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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연극모독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5. 6. 4.

연극모독


박근혜 대통령이 연극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배우협회, 한국희곡작가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 등 연극계를 총망라한 단체 ‘한국연극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는데 박근혜정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문화융성'을 도모한다는 박근혜정부의 ‘엉성'한 문화정책에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유는 이렇다.


올해 서울연극제는 거리에서 시작해서 거리에서 끝이 났다. 보통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을 했는데 올해는 이곳을 이용할 수가 없어서 그 앞 마로니에공원에서 개막식과 폐막식을 진행했다. 연극인들이 대학로 중심 극장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가장 중요한 연극 행사의 문을 열고 닫은 것이다. 서울연극제 기간은 축제 기간인 동시에 연극인들의 투쟁 기간이 되었다.


1977년 시작해 올해 36회 째인 서울연극제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연극 축제 중 하나다. 주로 창작 초연이나 재연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 35년 동안 860여 극단의 배우 2만1000명이 연극제 무대에 올랐고 100만 명 넘게 연극을 관람했다. 한마디로 연극인들의 최대 잔치다. 연극인들은 이 같은 연극인들의 잔치에 재를 뿌린 곳이 다른 곳도 아닌 한국공연예술센터와 이를 관리 감독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라는 데 분통을 터뜨린다.


‘창조경제'를 추구하는 박근혜정부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연극인들의 축제를 훼방 놓았다. 과정은 이렇다. 지난해 11월 한국공연예술센터는 2015년 정기 대관 심사에서 서울연극제가 탈락했다고 서울연극협회(회장 박장렬)에 통보했다. 이유는 ‘대관 신청 서류 미비’였다. 30년 넘게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서울연극제를 치르던 서울연극협회는 당황했다. 연극제라는 행사 특성상 참가작이 미리 정해질 수 없기 때문에 ‘공모와 심사’를 전제로 신청했는데 탈락했기 때문이다(다른 단체가 신청한 연속 사업은 ‘공연작품 미정’으로 신청했지만 대관이 받아들여졌다).


연극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서울연극제의 대관 탈락을 일종의 ‘연극모독'으로 받아들였다. 서울연극협회를 중심으로 ‘서울연극제지키기 시민운동본부’를 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연극인 226명이 릴레이 1인 시위에 참여했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서울연극협회가 한국공연예술센터를 고소하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한발 물러나서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 대관을 약속했다.


그렇게 사태가 마무리되는가 싶었는데 2막이 시작되었다. 올해 서울연극제 시작 직전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다시 발목을 잡았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무대 구동장치에 이상이 확인되었다며 안전점검을 이유로 갑자기 대관 불가를 통보해온 것이다.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서울연극제 상연작 중 두 편이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사태를 중재해야 할 유인화 한국공연예술센터 센터장은 기관지염 등을 이유로 병가를 내고 이 무렵 2주일 정도 출근하지 않았다.


대관 불가의 이유는 ‘안전점검'이었지만 서울연극협회는 이것 역시 ‘연극모독'으로 받아들였다. ‘고장이 난 무대 구동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장치를 사용하면 되는데 서울연극제 기간에 맞춰 극장을 폐쇄한 점’ ‘대체 극장으로 동숭아트센터 대극장이나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등 비슷한 규모의 극장으로 옮겨주지 않은 점’ 등이 서울연극제를 무시한 처사라고 해석했다. ‘서울연극제지키기 시민운동본부’에 이어 ‘한국연극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꾸려져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공대위는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제시한 대체 극장에서 공연하지 않고 자체 섭외한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 등에서 공연했다.


공대위에서는 대학로 연극을 지원하고 격려해야 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원인을 연극인들이 세월호 유가족 집회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많은 현장 연극인들이 유가족 천막 농성장을 지켰고 추모 공연도 여러 편 제작했다. 이번 서울연극제 기간에도 비경연 부문인 ‘맨땅에 발바닥 전’에서 세월호 추모 옴니버스 연극 <총 맞은 것처럼>(극단 완자무늬, 김태수 연출) <비가 내리면>(극단 76단, 기국서 연출) 두 편을 공연했다.



극단 '완자무늬'의 '총 맞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공연장 장기 휴관으로 1억5000만원 정도의 손해를 입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는 한국공연예술센터를 대상으로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한국공연예술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서로 ‘지시를 받아서 진행했다’거나 ‘원만히 처리하라고 했다’며 책임을 떠넘겼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나 몰라라 했다. ‘문화융성'을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흔히 연극을 ‘가난한 예술'로 부른다. 대학로 1년 매출은 약 400억 원 정도다. 블록버스터 영화 <설국열차> 제작비와 비슷한 정도다. 400억 원도 흥행을 염두에 둔 상업공연과 소극장뮤지컬을 합친 금액으로 이를 제외하면 실제 매출은 훨씬 줄어든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정신을 지키고 있는 연극인들을 지원해야 할 단체가 괴롭힘의 주체라는 현실이 참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