 나타날 줄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이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려 한물간 통기타를 몇 번 만지작거려봤고, 여자 친구와 그의 소극장 콘서트에 한 번 다녀왔고, 그렇게 김광석이라는 이름 석 자는 들국화·김현식·푸른하늘과 더불어 좋아하는 가수 목록에 들어왔다. 그러다 터무니없는 3당 합당과 함께 1990년대가 시작됐고, 서태지와 듀스가 등장하는 등 가요계가 요란해지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찾는 시간도 점점 줄어갔다. 김광석과의 두 번째 만남은 대략 이런 시간들로 채워졌다.


물론 그사이에도 그의 노래에 관심을 주던 때가 가끔은 있었다. 늘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가는 시간이 안타까워지던 서른 즈음에 하필이면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때맞춰 발표해준 그가 잠시 고마웠다. 예기치 못한 자살 소식에 모처럼 그의 노래를 꺼내 들으며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듬해 S.E.S와 핑클이 잇달아 등장했고 때마침 간절했던 정권 교체까지 이뤄져 요정들의 노래가 더욱 신바람 나면서 김광석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더 사라져갔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 교수)

전문 보기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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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 역사 드라마에 ‘역사’가 없다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는 작가의 세계관에 따른 사료(史料) 해석에 초점을 맞췄던 경향에서 벗어나 작가의 상상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다모>를 기점으로 왕조 중심에서 민중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촉발된 역사 드라마의 방향 전환은 도망 노비의 삶을 정치적으로 상상해 극적으로 형상화한 <추노>에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역사 드라마의 역사관이 과잉되거나 실종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뿌리 깊은 나무>처럼 봉건 왕조를 배경으로 민주공화제의 정치권력에 대해 논쟁을 벌일 정도로 과잉되거나, <해를 품은 달>처럼 임금의 첫사랑을 절절하게 그리면서 역사성을 완전히 소거한 역사 드라마들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역사 드라마의 역사관 교란이라는 문제를 남기기도 했다.


역사 드라마에서 역사관이 탈각된 부작용은 대단히 심각하다. 고려에서 원나라로 끌려갔다가 황후의 자리에 오른 ‘공녀 기승냥’을 “가장 높이, 가장 아름답게 핀 꽃”으로서 “대륙을 품은 철의 여인”으로 새롭게 조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MBC <기황후>가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실존 인물 기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대단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기황후>에서는 그녀를 “낯선 이국의 황실(왕실)에서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며 운명적인 사랑과 정치적 이상을 실현한 여인이자 특별한 감성과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새롭게 상상한다. 낯선 이국에 버려지다시피 했던 여인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조국을 원망하는 것이야 충분히 그럴 법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반민족적인 행위를 정당화해줄 수는 없다. 고려 내정에 간섭하는가 하면, 공민왕의 반원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고려를 침공한 행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황후>의 제작진이 기황후의 역사성을 거세하고 철저하게 개인적 맥락에서 그녀의 일대기를 다시 쓰는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역사 전유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관점에 따르면, 예술작품에서의 ‘전유(專有:appropriation)’는 일상의 맥락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술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유는 ‘자기 혼자만 사용하기 위해 허가 없이 어떤 것을 차지하는 행위’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다. ‘전유’의 관점으로 보면, <기황후>가 고려 말기에 갖은 횡포와 악행을 일삼은 인물이라는 <고려사절요>의 평가에서 벗어나 기황후의 일생을 새롭게 상상해 ‘다시 쓰기’ 하는 것은 예술작품에서의 전유일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역사적 평가와 다르게 형상화하느냐는 온전히 작가 몫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역사관의 차이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윤석진(충남대 국문과 교수)

전문 보기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01




@ 문화사회학자가 본 <응답하라 1994>


응사는 2000년대 들어 원룸이 대세를 이루면서 하숙집이 문을 닫고, 주인공들이 첫사랑을 찾아 ‘결혼’하면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연애와 사랑에 몰두하는 게 그렇게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학과니 동아리니 각종 공동체가 많았기 때문에 연애의 전면적 자유는 불가능했다. 휴대전화가 없던 당시에는 좋아하는 이성과 통화하려면 반드시 부모님의 검열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너는 누구니?”란 질문에 적당한 답을 해야 상대 이성과 통화할 수 있었으니, 요즘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손쉽게 전화할 수는 없었다.


드라마가 다루지 않은 중요한 것이 있다. 당시 대학에는 1980년대 대학 문화가 여전했다. 학생운동이 제기하는 질문에 어쩔 수 없이 대면하며 고민했다. 노래방에 가야 되나 논쟁을 했고, X세대가 상업화된 오렌지족 문화에 물들었다는 비난도 들었다(이 무렵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라는 책이 나와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응사’는 ‘바위처럼’이란 노래와 율동을 통해 이 부분을 간단히 처리해버렸다. 학생운동과 관련한 대목은 분명 1990년대의 중요한 과거였는데 말이다. 그와 관련한 사람들의 성숙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는데 말이다. 지금의 대학생들이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통해 사회와 관련된 고민을 토로하듯, 당시 학생들은 지금보다 훨씬 심각하게 고민했다.


응사는 과거를 우리에게 단순히 복기해주기만 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응사는 대단히 ‘현재적인’ 드라마다. 우리가 응사에서 우리의 과거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그땐 그랬지” 식의 단순한 ‘추억’일까, 아니면 그것이 현재의 결핍과 연관되는 과거에 대한 ‘향수(노스탤지어)’일까. 1990년대 초반 유행했던 386 세대의 ‘후일담’ 소설은 비록 과거의 고통과 갈등을 담아냈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를 정리하고 적당히 벗어나려는, 그리하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응사도 그러한가?


