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플랫폼이다. IT 전문가들은 IT 산업의 미래 전쟁을 플랫폼 전쟁이라고 단언한다. “OS(운영체제)를 중심으로 형성된 IT 플랫폼이 소셜 미디어가 플랫폼이 되는 상황으로 진화했다. 플랫폼이 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김진형 카이스트 교수) “이제 모든 비즈니스는 단품 비즈니스와 플랫폼 비즈니스로 나뉜다.”(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 소장)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김지현 SK플래닛 상무)
보통 IT 업계에서 플랫폼이라고 하면 바탕이 되는 서비스나 운영체제를 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나 애플의 iOS,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의미는 다양하게 재해석되어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로 확대되기도 한다. 애플의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의 플랫폼이고 구글의 유튜브는 동영상의 플랫폼이다. 쉽게 말해 플랫폼은 ‘서비스의 멍석’이다.
콘텐츠가 꽃이라면 플랫폼은 ‘밭’
정지훈 관동의대 IT융합연구소 소장은 “IT 업계에서는 보통 플랫폼 하면 운영체제를 이야기하지만 이를 확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단지 기술로만 바라보고, 이것이 가져오는 사회문화적·철학적 변화와 경제적인 파급력을 고려하지 못한다면 장애물에 부딪히게 된다. 플랫폼을 이야기할 때는 ‘네트워크 효과’와 그 효과를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주목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플랫폼이 IT 산업의 최대 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플랫폼 전문가인 조산구 코자자 대표는 “서비스와 콘텐츠가 꽃이라면 플랫폼은 밭이다. 서비스 꽃이야 한철일 수 있지만 플랫폼은 밭이라서 어떤 꽃을 피우든 지속 가능하고 계속 수익을 낸다. 시장 지배를 위해서는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한국 IT 기업 중에는 플랫폼을 끌고 가는 회사가 드물다”라고 평가했다.
네이버의 ‘라인’은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내는 플랫폼 서비스다. 세계 각국에서 동시에 신규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 서비스 출시 후 가입자 1억명 돌파까지 19개월 걸렸는데 가입자 1억명에서 2억명 돌파까지는 6개월, 가입자 2억명에서 3억명 돌파까지는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물론 스페인·멕시코 등 스페인어권과 인도·터키 등에서 이용자가 계속 증가 중이다. 라인을 통해 국내 모바일 게임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졌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의 ‘라인 윈드러너’는 출시 3개월 만에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돌파했다. 국내 중소 개발사 ‘트리노드’가 개발한 ‘라인 포코팡’도 서비스 출시 72일 만에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1000만 건을 돌파했다.
글로벌 플랫폼 서비스와 국내 플랫폼 서비스의 경쟁과 관련해 주목할 분야는 바로 ‘이슈 플랫폼’이다. TGIF(트위터, 구글/유튜브, 아이폰/아이튠스, 페이스북)로 통칭되는 글로벌 플랫폼이 여전히 한국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토종 플랫폼도 약진 중이다.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네이버 라인은 해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예전에는 메이저 일간지 1면 혹은 KBS· MBC·SBS 등 지상파 방송사 메인 뉴스에 나와야, 최근에는 종합 포털 사이트 다음이나 네이버의 메인 화면에 나와야 대한민국의 이슈가 되었지만, 지금은 블로그나 아고라에 올린 글도 대형 이슈가 된다. 예전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전파되었는데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라인도 무시하지 못할 전파 경로로 부상했다.
새로운 미디어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듯이 새로운 플랫폼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낸다. <나는 꼼수다>가 터지기 전에 이미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이 있었다.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신문에서 인터넷으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승자가 나타났다. 이슈와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 누구냐보다 그런 사람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무엇이냐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튠스와 함께 팟캐스트 플랫폼으로 양강 체제를 이룬 ‘팟빵’, 웹툰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낸 다음과 네이버의 웹툰 서비스, 동영상 생방송과 녹화방송 영역에서 각각 대표 플랫폼으로 떠오른 ‘아프리카TV’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서비스, ‘일간 베스트 저장소’나 ‘오늘의 유머’ 등 후발 주자의 도전을 받기는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 이슈를 주도하는 ‘다음 아고라’, 이제 국내를 벗어나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카카오톡’과 네이버 ‘라인’은 이 이슈 플랫폼 중에서도 눈여겨볼 서비스다.
