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단순히 경험을 통해 배우지 않는다. 경험한 것을 성찰하면서 배운다. 기자를 그만두고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이라는 여행클럽을 구축해서 지난 몇 년간 여행을 기획/진행하면서 청년의 여행과 어른의 여행이 어떻게 다른지를 지켜보았다. 지금의 여행 콘텐츠는 대부분 2030이 주축이다. 그들의 취향과 성향이 과잉 대표되어 있다. '어른의 여행'에 대한 고민을 '서른 가지 여행의 기술'로 정리해 보았다.
어른을 위한 여행의 기술 #1
@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이해하라
사람들은 관광과 여행의 차이를 얘기할 때 대체로 관광보다 여행을 더 가치 있는 일로 여긴다. 그런데 실제 여행 일정표를 짜보라고 하면 여행이 아니라 관광 일정표를 짠다. 관광과 여행의 관계는 돈과 행복의 관계와 비슷하다. 돈만 있다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을 느끼기 쉽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다운 여행을 고민하더라도 전략적으로 관광을 품어내야 한다.
@ 여행에서 어떻게 '스테이'할 것인가를 고민하라
어른의 여행은 '멈춤'의 설계가 중요하다. 어디서 멈출지, 얼마나 멈출지. 잘 멈추는 것이 여행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잘 멈추기 위해서는 일정을 짤 때 '뺄셈의 미학'을 적용해야 한다. 일정을 뺄수록 여행은 좋아진다. 국민 소득이 늘면서 스테이형 여행이 증가한다. '한 달 살기'가 대표적이다. 스테이의 여유를 어떻게 가져볼지 궁리해야 한다.
@ 유튜브 채널 밖으로 벗어나라
좋은 건 때가 있다. 젊을 때 좋은 것과 나이들어 좋은 것은 차이가 난다. 젊은이의 여행과 중년의 여행은 다르다. 그때 맛있었던 것이 지금도 맛있긴 하지만 더 맛있는 것을 알고 있다. 체력적 한계도 있고. 유튜브의 젊은 여행을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진다. 지금의 여행 정보는 너무 20대 취향이 과잉 대표되어 있다. '어른의 여행'을 위한 튜닝이 필요하다.
@ 항공권을 먼저 생각하라
현재의 항공권 예약 사이트는 출장자를 위해 개발된 시스템이다. 목적지와 일정이 정해져있다. 여기에 맞는 항공권을 찾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자유여행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행자는 목적지와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항공권을 중심으로 여행을 설계하면 여행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여행비를 절약할 수 있다.
@ 좋게 행동하는 구조
여행에 좋은 사람만 모으기는 힘들다. 좋은 사람은 바쁘다. 좋은 사람은 서로 데려가려고 하니까. 그렇다면 '좋게 행동하게 하는 구조'를 짜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 사회라면 쉽지 않지만 여행지에서는 어렵지 않다.
@ 장점을 발견하는 기술과 단점을 이해하는 기술
여행의 기술 두 가지를 요야하면 '장점을 발견하는 기술과 단점을 이해하는 기술'로 요약할 수 있다. 이걸 반대로 해서 단점을 발견하는 기술이 뛰어나면 여행에서 보내는 시간과 쓰는 돈이 아까워진다. 여행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이 있고 여행하며 성숙한 인격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 본캐가 아니라 부캐로 여행하라
당신이 아닌 누군가가 되어 보라. 사회가 혹은 지인들이 혹은 가족이 당신에게 요구한 모습이 아닌, 자유로운 당신의 모습을 설계하고 한 번 되어보라. 여행지에서는 어차피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좋은 기회다.
@ 예술적으로 여행하라
예술여행이라고 하면 예술을 감상하는 여행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데, 이건 초보다. 과하면 과부하가 걸린다. 예술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중간이다. 여행가가 여행지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최고는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보는 여행이다.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용해서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게 된다.
@ 여행의 지복점(bliss point)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누구나 직관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맛의 지복점이 있다. 그렇다면 여행에서도 지복점이 있을 수 있다. 이 지복점은 연령과 성별과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여행그룹의 성격에 맞게 여행의 지복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내 직업의 미래처럼 내 여행의 미래도 고민하라
오지에서 6070 여행자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여행의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그곳에 오는 이유는 한 가지다. '다 가봤으니 남들 안 가본 곳 가보고 싶다'는 것이다. '바쁜 현대 도시인'의 여행 순서는 보통 이렇다. 직장 생활 시작 무렵에는 휴가도 적고 휴가비도 적어 주로 동남아 덤핑 여행을 간다. 그다음에는 유럽 몇 개국을 순례한다. 마지막으로 은퇴하면 시간이 남는다며, 오지 여행을 간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이 반대로 한다. 우리도 휴가와 소득이 늘고 있다. 그들의 여행 필모그래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어른을 위한
어른을 위한 여행의 기술 #2
@ 여행 준비를 문학과 예술로 해보라
여행을 가기 전 현지 여행정보부터 찾지 말고 여행지와 관련된 문학과 예술작품부터 찾아보라. 터키 여행 전에 영화 <윈터 슬립>을 보고 야쿠시마 종주 전에 <흑과 다의 환상>을 읽어보라. 그 지역과 관련된 음악과 회화로 준비하는 것도 좋다. 여행정보는 벼락치기가 효과가 높다.
@ 현지 여행 정보를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사람, 그곳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대도시에 가서 사는 사람, 대도시에 살다가 그곳으로 가서 사는 사람, 그 지역의 관광과 공무원. 중요한 것은 나와 가장 유사한 시선으로(유사한 취향으로) 그곳을 안내해 줄 사람이다.
