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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감독의 영화들 - 영화평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7. 7. 14.




<죽여주는 여자>

<죽여주는 여자>는 ‘영화적 조합’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고산자>의 경우, 왜 강우석 감독이 이런 영화를? 왜 차승원이 김정호 선생을? 의문이 들게 했지만 <죽여주는 여자>의 윤여정과 이재용의 조합은 기대를 품게 했다. 윤여정을 받아낼 그릇으로, 이재용의 의도를 구현해줄 배우로, 그 이상의 조합은 없을 것 같았다. 둘은 이미 <여배우들>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다. 

이 영화를 한 마디로 묘사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창동이 시를 썼고, 이재용이 또 한 편의 시를 썼다’라고.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보며, 주인공의 섬세한 감성을 따라갔던 관객이라면 <죽여주는 영화>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늙은, 몸을 파는, 성병에 걸린, 늘 문제를 만드는 여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말이다. 윤여정의 ‘인생영화’라 할 만하다. 

영화를 보는 동안 <커피 한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등 성매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화들이 떠올랐다. 감독은 성매매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묘사했고, 배우는 성매매 여성의 감수성으로 세상을 풀어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받게 만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영화감독은 때로 사회부 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 영화에서 이재용 감독이 그렇다. 윤여정은 리포터가 되어 그 문제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한다. 

낮은 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측면에서 소영(윤여정 분)은 일본 동북지방의 무당을 연상시킨다. 일본 동북지방에서는 사회적 약자인 여자가, 그 중에 성적 매력이 없는 늙은 여자가, 그 중에 장애인인 눈이 먼 여성들이 무당을 한다. 그들의 품으로 끌어안지 못할 약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사회통합 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영도 그렇다. 늙은 구원의 여신마냥 세상이 버린 약자들을 품는다. 아동 복지, 장애인 복지, 성소수자 복지, 노인 복지, 다 그녀의 몫이다. 어찌 보면 그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척점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자면서 철저하게 외면하는 대통령과 달리 그녀는 제 코가 석자인데 이들을 거둔다. 

그녀는 실패한 가부장제의 마지막 지지대가 된다. 그녀를 중심으로 유사가족이 꾸려지고 모두들 그녀에게 기생한다. 남자들은 참 염치가 없다. 마지막 궂은일까지 그녀에게 부탁한다. 소영의 비루한 말년을 그리고 있지만 그래서 남자들의 비루한 말년도 보인다. 끝없이 이해해주는 존재에 기댄 끝없이 이해받고 싶어하는 존재가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죽여주는 영화>는 참 죽여주는 제목인 것 같다. 그 이유는 보시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