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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당신 인생의 모든 것

당신은 잘못 싸우고 있다 - 우리가 모르는 싸움의 본질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4. 12. 28.





당신은 잘못 싸우고 있다 - 1


(싸움, 당신 인생의 모든 것 #1) 


사람들은 싸움을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싸움이 모든 번뇌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싸우지 않고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싸우지 않고 살려고 하는 게 모든 번뇌의 시작이다. 싸움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피하려고 하다가 문제에 직면한다. 


어릴 적 아이들에게 엄마들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누구와 가장 많이 싸우나? 누구에게 가장 화를 많이 내나? 


바로 엄마다. 아이는 화를 내는 대상을 잘못 정했다. 처음부터 싸움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그때그때 풀어내고 조정했어야 할 일을 쌓아두었다가 감정의 앙금을 엄마에게 푼 것이다. 


엄마가 싸움의 대상일까? 세상과 싸울 때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줄 진정한 아군이 엄마다. 그런데 그 엄마를 주적으로 삼는다? 뭔가 잘못된 것 같지 않은가?


싸움에 대해서 우리는 첫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 단순히 싸움은 나쁜 것, 피하는 게 능사, 평화라는 평형상태에 도달할 것... 이런 강박이 번뇌를 부르고 스트레스를 부르고 이상행동을 부른다. 


평화가 세상의 본질이 아니라 싸움이 세상의 본질이다. 인간과 인간, 개인과 조직, 인간과 환경은 싸움이 평형상태다. 평화는 싸움의 중간에 간주처럼 존재하는 불평형 상태다. 이런 싸움에 대한 정립된 생각이 오히려 싸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원효의 화쟁사상도 이런 맥락이다. 화평이 아니라 쟁투가 본질이라는 것이다. 뭔가 내가 사람들과 잘못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뭔가 내가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이 잘못 싸워서가 아니라 싸움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싸움의 역설은... 싸움의 본질을 알고, 싸울 태도를 갖추고. 싸울 방법을 아는 자가 싸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잊지 말자, 싸움이 본질이다. 




당신은 잘못 싸우고 있다 - 2


(싸움, 당신 인생의 모든 것 #2) 


<미생>에서 장그래가 직장생활을 다면기로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지 한 상대와 두는 바둑이 아니라... 다른 인턴들과, 대리와, 과장과, 혹은 다른 사람과 각기 다룬 바둑을 함께 두고 있는 곳으로 직장을 해석한다. 어쩌면 싸움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서있는 모습이 별 것 없는 장그래가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일 지도 모른다. 


전편에서 잘못 싸우는 사례로 '엄마와 싸우는 것'을 지적했다. 이건 싸움의 대상 문제다. 자기가 싸워야 할 대상을 피하다보니 밀려밀려 엄마와 싸우게 된 것이다. 그날의 싸움은 그날! 그 자리에서! 그놈과!


이번에는 '약자코스프레'의 문제다. 20대가 자신의 갑에 대해(주로 직장상사?) 고발하는 글을 최근 여럿 보았다. 일단 싸움을 회피하지 않는 이런 태도는 칭찬하고 싶다. 이런 걸 한 번씩 터뜨릴 때마다 개인의 사회적 자아는 비약적으로 확장된다. 


하지만 빈틈이 보인다. 타인이 동의할 수 있는 정도를 10점 척도로 나눈다고 했을 때... 5점 미만인 이유들(듣고서 좀 갸우뚱한 것들)까지 줄줄이 나열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내가 이만큼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양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는 것이다. 


이건 위험하다. 되치기 당하기 좋은 경우다. '이유를 듣다보니 당신한테도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그렇게 생각하는 건 좀 오바 아냐?'라고 생각할 여지를 주면... 사람들은 문제제기한 사람에 대해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는 사람' '잘해줘도 나중에 뒤통수 칠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최근에 본 문제제기자들은 다른 세대와의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같은 세대에서는 공감할 수 있지만 세대를 벗어나서는 다르게 받아들여 줄 여지가 많았다. 지금 지켜보는 사람이 동세대라면 녹화중계를 볼 사람은 다른 세대다. 이들의 공감까지 얻으려면 정교해야 한다. 


자신의 싸움을 오픈한 것은 여론전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여론을 얻어야 한다. 지켜보고 있는 관중뿐만 아니라 중계방송으로 볼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 맥락을 모르는 그들은 애매모호한 이유를 보면 외면할 것이다. 


애매모호함 이유를 들먹이면 '나는 이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라고 스스로 광고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여론전음 확실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고 상대방이 욕을 먹고 당해야 하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켜야 한다.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을 겪어본 사람이 지켜보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이유를 삼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성숙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강자와 약자의 동정구도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의 심판구도를 그릴 것이다. 사람들운 이기는 싸움에 자신의 지지를 투자하는 성향이 있다. '약자코스프레'하는 사람은 동정하는 척 잊어버린다. 


5점 이하의 이유는 잊어버려라. 자승자박이 될 뿐이다.





당신은 잘못 싸우고 있다 - 3  


(싸움, 당신 인생의 모든 것 #3)


이번에는 갑갑한 새정치민주연합 얘기다. 지난 총선 대선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모두 패배했다. 야권 지지자들에게 이들은 구심이 되지 못하고 곁불만 쬐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싸움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이 싸움의 정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 외부투쟁엔 등신인데 내부투쟁엔 귀신인 싸움꾼이 너무 많다. 조경태 김영환...


둘,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선거 후 지지자들에 대한 심기관리를 전혀 안 해준다. 리더는 이기고 나서보다 지고 나서가 더 중요한데... 지고 나면 리더가 사라졌다. 


(이 부분은 야권 지지 성향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반성할 부분이다. 대선 패배 후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패배 소식에 멍해 있는데 어제까지 '나를 따르라'던 사람들이 모두 자기 동굴로 들어가 '난 멘붕' 하고 숨은 형국이었다.)


셋, 승점관리를 못한다. 촛불집회 등 국민 여론이 들끓고 나면 그것을 어떻게든 정치적 협상력으로 활용해서 승리의 징표를 남겨야 하는데... 촛불집회 / 반값등록금 / 세월호 때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실패했다. 


(이 부분에서는 조선일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되치기의 귀재다. 여론이 들끓을 때는 몸을 낮추다가... 잦아들면 이슈를 자기식으로 재규정해서 비틀어 버린다.) 


넷, 계파 지분을 서로 보장해주다 보니 '외부 수혈'이 안 된다. 우리 먹기도 부족한 것이다. 전투력이 땅바닥인 야권 정규군이 그나마 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은 것은 민병대 격인 일반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리품은 정치인들만 챙겼다. 국민이 만들어준 국면에서 그들이 적극적인 외부수혈을 통해 전투력을 보강했다면 온갖 이슈에 무능력한 지금의 상황 보다는 나아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