이런 이슈 플랫폼은 서비스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룰의 공정함이 더 중요하다. 인위적으로 스타를 만들기보다 이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도록 맡겨야 한다. 플랫폼 디자이너가 플랫폼을 기획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과 관련해 이슈 플랫폼의 원조인 ‘다음 아고라’ 서비스를 초기부터 지금까지 관리하고 있는 김태형 팀장은 이렇게 조언했다. “플랫폼 공급자가 강한 의도를 투영할수록 사용자는 멀어진다. 사용자를 예측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행동 양태를 반영해야 한다.”.
팟캐스트는 2012년 대선을 거치면서 가장 크게 성장한 이슈 플랫폼이다. <나는 꼼수다> 종방 이후 현재까지 춘추전국시대다. <나는 꼼수다>와 같은 대형 히트작은 없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팟캐스트가 여럿 등장했다.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그것은 알기 싫다>와 같은 시사 팟캐스트, <김용민의 조간 브리핑> <서영석의 라디오 비평> 등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그리고 <벙커1 특강> 같은 교육 프로그램, <이동진의 빨간 책방> 같은 서평 프로그램, <탁PD의 여행수다> 같은 여행 및 취미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출퇴근길에 고정적으로 듣는 이용자가 늘어 팟캐스트 시장은 꾸준한 상승세다. 미디어로서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과시하는 팟캐스트의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곳이 바로 ‘팟빵(podbbang.com)’이다. 애플 아이폰 유저는 아이튠스를 이용하지만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는 주로 팟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시장, ‘나꼼수’ 때보다 두 배 성장”
안드로이드폰 이용자가 아이폰 이용자를 추월하면서 팟빵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팟빵을 운영하는 코리아센터닷컴의 김동희 실장은 “애플 아이튠스와 두 가지 점에서 차별화를 두었다. 하나는 PC에서 듣기 편하게 만드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순위 시스템과 후원 방식을 두는 것이었다. ‘팟캐스트=아이폰 혹은 아이튠스’라는 생각에 변화를 주었다고 자평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와 철도 민영화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팟캐스트 청취자도 늘고 있다. 김동희 실장은 “<나는 꼼수다>의 경우 전성기에 에피소드당 청취자가 80만명에서 100만명 정도였는데,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팟캐스트도 에피소드당 청취자가 30만~50만명 수준까지 성장했다. 전체 시장으로 보면 ‘나꼼수’ 전성기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팟빵이 ‘이슈’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라면 ‘세바시’는 ‘유행’을 만드는 플랫폼으로 주목해야 할 곳이다. 세바시는 15분 내외의 강연 동영상을 모은 CBS의 동영상 강의 플랫폼인데 ‘한국형 TED’로 각광받고 있다. 세바시를 통해 스타 강사가 배출된다. 인간관계와 내면의 성찰을 주제로 강의한 김창옥 퍼포먼스트레이닝연구소 소장이 대표적이다. 김 소장의 강의는 1000만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다. 박용후 퍼스펙티브 디자이너,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연기자 조달환씨 등도 세바시가 배출한 스타 강사다.
세바시는 지난해 최고 온라인 히트 상품 중 하나였다. 유튜브의 세바시 채널 조회 수는 이미 2100만 회를 넘겼고, 구독자만 해도 5만7000명 이상이다. 팟캐스트와 안드로이드 세바시 애플리케이션 조회 수가 하루 평균 21만 회(PV 기준)이다. 지난해 세바시의 모든 채널(유튜브·다음·네이버·모바일 앱·TV) 조회 수를 합산하면 1억 건에 육박한다. 세바시 강연 콘텐츠는 현재 370여 개가 쌓인 상태다.
