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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정략적인 '코로나 프레임' 활용법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20. 3. 30.

이번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코로나 방역 백서보다 코로나 보도 백서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독했던 한국 언론의 보도 바이러스를 보도 프레임의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문재인정부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은 망하고 있다’ 프레임을 작동시켰던 우리 언론은 이후에도 무리한 보도를 쏟아냈다. 코로나19 보도는 우리 언론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 처참한 서사시였다.

먼저 세 가지 전제를 명확히 해두고자 한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 양쪽에서 모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언론의 원칙이다. 언론의 역할은 정부 칭찬이 아니라 정부 비판이라는 것, 국익을 위해 사실과 진실을 가려서 보도하는 것보다 사실과 진실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결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는 것, 언론의 역할은 대안과 해결책 제시가 아니라 좋은 문제제기를 통해 대안과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 전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세 가지 전제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한국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언론은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코로나19의 창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우리 언론이 제공한 프레임은 다분히 편향적이었다. 

이 편향성은 4월15일 총선과 떼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에 근거해서 판단할 수 있도록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판단에 기반해서 사실을 재구성한 보도가 ‘창궐’했다. ‘우리 정부의 잘못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더욱 퍼지고 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언론의 역할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번 보도는 언론의 의제 설정에 기능에 대한 일종의 직권 남용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악질적이었다.

이 와중에 클릭 장사도 횡행했다. 이 비도적인 장사는 위기 상황에서 창궐하기 마련인 혐오를 지렛대 삼았다. 혐오는 기본적으로 갈라짐을 전제로 한다. 즉 혐오를 부추기는 클릭 장사로 위기 상황에서 일치해야 할 국론은 분열되고 사람들은 갈라졌다. 정파적 보도와 혐오 보도는 그 어느 후진국 못지 않았다.  

동이번 코로나19 관련 일부 언론의 보도는 마치 잔칫상을 받아든 듯한 모습이었다. 정부를 몰아붙일 구실로 가득찬 잔칫상말이다. 마음대로 프레임을 설정하고 그 자의적 프레임대로 몰아붙였다. 코로나19의 정체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으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합의된 방법론도 없는 언론이 프레임을 남발했다. 한국 언론이 제시한 프레임의 문제와 이 프레임 때문에 간과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하나, 도달할 수 없는 절대 선을 설정해 놓고 비난하기.
이를 대표하는 표현이 바로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라는 표현이다. 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한 우리 언론의 몰이해를 보여준다. 하늘의 비를 다 막을 수 있는 우산을 찾는 격인데, 한마디로 하나마나한 소리다. 이런 무조건적인 비난은 적절한 대응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을 막는다.

둘, 실체 파악하는 과정 무시하기.
초기에는 어떤 언론도 이 바이스러스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어떤 언론도 어떤 대응이 맞는 대응인지 알지 못했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고 다른 나라도 사정은 같았다. 바이러스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과 제대로 된 대응으로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주어야 하는데, 이해하고 파악해 가는 것을 공격했다. 이렇게 하면 욕먹는 것이 두려워 정부는 제대로 정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셋,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제시하면서 두 가지 숙제를 함께 풀어내라고 채근하기.
이를테면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경기 부양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인데 전쟁과 경기부양을 동시에 이루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 당장의 숙제를 풀고 이후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순차적 접근을 막는다. 대구 봉쇄 문제나 확진자 동선 정보 공개 문제는 논쟁적인 이슈라 사회적 토론이 필요한데 비판에만 함몰했다.

넷, 진퇴양난에 빠뜨리기.
마스크를 중심으로 보면 ‘마스크 외교의 실패’라는 프레임으로 중국과 일본은 마스크 외교를 하고 있는데 한국은 소외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한국도 똑같이 마스크 교류를 하면 ‘마스크 퍼주기 프레임’으로 또다시 공격한다.

다섯, 본질과 핵심을 외면하고 흥미와 음모론을 꾀하기.
신천지 이만희 기자 회견의 박근혜 손목시계 보도는 우리 언론의 병폐를 집약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손목시계 진위 논란과 손목시계 착용 의도 등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면서 이번 코로나19 방역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 신천지의 대응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데만 집착한 언론도 있었다.

여섯, 혐오 장세에 숟가락 얹기.
사회적으로 혐오 정서가 팽배할 때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슬쩍 혐오에 묻어가고 이를 활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 언론에 있는데 이번 코로나19 국면에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한 것을 빌미로 ‘중국 혐오’에 기댄 보도가 많았다. 대림동에 가니 길에 침을 뱉더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일곱, 무조건 책임 전가하기.
마스크 대란이 정부 때문일까 언론 때문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와 특성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초기의 대응과 이를 제대로 파악한 뒤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바뀐 것만 공격하면서 마스크 대란을 부추겼다. 우리 언론은 최소한 마스크 대란의 공범이다.

여덟, 수준 낮은 논리로 정부 골리기.
한국인 입국 통제와 입국 제한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 떨어진다는 비난 보도가 자주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국가간 입국 제한은 보건 정책의 문제로 외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외교력의 문제로 치환했다. 왕따 당했다고, 뒤통수 맞았다고, 얼레리꼴레리 놀리는 보도였다.

아홉, 여전한 사대주의.
세계가 한국을 칭찬하는데 무리하게 해외 사례를 들어가면서 우리는 잘못하고 있다고 비교하는 보도가 많았다. 중국이 대규모 병동을 만들자 한국판 ‘팡창의원’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언론이 있었고 대만이 마스크 공적 배급 체계를 구축했다고 칭찬하다가 우리 정부가 하면 태도가 돌변해 ‘마스크 사회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외신에서 한국의 방역에 대한 호평이 쏟아져 나오면서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열, 이유 있는 오보.
중국에서 지원한 마스크가 불량이었다는 오보나 미국 국회의원이 한국의 진단 키트를 신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는 보도는 조금만 확인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외교 갈등을 일으키거나 우리의 진단 키트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보도인데 정부 비판에만 눈이 먼 것인지 제대로 된 확인도 없이 보도했다.

우리 언론이 보여준 ‘코로나 담론’ 혹은 ‘코로나 프레임’은 사실과 진실 보도에도 부합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중국 눈치보기’ ‘방역 실패’ ‘외교 참사’ ‘자화자찬’ 등의 프레임으로 공격하면서 다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국론 분열만 꾀했다.

정확성과 신속성이 언론의 핵심인데 우리 언론은 정확하지도 신속하지도 않았다. 무분별한 정부 비판 후에는 기사 수정과 기사 삭제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보도가 공익을 도모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국익과 배치되는 방향의 기사였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기사였다. 그런 기사를 그렇게 서둘러서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외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방역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 등 한국의 진단 시스템과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는 옳았다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이를 따라하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렇게 정부가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동안 우리 언론이 한 일은 무엇인가? 좀더 치열한 언론 비평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