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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의 군산여행, 탐조로 풍광을 탐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20. 11. 28.

겨울여행은 기획하기가 쉽지 않다. 춥기 때문이다. 추우면 움츠려들고 움츠리면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여행감을 살리기가 쉽지 않다. 추운데도 밖에 나올만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무엇으로는 눈만한 것이 없어서 대부분 겨울여행은 눈을 테마로 만들곤 한다. 다른 여행은 얼음 트레킹 정도다. 다른 여행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기는 쉽지 않다. 배려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감기라도 걸리면 가장상사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진다. 내 아이도 데리고 여행하기 쉽지 않은데 남의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서 하는 여행은 더욱 힘들다. 아이를 데려오는 여행에서 부모는 평소와 다르게 민감해진다. 나는 여행자들끼리 여행을 통한 관계맺기를 도모하는데 지인을 데려오면 내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시간과 신경을 다 쓰기 때문에 힘들어진다.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여행하기는 쉽지 않다. 아는 사람끼리는 배려하지만 모르는 사람끼리는 경계한다. 여행의 밀도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밀도다. 이런 여행은 거의 어시장에 갓 나온 냉동 생선 박스라 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가 얼음이다. 여기에 온기를 불어 넣기는 쉽지 않다.

 

불편한 숙소를 써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요즘은 하나가 되기보다는 각자가 되기를 원한다. 공동 숙소를 쓰게 되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가 쉽지 않은데 여기에 민감한 사람이 많다. 정리하자면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공동 숙소를 사용하면 여행하는 것은 사실 미친 짓에 가깝다. 그 어려운 걸 지난겨울 해냈다.

모든 시작은 미약하다. 지난겨울 군산 탐조 여행도 그랬다. 계기는 지인의 페이스북 사진이었다. 가정상사가 해외여행을 가 있는 동안 아이들과 여행할 곳을 찾고 있었다. 매년 겨울의 맛을 찾아 동장군이 깃드는 축제를 찾아다녔는데 여행감독을 표방한 올해는 좀 다른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사진이 조수남 사진가가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가창오리 사진이었다. 석양을 배경으로 한 가창오리 군무 사진을 보니 바로 이거다!’ 싶었다. 탐조 여행을 만들고 싶어서 바로 연락을 했다. 군산 구불길 사무국장이었던 조수남 사진가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었다. 역시나 흔쾌히 응해주었다.

 

페이스북으로 사람을 모으고 군산 외곽에 단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숙소를 에어비엔비로 잡았다(이런 공동 숙소를 잡는데는 에어비엔비가 유리하다). 마지막 고비가 있었다. 내가 다른 참가자들보다 늦게 도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미리 진용을 짜두었다. 조수남 사진가를 여행감독으로, 오지 경험이 많으신 분을 여행프로듀서로 그리고 믿음직한 두 분을 여행의 총무로 선임해 두었다.

탐조를 위한 집결지는 금강 하구 어느 지점이었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 금강철새조망대가 아니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된 뒤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새들이 거대한 조망대를 보고 겁을 먹어서 그쪽으로는 거의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를 쫓아낸 조망대라니 가장 한심한 세금 낭비가 아닌가 싶었다.

 

집결지에도 바람을 피할 가건물로 조망대를 만들어 두었지만 대부분 밖에 나와 있었다. 대부분 사진동호회 사람들이었는데 가창오리 군무를 찍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바람 피하려고 가건물로 들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차라리 강둑 아래 휴게소처럼 만들고 난로같은 것을 설치해서 몸을 녹일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들의 전투 준비 태세는 완벽했다. 대부분 대포처럼 생긴 고성능 렌즈를 장착한 묵직한 카메라를 지니고 있었다. 가창오리를 휴대전화로 찍겠다고 설치는 무모한 관람자는 우리뿐이었다. 이재나 저재나 가창오리 떼가 나타날까, 내가 자리를 비울 때 왔다 갈까봐 화장실도 안 가고 금강을 응시하는데 조수남 사진가는 태연하게 아래 포장마차에 내려가 있었다.

 

물어보니 가창오리가 군무를 추는 시간은 따로 있다고 했다. 전문가의 말을 믿고 나도 휴대전화의 안전장치를 풀고 라면을 한 그릇 청했다. 천천히 라면을 먹고 강둑에 올라서니 여전히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드디어 가창오리 떼를 볼 수 있었다. 기대만큼 가까이 와 주지는 않았지만 섭섭할 정도로 멀리도 아니었다(강둑에는 이미 수백 명의 사진가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단순히 가창오리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하나의 유기체를 보는 기분이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때 정교하게 프로그램 된 드론이 유기체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그 이상이었다. 하늘의 거대한 아메바라도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보았다.

 

가창오리는 우리가 만족할만큼 군무를 보여준 뒤에 상류쪽으로 사라졌다. 가창오리가 사라질 무렵 조수남 사진가도 사라졌다. 한참을 기다리자 나타났는데 가창오리 떼를 따라 차를 타고 상류 쪽으로 가서 찍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를 데려가지 않은 것에 조금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가 찍은 사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둑에서 대포알 렌즈를 끼고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다른 사진가에게 물으니 가창오리 군무 사진 중에 선호하는 사진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가창오리 떼가 석양을 배경으로 나는 사진이다. 사진가들이 서 있는 곳에서 가창오리 떼가 석양 방향으로 날아줘야 찍을 수 있는 사진인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석양을 향해 날아가는데 강물이 잔잔해서 가창오리 떼의 음영이 강에 비추는 사진이다. 이는 정말 드문 경우라고 했다.

 

가창오리 탐조를 마치고 오자 일행들 사이에 이야기꽃이 피었다. 다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라도 된 것처럼 서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았다. 확실히 경이로운 경험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힘이 있었다. 추위와 서먹함을 녹이고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었다. 숙소에서 이어진 술자리에서는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내 인생의 변곡점을 하나씩 털어 놓으며 더 가깝게 다가갔다. 추위에 얼었던 아이들의 마음도 모두 녹아 있었다.

 

다음날은 근처 저수지로 큰고니를 보러 갔다. 큰고니 탐조 역시 정보력이 핵심이었다. 조수남 사진가가 아침부터 여기저기에 전화를 하더니 우리가 갈 저수지를 정했다. 폐교된 대학 옆의 저수지였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큰고니 무리가 있었다. 여기서 겨울을 나고 가족 단위로 북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단위로 비행 연습을 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우아했다.

 

조용히 조심조심 저수지를 돌며 큰고니 무리를 관찰했는데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머리를 물속에 쳐박고 곧추 서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나 가마우지처럼 물 위를 스치듯 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서 심심한 줄 모르고 관찰했다. 조수남 사진가는 일전에 큰고니가 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아무튼 우리는 큰고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가창오리와 큰고니 탐조는 이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여행의 세시풍속 리스트에 이 탐조여행을 넣었다. 여행에는 때가 있다. 탐조여행은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맞으면서라도 한 번 해볼만한 여행이다. 동물원 우리의 새를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생생한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다음 겨울에도 도모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