세바시는 기업 강연 시장 문법을 바꾸었다. 세바시를 제작하는 구범준 PD는 “기업의 교육 담당자들이 세바시 콘텐츠의 교육적 가치를 눈여겨보면서 세바시 무대에서 강연한 분들의 ‘강연 매출’이 급증했다. 직업 강사들에게 세바시는 ‘꿈의 무대’가 되었다. 요즘은 많은 직업 강사들이 세바시에 ‘자천’으로 강의 제안서를 보내온다”라고 말했다.
소셜 플랫폼 분석 기업인 트리움의 이종대 이사는 “플랫폼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사례가 바로 세바시다. 세바시를 통해 알려지게 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시대가 원하는 메시지와 자기 개인의 경험을 재빠르게 결합하고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권위’를 획득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열광하는 팬들이 늘어나면서 세바시의 저변도 함께 넓어졌는데 유튜브와 싸이의 관계와 비슷하다”라고 분석했다.
플랫폼 서비스의 관건은 생태계를 형성하느냐 여부다. 이와 관련해 온라인 서적 유통 플랫폼인 YES24·알라딘의 서비스와 다음·네이버의 웹툰 플랫폼 서비스는 크게 대비된다. 둘 다 오프라인 강자를 제치고 최대 유통망으로 떠올랐지만 온라인 서점이 전자서적(e-book) 시장을 유의미하게 생성하지 못한 반면 웹툰 플랫폼 서비스는 웹툰이라는 온라인 만화와 다른 형식을 정착시키고 세계시장 진출도 도왔다.
2003년 ‘만화 속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미디어다음 뉴스에 딸린 만평 코너로 시작한 다음의 웹툰 서비스는 강풀이라는 거물 작가를 배출하면서 급성장했다. 이용자들이 몰리자 그에 맞춰 서비스가 확대되었고 강풀·강도하·Hun·고영훈·캐러멜/네온비 등의 작가가 배출되었다. 오프라인에서 주로 활동하던 윤태호·이충호·천계영·전극진 등의 작가는 다음 웹툰을 통해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다.
다음 ‘만화 속 세상’ 박정서 편집장은 “다음 웹툰 서비스의 성과는 두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웹툰 유료화 도입이다. 유료 수익의 90%를 작가에게 주어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마련해주고 있다. 다른 하나는 웹툰 OSMU(원 소스 멀티 유스) 붐 조성이다. <이끼>를 시작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스토리 파워가 강한 작품들이 영상물로 제작되어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발광하는 현대사> <미생> 등이 앞으로 영상으로 제작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플랫폼으로 진화한 한국 웹툰
네이버 웹툰은 독자 오디션 방식으로 작가를 발굴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네이버 웹툰은 아마추어도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도전만화> 코너, 아마추어 작품 중 대중의 인기를 받은 작품이 모이는 <베스트 도전만화> 코너, 기성 작가들의 연재작이 모이는 <웹툰> 코너를 구분해 작품을 배열한다. 이런 경쟁 방식을 통해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네이버 웹툰을 보는 사람이 약 1700만명에 이른다.
네이버는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웹툰 작가들을 소개했다. <신의 탑>(SIU), <노블레스>(손제호·이광수), <갓 오브 하이스쿨>(박용제) 작가들의 사인회가 진행되었는데 해외 팬들이 줄지어 찾아왔다. 네이버 관계자는 “유럽 각국의 독자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몰려왔다. 어떤 팬은 웹툰을 보기 위해 한국어를 배웠다고도 하고, 어느 학교의 상담 선생님은 우울해하는 학생들에게 한국 웹툰을 소개한다고도 했다. 작가에게 직접 웹툰 캐릭터를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외국인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읽는 웹툰 형식은 이제 한국형 만화의 대표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의 웹툰 담당자는 “웹툰 초반에는 일본 만화를 보면서 만화가를 꿈꿨다는 예비 작가를 많이 만났으나 지금은 우리나라 웹툰을 보고 성장한 예비 작가들이 더 많다. 이런 ‘웹툰 키드’가 자라서 더 창의적인 작품을 그릴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는 것에 편승해 가장 큰 성과물을 낸 곳 중 하나는 바로 기부 플랫폼이다. 다음에는 ‘다음해’라는 기부 플랫폼이 있고 네이버에는 ‘해피빈’이 있는데, ‘해피빈’의 경우 기부에 참여한 연인원이 약 970만명, 기부 금액이 총 370억원에 이른다(2013년 12월 기준).
