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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감독의 나주 여행지와 맛집 답사 모음 #어른의여행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20. 12. 11.

 

'수고하고 짐 진 도시인을 위한 어른의 여행' - 이번에는 나주 여행의 표준 코스다. 

 

나주의 인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타이틀을 빼앗긴 도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돌이켜보니 나주가 빼앗긴 것이 한 둘이 아니었다.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불렀는데, 나주는 전라도 전통 도시의 대표성을 전주에 빼앗겼다.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말은 있어도 나주 한옥마을이라는 말은 없다. 단지 나주읍성이라는 표현이 있을 뿐. 목사가 부임하던 고장에서 현감이 부임하던 고장으로 격하된 셈이다.

근현대 들어서 나주는 광주에게 남도 중심도시 타이틀을 빼앗겼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호남의 유지들은 주로 나주에 살았고 이들의 자녀들이 광주까지 기차로 통학했다. 그 와중에 기차에서 조선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 사이에 시비가 붙어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나주 학생들이었지만 광주 학생 운동이 되었다.

전라남도 도청이 목포로(행정구역상 무안이지만 생활권은 목포) 이전하면서 나주는 남도 중심도시 타이틀을 되찾아 오지 못하고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목포에는 이것만 빼앗긴 것이 아니다. 영산포를 중심으로 삭힌 홍어가 시작되었지만 홍어의 도시라는 이름도 목포에 빼앗겼다. 목포는 민어와 함께 홍어의 도시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KTX에 이어 SRT까지 정차하는 교통의 요지지만 게스트하우스의 성지라는 타이틀은 순천에 빼앗겼다. 순천만정원박람회나 여수엑스포와 같은 대형 국책 행사가 인스타의 성지여수 밤바다와 같은 아이콘을 만들었지만 나주에는 그런 계기가 없었다. 그냥 나주배 하나로 근근이 버텼다.

타이틀을 빼앗긴 도시 나주가 타이틀을 되찾아오는 계기를 열어준 것은 나주곰탕이다. 나주곰탕은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각광받는 음식 중 하나로 수도권에서 나주곰탕 체인점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맛있는 남도 밥상에서 국밥 하나 기억해 주는 셈인데 이것으로는 미약하다.

지난해 나주에 3번 다녀왔다. 나주 여행을 이끌어준 분은 홍어 다큐멘터리 <핑크 피쉬> 제작을 진두지휘했던 송일준 광주MBC 대표님이다. ‘나주 홍어 대탐험을 제안해서 여행을 기획하게 되었다. 영산포 홍어 이야기만으로도 나주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나주 목서원과 난파정 등 근대 고택을 문화재생한 39-17마중의 남우진 대표님은 나주를 나지막이 안내해 주었다. 나주 토박이는 아니지만 문화공간을 일구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시 재생을 하고 있는 남 대표는 나주에 타이틀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송일준 대표님이 소개해 준 남우진 대표였는데 남우진 대표님이 남파고택의 박 씨 종손 어르신을 소개해 주었다. 약속도 없이 들이닥친 우리 일행을 남대표 얼굴을 봐서환영해 주시고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셔서 나주학현장 답사를 온 느낌이었다.

나주에서 내가 여행했던 곳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먼저 맛집부터(지극히 주관적인 리뷰다).

@ 사랑채(남도 한정식) : 남도 한정식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는 집은 아니지만 '가성비 좋은 남도 한정식'을 만날 수 있는 집이다. 1인당 2만 원에 서울에서 4만 원급 한정식집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을 받을 수 있다. 한정식을 모두 한 상에 차려서 따뜻하게 먹어야 할 음식을 차갑게 먹게 하는 곳이 있는데 이 집은 차갑게 먹어도 되는 밑반찬을 빼놓고는 모든 음식을 뜨뜻하게 먹을 수 있게 순서대로 내주어서 좋았다. 삭힌 홍어를 비롯해 낙지 등 나주에서 먹어야 할 것들을 두루 맛볼 수 있다.

