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시풍속이 된 영화제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무주산골영화제와 함께 세시풍속처럼 매년 들르는 행사다. 두 행사 모두 캠핑을 하며 즐길 수 있는 행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캠핑과 영화를 둘 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함께 전원속에서 영화를 감상하며 행사를 즐기고 온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는 게스트로 영화 GV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산악영화가 주는 담백한 매력이 있다. 여행감독의 시선으로 산악영화를 보면 고산 등정대장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여행은 계산된 모험인데 고산 등정은 ‘계산된 위험’이라 앞에 선 자의 무거움이 느껴진다.
올해는 작천정 별빛캠핑장에서 캠핑 콘서트를 주관하면서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함께 했다. 오페라 연출가이면서 스스로 뮤지컬 가수이기도 한 홍민정 씨를 초대해 캠핑장 공연을 주선했다. 봄날씨지만 밤이고 고도가 있어서 제법 쌀쌀했는데 많은 분들이 공연에 집중해 주었다. 그들의 캠핑에 ‘선물같은 순간’을 선사할 수 있어서 기뻤다.
캠핑을 위해 트레비어에서 캠핑용 수제맥주 3000cc 케그와 디스펜서를 주문했다. 트레비어는 시음장을 겸한 레스토랑이 있어서 언양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다. 특히 독일식 족발 바비큐인 슈바인학센이 일품이다. 맥주 안주에 최적인 것들이 많아 잊지 않고 들르는데 이번에는 미리 수제맥주 케그를 부탁해 두었다.
산악영화제를 울주에서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울주에 영남알프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악영화제 기간에 캠핑을 할 때는 짬을 내서 간단한 하이킹을 즐기곤 한다. 이번에도 캠핑에 참가한 일행이 영남알프스 일대를 걸었다.
# 산악영화로 느끼는 삶의 경계선
다양한 액티비티가 가능하지만 산악영화제의 핵심은 영화다. 올해는 <마라토너의 고백>과 <영혼은 저 너머에>를 캠핑장에서 단체 관람했다. 그런 극단적인 도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는 작품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 고도 4천미터 급에서 나흘 동안 고립된 경험이 있어서 <영혼은 저 너머에>가 특히 와 닿았다.
산악영화에는 주로 삶과 죽음이 찰나에 좌우되는 산악인들의 모습이 담뎌있다. 선택의 무거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영혼은 저 너머에>에서도 큰 선택부터 찰나의 작은 선택까지 여러 선택을 보여준다. 비슷한 선택 상황에 놓였다 조난당했던 곽정혜 대장이 GV를 진행했다. 곽 대장의 책 제목도 <선택>이다. 자신의 왼손 손가락을 잃어버리게 했던 선택, 끝없이 복기되는 당시의 상황 이야기를 들었다.
2019년에는 <The Sweet Requiem>이라는 작품의 GV에 참가했다. 티벳에서 인도로 넘어가던 과정 중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인데, 얼핏 티벳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첩자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라 1980년대 ‘프락치 사건’을 연상시켰다. 삶의 문제는 정의와 불의로 쉽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의 상황과 과거의 기억을 교차해 보여주며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 울주(언양)를 바꾸는 계기가 되려면~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린 영남알프스 산악상영관 인근의 '등억온천단지'는 러브호텔단지다. 특히 무인호텔이 많다. 원래는 온천이 유명했던 곳이다. 우후죽순으로 온천호텔이 생기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온천 원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온천호텔이 문을 닫으면서 오래된 러브호텔도 대부분 문을 닫고 몇몇 무인호텔만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숙소 블록에는 카페도 별로 없고 몇몇 식당만 있다. 몇몇 호텔/모텔은 귀신 나오기 딱 좋을 정도로 풀과 나무가 자라있었다. 짓다가 열지도 못하고 바로 폐허가 된 곳도 한두 곳 보였다.
이 등억온천단지 위로는 영남알프스 능선이 지나고 아래로는 작궤천이 흐른다. 울산역이 있는 언양읍에서도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이 블록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그냥 버려두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적당히 경사지면서도 적당히 넓어서 건물을 앉히기에 좋았다.
이중 한 곳이라도 워크스테이(일과 스테이가 가능한 공간) 장소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위층은 그대로 숙소로 쓰고 1층을 '공유 오피스'로 개조하면 멋진 워크스테이 장소로 활용할 수 있을텐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가 영화제 기간 외에 잘 활용되지 않는다면 이곳을 공유오피스로 재해석해도 좋고)
아시아에서 이런 워크스테이가 가장 발달한 곳이 발리와 치앙마이다. 등억은 산골이니 '등억 치앙마이'로 이름지으면 어떨까 싶다. 언양불고기 함께 구워먹을 공유 키친도 만들고.
동해안의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바다가 가까운 곳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간절곶, 울주암각화 등 시그니쳐 관광자원을 살리면 좋은 스테이 프로그램을 짤 수 있을 것 같다. 오전에는 공유오피스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영남알프스/동해에서 각자 액티비티 하고, 저녁에는 공유키친에서 같이 음식 만들어서 네트워킹을 하는~
아무쪼록 내년에 다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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