한국형 플랫폼의 세계시장 진출과 관련해 눈여겨볼 부분은 바로 다른 서비스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네이버 홍보실의 남지웅 과장은 “라인의 이용자는 90%가 해외에 있다. 라인의 첫 유료화 모델인 스티커숍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라인 스티커숍의 스티커 제작에 참여했던 국내 웹툰 작가들의 콘텐츠 수익과 글로벌 인지도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획자가 본 2014년 온라인 민심은?
사이버 여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확산될까? 미디어다음의 김태형 소셜미디어팀장은 이에 대해 가장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김 팀장은 온라인 토론 플랫폼인 아고라와 블로거들의 뉴스 서비스 플랫폼인 다음뷰, 그리고 티스토리 블로그 서비스 등 ‘이슈 플랫폼’을 수년째 총괄하고 있어 누구보다 온라인 이슈의 흐름에 정통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스타가 되고 어떤 서비스가 대박이 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를 스타로 만든 시스템이나 그 서비스가 대박이 나게 한 마켓이다. 온라인·모바일에서는 이를 ‘플랫폼’이라고 한다. 온라인·모바일에서 어떤 것이 이슈가 되고 유행이 되느냐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 플랫폼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흔히 플랫폼 경쟁은 ‘사람들의 시간을 점령하고 빼앗는 전쟁’으로 비유된다. 아고라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김 팀장은 이런 ‘이슈 플랫폼 전쟁’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런 그를 만나 최근의 사이버 이슈 흐름은 어떤지, 국정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가 댓글과 리트윗을 통해 대선에 개입하고 ‘일간 베스트 저장소’ 등 보수 우익 플랫폼이 떠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이버 여론의 요즘 흐름은 어떤가?
채동욱 검찰총장 퇴진 파동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다르다. 이전까지는 웬만한 이슈도 확산이 그리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채동욱 퇴진 이후 이슈에 대한 반응 규모가 절대적으로 커졌다. 이런 흐름이 ‘철도 민영화 반대’로 이어지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 전 상황과 비슷하다. 주현우씨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반응이 격렬했던 것도 이처럼 사회적 불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전 촛불집회 때와 어떻게 비슷한가?
우리는 댓글과 게시글의 증가에 맞게 서버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에 대한 호응은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집회 때 ‘앙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때 ‘안단테’가 불꽃을 댕기던 시기와 많이 닮았다. 보통 사람들은 큰 번개가 내려치는 장면을 보지만, 플랫폼 기획자는 그 전에 구름 속의 작은 번개들을 볼 수 있다. 작은 번개가 잦아지면 결국 큰 번개가 온다. 특정 키워드가 떠오르는 양상을 보면 이슈가 폭발하기 위해 7부 능선, 8부 능선을 넘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지금이 그렇다.
아고라 서비스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아고라는 어떻게 성장했나?
2005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서비스 규모가 크지 않았다. 서귀포초등학교의 부실한 급식이 이슈가 되는 정도였다. 생활밀착형 이슈가 화제가 되는 소소한 공간이었다. 아고라의 성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뗄 수 없다. 폭풍 같은 2008년을 보냈다. 광우병 촛불집회, 4대강 사업,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아고라가 폭발했다. 안단테와 같은 누리꾼, 김이태 연구원과 같은 전문가, 미네르바와 같은 논객이 아고라 스타가 되었다.
