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블로거 인큐베이팅10 '독설닷컴 편집위원'을 모집합니다 블로그 '독설닷컴'을 운영하기 시작한 지 벌써 20개월이 다 되어가네요. 그동안 참 거침없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독설닷컴'을 통해서 많은 일이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함께 하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요? '농심 사태' 'PD수첩 논쟁' '김제동 하차' 등등등... 그러나 20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독설닷컴'에 대한 기대심리는 높아만 지는데, 저는 지쳐만 가고 있습니다. 이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독설닷컴'은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쉽게 뜨지만 쉽게 질리는,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곳이 인터넷이죠. 특히 포털사이트에서 시사블로거들을 경시하면서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설닷컴'이 이렇게 기운다면 이것은 개인적인 손실을 넘어 소통의 창구.. 2009. 12. 29. 요즘 대만에서 엉터리 한국말이 유행하는 이유 에서는 내공 있는, 혹은 사연 많은 분들을 블로거로 데뷔시키는 '블로거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최신 포스팅을 소개하는 을 연재합니다.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그후 이야기 요즘 대만에서 엉터리 한국말이 유행하는 이유 (글 - 정다운, 기획 - 고재열) 주> 정다운 님은 현재 대만에서 '쑹야친'이라는 이름으로 연예계에 데뷔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CF를 찍고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데 조만간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입니다. 정다운 님은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대만 연예계 데뷔기와 대만 연예계 소식을 전하는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엉터리 한국말에 놀라다 요 며칠 동안 비도 자주오고 지진도 약하게 한번 나더니 추석 무렵에는 강한 태풍인 ‘실라.. 2008. 10. 15. 적은 돈으로 유명 화가 작품을 소장하는 비결 의 야심찬 프로젝트, ‘블로거 인큐베이팅’의 네 번째 대상은 '아리조나 카우보이' 이충렬님입니다. (재미있는 그림 이야기: blog.daum.net/artarizona) 이충렬님은 시사IN 창간 당시 10여 점 가까운 그림을 기증하시고 주변 콜렉터들에게 그림을 기증받아 후원 전시회를 열어주셨습니다.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충렬 선생님은 기자들에게 '창간의 은인'이십니다. 본인의 소장 작품 중 10여점 가까운 작품을 기증해 주시고 주변 콜렉터들을 선동해 그림을 기증하게 해서 후원 전시회를 성사시켜 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팔자에 없는 그림 장사까지 해보기도 했습니다. 미국 아리조나 주에 있기 때문에 전시회는 직접 참여하시지 못하셨는데, 나중에 직접 오셔서 정산해 보시더니 그림값이 제대로.. 2008. 10. 8. 일제강점기에도 빛이 났던 7대 얼짱 연예인들 의 야심찬 프로젝트, ‘블로거 인큐베이팅’의 세 번째 대상은 재야의 국악 전문가 김문성님입니다. (소릿재 아흔아홉구비: sori99.tistory.com) 김문성님은 특히 일제강점기의 기생 계보에 정통하십니다. 전설적인 기생분들도 직접 수소문해 만나보시기도 하셨구요. 일제강점기에 권번들이 벌인 기생 스카웃 전쟁은 요즘 기획사들의 연예인 스카웃 전쟁과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다시 연예기획사 관련 비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소릿재'님이 전해주시는 일제강점기 '기생의 시대'로 떠나 보시죠. 첫 포스팅 주제는 '일제강점기에 빛났던 7대 얼짱 연예인'들입니다. (앞으로 '소릿재'에 주목해 주세요. 장담하는데, 이 분은 블로고스피어를 빛내주실 분입니다. 이 분을 통해 기생.. 2008. 9. 24. 대기업의 대학생 사회봉사 활동의 진실 에서는 '기자가 되고 싶으면, 스스로 기자임을 증명하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예비 언론인을 대상으로 '블로거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기사를 보내오신 분은 한유나님입니다. ('소통포럼'에 이어 벌써 두 번째 포스팅이죠) 냉정한 '지적질' 부탁드립니다. 마케팅의 세계적인 대부 필립 코틀러 교수는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일류 기업들은 모두 사회책임활동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며, 사회책임활동을 하지 않는 기업은 성장은 물론 생존하는 것조차 어렵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코틀러 교수의 말을 증명이나 하듯,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사회공헌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KT&G는 복지재단, 사회환원사업 등을 통해 '사회를 위하는 기업'의 이미지를 얻었다. (구 담배인삼공사 라는 사실이 쉽게 매치되지.. 2008. 9. 22. 37년 선배 기자와 영화관에 간 이유 연애하는 것 같다. 거의 매일 전화가 걸려온다. 거의 매일 이메일이 들어온다. 