 

@ 사매기곰탕(나주곰탕) : 나의 소울푸드 나주곰탕, 그래서 나주곰탕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편인데, 이 집도 충분히 좋았지만 살짝 아쉬운 점이 있었다. 정갈하게 나왔지만 고기가 다소 퍽퍽한 느낌이었다. 보통 나주곰탕은 하얀집이나 노안집을 추천한다. 맑은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얀집, 진한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노안집. 곰탕 맛보다는 이 집 아저씨가 하는 '째깐한 박물관'이 인상적이었다. 즉석 경매도 했는데 조선시대 양반들이 썼다던 곱돌 담뱃갑을 질러버렸다.

@ 영산강홍어(홍어정식) : 목포 오거리식당에서 삭히지 않은 홍어를 먹고 난 뒤부터 최애 홍어는 사실 생홍어가 되었다. 그래도 홍어애-홍어회무침-홍어삼합-홍어전-홍어찜-흑산도 홍어-홍어코-홍어튀김-홍어애탕(마지막 홍어애탕은 일찍 나와서 못 먹었다)까지) 홍어 만렙 달성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이 집을 한 번 방문해 보시길. 홍어의 A부터 Z까지 느낄 수 있는 곳. 숙성실 견학도 꼭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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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나주에서 가볼만한 장소

@ 목서원(근대 한옥) : 흥미로운 건축물이다. ‘일본식 한옥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식 다다미방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짬뽕집이다. 설계자가 누구인지 건물주가 누구인지 남아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39-17마중에는 목서원과 비교되는 정통 한옥 난파정이 있는데 나는 이곳이 더 흥미로웠다. 마중 카페에 차를 주문해서 마실 수도 있고 미리 예약하면 숙박할 수도 있다.


@ 난파고택과 나주 구도심 : 난파고택은 종손 어르신의 설명이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평소 흥미롭게 생각했던 박준채(광주학생운동의 첫 사건 주인공) 선생의 생가라서 귀를 쫑긋 세우고 설명을 들었다. 근현대 남도의 유지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살림살이 하나하나가 모두 인상적이었다. 나주읍성에서는 객사(금성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객사의 웅장한 자태가 이곳이 목사가 부임하던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이 읍성 산책을 할 때 마침 서문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한옥이 난파고택이다

@ 불회사 : 최근에 갔던 사찰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불심이 있는 불교 신자에게는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우리가 산사에서 기대하는 것들을 가장 잘 채워주는 사찰인 것 같다. 산사에 가서 느끼고 싶은 여유로움도 있고 절을 지나 올라가면 그윽한 풍경도 있고 산사까지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사찰을 둘러싼 식생이 좋았다. 비자나무 차나무 동백나무가 두루 식재되어 있어 계절마다 다른 풍광을 연출하는데 상사화도 많고 단풍도 좋다고 한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그리고 주지스님의 열린 자세도 좋았다. 언제든 가서 돈차 한 잔 하고 싶은 곳.

오른쪽 가운데 승복을 입은 분이 불회사 주지인 철인스님이다.


@ 죽설헌 : 박태후 화백이 혼자 조림한 비밀의 정원이다. 조경이 잘 된 정원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방치하면서도 나름 설계된 정원이어서 좋았다. 정원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허하지 않아 사진으로 보여줄 수 없어 아쉽다(사진은 주차장). 다양한 식생을 살필 수 있는데 특히 파초 터널이 인상적이었다. 미리 예약하면 박 화백님이 직접 안내해 주신다. 정원 산책 후 나눈 차담이 참 좋았다. 

부채를 들고 있는 분이 박태후 화백님이다. 

@ 영산포 : 홍어로 유명한 곳이지만 사실 쇠락한 포구다. 이제는 포구 기능을 거의 상실한 곳이고. 하지만 그 을씨년스러움이 오히려 정겨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옛 포구 자리에 홍어정식집이 줄지어 있는데 홍어를 정식으로 먹는 것은 투머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곰소항의 젓갈정식을 먹는 느낌이었다. 홍어삼합이 말해주듯 홍어는 개성을 발휘하되 밸런스를 맞춰줘야 맛있는 음식이다. 홍어로 기승전결을 하는 것은 투머치다.

홍어를 삭히는 옹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