아고라 이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이태 박사는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책 연구기관에 근무하는데, 익명이 보장된 공간에서 기명으로 폭로했다. 지금 권은희 수사과장이 주목받는데, 그 이상을 해냈던 사람인 것 같다. ‘고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어서’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나영이 사건’ 때 아버지가 올린 청원도 기억에 남는다. 가장 짧은 시간에 100만명의 공감을 받았다. 본인의 아픈 상처를 바탕으로 아동 성폭력 관련 법 개정을 주장했다. 본인이 겪은 끔찍한 일을 단순히 하소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변화로 연결하려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슈 플랫폼으로서 아고라를 관리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미디어적 실험이다. 올림픽이나 대선처럼 사람들의 관심이 몰릴 때 미디어적 실험을 한다. 지난 올림픽과 달리 이번 올림픽 때는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실험을 할 것인가이다. 이런 실험을 해보면 기술적 검증이 되기 때문에 이후 정식 서비스를 만들어낼 때 도움이 된다.
지난 대선에서 벌인 실험은 무엇인가?
세 가지였다. 빅데이터에 기초한 뉴스를 제공하는 것, 온라인 공간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는 것, 온라인 정치 후원 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일간 베스트 저장소’나 ‘오늘의 유머’와 아고라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명칭에 답이 있다.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가 명칭에 나타난다. 아고라는 토론 서비스를 지향한다. 아고라에서 건전한 토론은 책무다. 다른 서비스는 그런 책무를 느낄 필요가 없다. 기획한 결과물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다. 사용자들이 그런 패턴으로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아고라는 의도된 기획의 범위 안에서 서비스한다.
이런 서비스를 관리하면서 예전과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온라인 이슈가 어떤 플랫폼을 통해 어떻게 확산되는지 이제는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이슈의 확산 속도에 대한 두려움이 든다. 영향력의 크기와 방향을 잘 모르겠다.
어떤 플랫폼이 성공한다고 보는가?
플랫폼의 역설이 있다. 성공을 예상했던 플랫폼은 대부분 실패한다는 것이다. 공급자가 강한 의도를 투영할수록 사용자는 멀어진다. 반면 성공한 플랫폼 기획자들은 공통적으로 ‘나도 이게 뜰 줄 몰랐다’고 말한다. 사용자를 예측하지 말고 행동 양태를 반영해야 한다.
이슈에 개입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다. 국정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사건이 대표적이다. 열린 사이버 사회의 적은 ‘어뷰징(부적절한 방법으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는 행위)’이 아닌가 싶다.
국정원의 댓글이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사이버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명확하다. 해당 플랫폼이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너뜨렸다. 이용자가 피로감과 환멸을 느끼게 해서 그런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게 만들었다.
앞으로 이런 인위적인 여론 조작을 막는 것이 과제일 것 같다.
해외도 그렇고 국내도 마찬가지인데, 플랫폼 서비스를 하는 IT기업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알고리즘 개발자다. 인위적으로 이슈를 바꾸거나 순위를 바꾸는 공격에 맞서 추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이 플랫폼 서비스 기업의 과제다. 기업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서 이를 공략하는 것은 마케팅을 위해서다.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개입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아고라만큼 메타블로그(일종의 블로그 포털 사이트) 서비스인 ‘다음 뷰’에도 공을 들였다. 블로그 저널리즘이 한참 각광을 받다가 지금은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관심이 저조해진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대략 세 가지 정도가 후회된다. SNS와의 결합 모형을 놓고 갈팡질팡했다. 경쟁 대상인지 활용 대상인지 빨리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전업 블로거에 대한 고민이 치열하지 못했다. 지속적인 후원 모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활용 가치만 생각하고 파트너로서 대우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억에 남는 블로거는?
‘미디어몽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뉴미디어 실험을 한 블로거가 도맡아 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핵심 가치인 독립성에 대한 소신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의지하거나 기대지 않고 자기 영역을 만들어냈다.
매스미디어의 위기라고 하는데 언론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다양한 뉴스 소비 패턴이 확인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해간다. 남들이 아는 것을 나도 알아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노하우를 익히고 있다. 뉴스를 소비할 때 가장 결정적인 판단은 온라인에 의지하는데, 특히 자신이 연관을 맺은 네트워크의 집합적 판단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