이거 어때 저거 어때 물어보는 것 투성이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요구하는 것도 많다. 연애가 아니다. 상대는 기자 37년 선배인 안병찬 언론인권센터 이사장이다. 최근 나의 권유로 블로그 을 시작한 그는 이것저것 요구가 많다. 솔직히 많이 귀찮다. 시사IN 기사도 써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해야 해서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니다. 그래도 흔쾌히 들어준다. 그의 의욕 때문이다. 현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의 강력한 ‘기자 회귀 본능’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베트남전 종군 기자로 패망 직전 최후까지 남았던 한국 기자였던 그는 타고는 현장기자다. (기자직에 대한 그의 로망은 ‘어느 70대 노기자의 자기 부고기사’를 통해 느낄 수 있다.. 2008. 9. 17. 한국 연예인의 중국어 랩 실력 감상하세요 '안병찬의 기자질 46년'에 이은 블로거 인큐베이팅 시리즈 두 번째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이제 마지막 3부입니다. 다음 이야기부터는 정다운(예명 쑹야친)님의 블로그에서 (마이 스토리/yaqinstory.tistory.com) 보실 수 있습니다.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3부는 원래 ‘종합편’으로 대만 연예계 이모저모에 대해서 쓸 예정이었으나 ‘야친’님이 오디션 등 스케줄의 압박 때문에 미처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주말에 정리해서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올릴 예정입니다. 혈혈단신으로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 연예계에 데뷔해 대만 최고의 ‘예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야친’님이 이번에는 동영상을 보내왔습니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제목을 ‘한국 연예인의 중국어 랩.. 2008. 9. 13. "대만에서 성공하려고 혀를 깨물어야 했다"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제2부 ‘블로거 인큐베이팅’의 두 번째 대상인 ‘야친(정다운)’ 님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야친’님의 블로그에 1백개의 응원글이 달렸습니다. (yaqinstory.tistory.com) 벌써 한 방송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작가분이 ‘야친’님을 인터뷰 했습니다. 조만간 방송에서 ‘야친’님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자고나니 스타가 되었다’라는 말이 실감나네요. 제가 제2의 ‘산드라 박’을 언급했는데, 그럴 조짐이 보이네요. 이제 ‘야친’님이 한국에 돌아오면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 같네요. 일단 ‘야친’님의 자세부터 달라졌습니다. 저는 글을 고치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계속 고치고 또 고쳐서(한 예닐곱 번 정도) ‘대만에서.. 2008. 9. 10. "내가 대만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블로거 인큐베이팅’, 두 번째 대상은 바로 연예인입니다. 그런데 좀 색다른 연예인입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대만에서 ‘송아진(쑹야친)’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정다운님입니다. (yaqinstory.tistory.com) 정다운님은 지난 겨울에 대만에서 데뷔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와 상하이에서 연예계 데뷔를 시도했지만 둘 다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기획사와 계약을 해서 상처받을 일도 없고, 일도 술술 잘 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대만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금의환향'할 수도 있겠죠. 정다운님은 ‘사즉생 생즉사’의 각오로 지난 겨울 대만으로 갔습니다. 아직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다운님은 CF모델로 활약하면서 몇몇 오.. 2008. 9. 8. 어느 70대 노 기자의 자기 부고기사 여기 어느 노 기자가 쓴 자기 부고 기사를 한 편 올립니다. 물론 이 기사는 '가상 기사'입니다. 그는 살아있는 기자입니다. 자신의 죽음마저 기록해 보겠다는 그 불굴의 ‘기록 정신’을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부고 기사를 쓰신 분은 안병찬 언론인권센터이사장입니다. 그 전에는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셨고 그 전에는 주간과 고문으로 일하셨고 (이때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안주간님’으로 부릅니다) 그 전에는 한국일보 기자로 일하셨습니다. 우리 업계에서는 ‘베트남전 최후 종군기자’로 유명합니다. 학교에서 은퇴하신 뒤에서 스스로를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로 명명하시고 지금도 취재를 계속 열심히 하시고 계십니다. 요즘도 그는 관훈클럽 3층 기자실에 매일 출근하고 있습.. 2008. 9. 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