박치현 (사회학 강사)

전문보기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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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과학자가 본 막장드라마


"대뇌(정확히 대뇌겉질)는 우리가 의식하는 감각·지각·운동·수행과 관련된 이성을 맡고, 변연계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위험한지 아니면 먹잇감인지 감지하며, 이에 대해 감정(정서) 반응을 하고 기억하는 구실을 맡는다. 즉 대뇌는 이성을, 변연계는 감정을 맡아 팀플레이를 이룬다. 이 두 팀은 서로 좋은 작용을 하기도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작용을 하기도 한다. 두 팀 간의 상황에 따른 콤비플레이가 잘되는 것을 건강한 뇌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야구 수비수가 경기 도중 공이 어디로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잔디에 있는 네잎 클로버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면 이는 대뇌의 업무를 방해하는 변연계의 근무 태만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시험을 보는 학생이 너무 긴장하고 불안해서 계속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서 평소 실력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했다면 이는 변연계의 과잉 활성화라 할 수 있다.


변연계는 마치 국경의 변방과 유사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위험한지 아니면 먹잇감인지를 감지하고, 위협을 감지하면 공포와 불안을 일으켜 전투·도피(Fight or Flight) 반응을 하게 한다. 변연계는 포유동물에게 존재하는 신경구조이다. 


동물행동 연구에서는 동물의 종류에 따라 위험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고 한다. 작거나 약한 동물들은 위험을 감지하면 변색으로 위장하거나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며 숨고, 그보다 조금 크고 빠른 동물들은 도망을 가지만 아주 위험할 때는 물거나 차는 반응으로 공격한다. 더 큰 동물들은 먹히는 위험에 대한 반응보다는 먹이를 보고 쫓아가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다 위세가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위협하고 싸운다. 공격 반응이다. 그래서 지면 굴복하고 이기면 지배한다. 당연히 사람 역시 이런 반응을 한다.


대뇌를 중심으로 이성이 발달하고 변연계를 토대로 감성이 발달하며 이 둘은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인간은 지성과 감성을 일상생활이나 예술 활동, 여가 활동 등을 통해 고르게 키워간다. 즉, 인간의 활동은 뇌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막장 드라마의 대표적 상황은 힘 있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사자처럼 포효하고, 구석에 몰린 며느리가 악에 받쳐 울며, 남편은 불륜이라는 재앙을 선사하고, 시청자는 남자와 시어머니를 욕하며 며느리에게 이입해 울고 분노한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는 배경에는 최고급의 가전·가구·명품이 즐비하다. 사람들은 악역을 보며 욕을 하면서도 그 배역이 쓰던 장신구와 가구는 구입한다. 이 상황들에는 분노·우울·불안·우월·흥분과 같은 감정이 즐비하다. 비유하자면 변연계의 전시장 같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는 ‘변연계의 도가니탕’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성한 작가는 작정하고 대중의 변연계를 자극하듯 독하게 막장으로 치닫는다. 대중은 이에 변연계로 반응하며 시청률로 응답한다. 이때 시청률이 우리의 변연계 활동수치쯤 될까? 아마 시청률이 가장 높을 때 가장 변연계적인 장면이 등장할 것이다. 누군가 공격하거나 공격당하거나, 도망가거나 굴복하는 그런 장면 말이다."


지석연 (신경과학자, 작업치료사)

전문 보기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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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경제학 전문가가 본 <상속자들>


김은숙의 ‘로코’ 신화는 2004년 <파리의 연인>에서 시작했다. <프라하의 연인> <연인>으로 이어지며 <온에어>로 정점을 찍었고. 김선아·차승원 주연의 <시티홀>은 좀 삐끗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시크릿 가든>으로 판타지 로코까지 영역을 넓혔고, 40대에도 여전히 철없는 남자들의 <신사의 품격>은 장동건의 성공적인 복귀작이 되었으며, 이종혁을 스타로, 김수로·김민종을 다시 오빠로 돌려놓았다. 


그다음 작품이 <상속자들>. 아무리 재벌가 2세들이라고 해도, 젖비린내 가시지 않은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누가 볼까 했지만, ‘역시 김은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과는 멋졌다. 미드 <가십걸>과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버무려 김은숙답게 자가복제를 했다고 씹는 이들도 있었지만, 신데렐라와 캔디의 무한반복이라도 상관없다. 차은상(박신혜)을 두고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김탄(이민호)과 최영도(김우빈)는 2013년 누나들의 마음을 흔든 살아 숨쉬는 캐릭터가 되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새로운 러브스토리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랑 이야기의 원형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썼고, 시한부 인생이 등장하는 작품은 에릭 시걸이, 재산과 권력이 얽힌 블록버스터 연애는 시드니 셸던이 썼다. 그 외에도 굵직한 작품들은 이미 누군가 썼고, 크게 히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을 찾는 건, 지구상 어딘가에 있다는 나를 꼭 닮은 도플갱어를 찾는 일보다는 훨씬 쉬울 게 당연하다. 


하지만 비슷한 구성으로 연이은 대박을 빵빵 터뜨리는 건 확실한 능력이다. 물론 달달한 대사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 작가 김은숙은 시대의 결핍을 읽어 이를 작품에 반영하며, 현실의 부족을 상상 속의 행복으로 치환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기에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곽동수 (숭실사이버대 외래교수)

전문 보기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