@ 여행가의 감성에 속지 마라.
그들은 일로 여행한 사람이다. 특히 돈 받고 여행한 사람의 감성에 속지 마라. 세상에 제일 쓸데 없는 정보가 돈 받고 하는 칭찬이다. 감성은 일로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하다가 쉬러 가는 당신의 몫이다.
@ 사람이 여행이다
여행감독에게 사람은 두 종류다. 여행이 나오는 사람과 여행이 안 나오는 사람. 여행이 나오는 사람은 한량지수가 높다. 한량지수가 높은 사람은 쓸데없는 관심이 많다. 그걸 알려주지 않으면 못 배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훌륭한 여행의 길잡이다.
@ 스탑오버 투어를 활용하라
항공기 트랜스퍼를 할 때 스탑오버로 여행을 하면, 항공요금 추가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카타르항공의 도하, 에티하드항공의 아부다비, 에미레이트항공의 두바이가 대표적이다. 카자흐스탄 알마티도 마찬가지다.
@ 숙소의 장단점을 알고 이용하라.
한인민박은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라. 이용하지 않기 위해 다른 숙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은 여행 공부다. 호텔의 핵심은 컨티뉴어티 즉 안정성이다. 세계 어디에서도 일관된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다. 세계 4대 호텔 체인 중 하나를 골라서 마일리지를 쌓아라. 숙소가 변변치 않을 때는 활용 가치를 생각하라.
@ 별점 테러를 당한 맛집을 즐기라
20대의 판단 기준과 중장년의 판단 기준은 다르다. 20대가 불친절하다며, 불결하다며, 인테리어가 별로라며 별점 테러를 가한 곳 중에 중장년이 좋아할 만한 맛집이 있다.
@ 지루하면 지는 거다
여행자의 격언은 '지루하면 지는 거다'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과도하면 불규칙해지고, 불규칙하면 멍해지고, 멍해지면 지루해진다. 규칙적인 가운데 소소한 발견을 하는 것이 여행의 묘미다.
@ 예쁜 쓰레기, 여행지의 기념품
대부분 '예쁜 쓰레기'가 된다. 반복적인 구매로 베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모으면 좋다. 특히 모아 놓으면 멋진 콜렉션이 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조선희의 고양이 인형(고양이 카페 인테리어), 김영도의 '어린 왕자'(인정받는 컬렉션)
@ 여행을 망치는 강박 '언제 다시 와 보겠나'
여행은 다시 올 이유만 찾아서 가도 성공이다. '언제 다시 여기를 와 보겠나'는 생각이 여행을 망친다.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차라리 카페에 앉아 차분히 담아가는 것도 방법.
어른을 위한 여행의 기술, #3
@ 모르니까 지루하다
여행클럽 멤버 중에 식물학자 지질학자 민속학자가 있으면 재밌다. 알면 알수록 재밌어진다. 모르면 모를수록 지루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여행에 대한 불평이 많아진다.
@ 삼인행이면 필유 가이드다
어른이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뽑아낼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들이 인생을 통해 직업적으로 혹은 취미로 쌓은 역량이 있다. 그것을 나누는 여행은 값지다.
@ 상전을 모시고 가지 마라
대접받으려는 사람과 여행하지 마라. 대접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다면. 당신의 여행을 망치는 첫 번째 비결이다. 대단한 사람과 여행한다고 대단한 여행이 되는 게 아니다. 대단한 민폐만 끼칠 수 있다.
@ 여행은 계산된 모험이다
탐험가는 계산된 위험을 즐긴다. 여행은 계산된 모험을 즐긴다. 모험을 즐기되 누군가는 미리 계산을 해 둬야 한다. 계산된 범위 안에서 우연한 모험을 즐길 수 있다.
@ 내 박자로 걸어라
걷는 게 재미없는 이유는 하나다. 내 호흡대로 걷지 못하고 남의 호흡에 따라서 걷기 때문이다. 내 호흡에 맞춰 내 박자로 걸으면 재밌다. 그때야 비로소 보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 여행 수단이 곧 여행이다 2 (여행의 스피드)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는 여행보다,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여행이 많이 보고, 기차보다 버스를 타고 가는 여행이 많이 보고, 버스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이 많이 보고, 자전거보다 걷는 여행이 더 많이 본다. 자전거를 타고 '자타르시스'를 혹은 걸으며 '발타르시스'를 느껴 보라.
@ 앱이 애비다
여행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라. 구글 지도만 잘 활용해도 여행의 질이 좋아진다. 모르면 토론하지 말고 검색해라. 검색한 것은 확인하고.
@ 먼 공통점과, 가까운 차이점
여행은 먼 공간의 멀리 느껴지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나와 혹은 우리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고 비슷해 보이는 이웃에서 차이를 발견하는 묘미다. 아까 갔던 마을과 지금 본 마을의 차이를 느끼는 순간 당신은 여행의 희열을 맛본 것이다.
@ 여행은 본풀이다
여행은 지적 탐구다. 표면의 결과물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여행이 고급지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보다는 와이너리에서, 와이너리보다는 포도밭을 경험하는 것이 더 즐겁다.
@ 여행은 오해의 미학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고 착각하지 마라. 여행은 '오해의 미학'이다. 여행은 그들을 읽는 일이 아니라 결국 그들을 통해 우리를 읽는 일이다. 나나 잘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