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구심력과 원심력...
한국의 도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3M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몰(Mall)과 마트(Mart)와 멀티플렉스(Multiplex)를 중심으로 도심이 형성된다. 주중의 일하는 동선과 달리 주말의 여가를 위한 동선을 보면 특히 그렇다. 서울 중심가가 그렇고, 서울 부도심도 그렇고, 서울 외곽도시도 그렇고, 서울에서 떨어진 지방도시도 그렇다. 한마디로 천편일률적이다.
몰과 마트와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휴일 동선이 형성된다는 것은 여가가 소비를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건조한 동선이 합리의 산물일 지는 모르겠지만, 황량하다. 몰에서 쇼핑을 하며 데이트를 준비하고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보며 데이트를 해서 결혼해서는 가족과 함께 마트에 가는 것이 요즘의 ‘시티 라이프’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그렇다. 우리의 삶이 빌딩에 갇혔다.
이번엔 원심력이다. 이런 인공적인 3M의 구심력을 제외하면 휴일의 서울은 원심력이 작용하는 도시다. 연인을 데리고 나가야 능력 있는 남자친구가 되고 자녀를 어디든 데리고 나가야 좋은 아빠가 된다. 휴일에 서울에 머무르는 건 뭔가 게을러 보이고 준비가 부족한 것으로 비친다. 왠지 도심은 악이고 도시 밖은 선인 것 같다.
주말의 도심에는 일종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난다. 주로 주중 직장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 많아 문을 닫은 가게도 많다. 버려진 도시의 이미지까지는 아니지만 생기를 잃은 공간으로 느껴진다. 주차하기가 쉽고 차가 안 막혀서 좋기는 하지만 생기가 없어 매력이 덜하다. 행사나 이벤트가 있는 곳은 시끄럽지만 대체로 우울하다.
수도권의 베드타운 도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역시 3M 도시다. 도심이 유흥지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심지어 빌딩 숲이다. 층층이 먹고 마시고 즐기고 누릴 것으로 꾸려진 빌딩 안에서 사람들은 허겁지겁 소비한다. 신도심이 이렇게 흥청망청할 때 개성 있고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구도심의 뒷골목은 잊힌다. 다양한 축제를 통해 새로운 개성을 부여하려고 애쓰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 도시인들은 자꾸만 나간다. 우리가 누리고 경험해야 할 것은 도시 밖에 있다는 생각으로 줄기차게 나간다. 이렇게 휴일에 도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에 대해 ‘마당이 없는 집이 많아서’라는 분석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마당이 없이, 아파트와 같은 콘크리트 더미 안에서 사는 도시인들이 자연에 회귀하려는 본능이 작용해 자꾸만 도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최근의 ‘캠핑 열풍’이 잘 설명된다.
서울의 실정은 이런데, 뉴요커나 파리지앵으로 지낸 경험이 있는 지인들에게는 반대의 얘기를 들었다. 뉴요커나 파리지앵은 오히려 도심에서 주말을 즐긴다는 것이다. 도심 집값이 비싸서 외곽에 나가서 생활하지만 주말에는 오히려 도심으로 들어와서 전시회도 보고 공원에서 책도 읽고 노천카페에서 차도 마시며 여가를 즐긴다는 것이다. 파리에, 그리고 뉴욕에 즐길 것이 많은데 밖으로 왜 나가냐는 것이다.
여기서 관광객들의 동선을 한 번 살필 필요가 있다. 명절이나 휴일에 일본 관광객이나 중국 관광객이 많은 곳을 지나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서울은 관광객의 동선과 서울시민이 서로 엇갈리는 도시다. 바꿔 말하면 서울 시민들이 자주 가는 곳에 관광객들은 잘 가지 않고 관광객들이 잘 가는 곳에 서울 시민은 잘 가지 않는다. 그들은 같은 도시에서 다르게 산다.
뉴욕이나 파리는 조금 다르다. 관광객들은 뉴요커나 파리지앵을 체험해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주 가는 곳을 선호한다. 그들은 뉴욕이나 파리를 방문하는 것의 방점을 뉴요커나 파리지앵처럼 뉴욕과 파리를 경험하는 것으로 찍는다. 이것이 구심력이 있는 도시의 힘이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이 따라할 서울시민의 삶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서울 시민들도 문화 소비를 한다. 그런데 일상적이라기보다는 이벤트 지향적이다. 대규모 전시회나 축제를 중심으로 문화 소비가 이뤄진다. 큰 박물관과 전시장은 이벤트성 대형 전시가 많다. 전시장 자체가 이슈인 곳과 전시가 이슈인 곳, 무엇이 더 옳은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과 전시장이 카리스마를 갖지 못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지방도시는 축제가 문화소비의 중심을 이룬다. 축제를 위해 특산물이라는 캐릭터를 세우고 스토리텔링을 개발한다. 일종의 문화 거점 개발 방식이다. 제법 성공을 거둔 곳도 많다. 하지만 축제에 성공해도 축제가 이뤄지지 않는 기간에는 을씨년스럽다. 축제 때 가야할 이유는 축제가 아닐 때는 가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된다. 꾸준한 덧칠로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서 평상시에도 사람을 모으는 도시는 많지 않다.
그러면 서울의 구심력을 어떻게 복원할까? 뉴욕이나 파리처럼 노천카페를 많이 만들고 도심의 문화거점을 활발하게 하면 될까? 그렇게 쉽게 풀릴 수수께끼는 아닐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만들기’를 하고 있는데 생활공간에 작은 거점을 만드는 것도 한가지 방법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변이 제법 넓게 형성된 한강도 좋은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구심력 회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숙제다. 서울시민이 즐길 수 있는 도시를 만든다면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도 서울을 그렇게 재해석해 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서울문화재단이 잘 풀어낼 것으로 믿는다. 이 숙제를 풀 즈음 서울은 멋진 도시가 되어있을 것이다.
주) <문화+서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