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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순 지키미 게시판/깨어나라 고봉순

"파업 기자와 PD들 A/B/C 등급 나눠 구분한다" (KBS)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7. 16.


 
“제가 KBS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나요?” 7월6일 MC 김미화씨는 트위터에 자신이 KBS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제작진에게 진위를 확인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KBS에 근무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 처음 그 말이 언론에 나왔을 때 제가 믿지 않았던,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블랙리스트’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것인지 밝혀주십시오.”

KBS는 대답 대신 소송으로 응수했다. 김미화씨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또 KBS 9시 뉴스에서 관련 소식을 전하고 영등포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길환영 콘텐츠본부장은 중앙일보(7월7일)에 기고한 ‘김미화씨가 말하는 블랙리스트는 없다’라는  글에서 “KBS에는 그녀가 언급한 문건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KBS가 김미화씨에 대한 전방위 공세에 나서자 유명인들이 자신도 KBS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며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이제 와서 하는 얘긴데, KBS <TV, 책을 말하다>에 진중권이 나왔다고 높으신 분께서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버리라고 하셨다더군요. 그래서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했다가 영원히 못 뵙게 됐지요”라고 올렸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도 블로그에 “지난 2009년 1월, 당시 고정출연 중이던 KBS 1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다. 그때가 개편 시기도 아니고 별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방송에 임박해서 급하게 하차 통보를 하는 것이 의아해 담당 PD에게 확인한 결과, 사유를 알 수 없는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른 것임이 확인되었다”라고 올렸다.


여기저기서 커밍아웃이 이어졌다. 사태를 지켜보던 배우 문성근씨도 한마디 보탰다. 그는 “<아침마당> 출연이 취소된 적 있다. PD·작가와 한 시간 넘게 사전 미팅까지 했는데 취소되어서 의아했는데 윗선 개입이 있었나보다”라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 역시 자신의 사례를 고백했다. 그는 “이병순 사장으로 바뀌고 나서 매일 출연하던 프로그램 두 편과 매주 출연하는 프로그램 두 편에서 모두 하차했다.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았는데 심지어 방송 한 시간 전에 KBS로 가는 길에 하차 통보를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KBS 측은 이런 주장이 허위 날조라고 반박했다. KBS는 진중권 교수의 주장에 대해 “2009년 1월1일 <TV, 책을 말하다> 최종회 방송 당시 ‘늦은 시간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라는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에 이어 <TV, 책을 말하다>가 종영된다는 내용의 자막과 영상이 방송됐다”라고 밝혔다. 유창선 박사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과연 KBS에 출연해서는 안 될 사람 명단을 적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까? 일단 서류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7월1일부터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 노조)에서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서류상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블랙리스트란 일종의 기피인물 명단을 말한다. 문서화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특정 인물에 대한 조직적인 배제 시스템이 작동한다면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선 PD들을 통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았다. 출연자뿐만 아니라 제작자들까지 블랙리스트를 의식했다면 귀납적으로 리스트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7월8일 KBS 새 노조 전국조합원총회에 참석한 KBS PD들에게 공개적으로 물어보았다.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느냐, 혹은 윗선이 기피하는 인물을 진행자나 출연자 섭외에서 제외한 적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PD 여러 명이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한 텔레비전 PD는 “외부 진행자뿐 아니라 내부 진행자 중에서도 기피인물이 있다. 바로 낙하산 사장 퇴진운동을 벌였던 ‘KBS 사원행동’의 주축 아나운서들이다. 노골적으로 배제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프로그램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이형걸 아나운서다. 담당 PD와 책임 PD가 교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는 결국 <러브 인 아시아> MC에서 교체되었다.


KBS 일선 PD들은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프로그램 진행자 결정을 ‘윗선’에서 하기 때문에 관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KBS 새 노조 이내규 부위원장은 “국장급 간부들이 MC 선정위원회를 조직해 진행자를 결정한다. 그래서 제작진도 모르는 체 MC가 결정되기도 한다. 심지어 선정위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KBS 사측은 진행자 선정 과정의 잡음이 일선 PD의 무능 탓이라고 주장했다. 한상덕 홍보국장은 “기피인물이라고 배제한 게 문제가 아니라 일선 PD의 역량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위에서 확실히 지시한 것도 아닌데 일선 PD가 당시에 명확하게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으면서 나중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개인적인 양식과 역량의 문제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한 PD는 보이지 않는 블랙리스트는 진행자뿐만 아니라 연출자에 대해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강택·김영환·국은주 PD 등 KBS 사원행동의 주축이던 PD들은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서 제외되었다. 심지어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사측은 리스트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 눈에는 보인다. 너무나 잘  보인다. 이미 몇몇 PD에게 주홍글씨가 새겨졌다”라고 말했다.

    

KBS에서 퇴출시킨 진행자와 출연자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 정치 활동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창선 박사는 “그냥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방송을 많이 한 사람이거나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찍어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단순히 정치 활동 여부가 방송 부적격자를 판단하는 원칙이 아니라는 것은 현 정부에 우호적인 정치 활동을 한 연예인들이 자유롭게 출연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정두언 의원과 절친한 개그맨 이봉원씨와 나경원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가수 임백천씨는 KBS 프로그램에 복귀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요즘 파업과 관련해 KBS에는 새로운 블랙리스트가 돌고 있다. 바로 파업 참가자 리스트다. KBS 사원행동 대표를 했던 양승동 PD는 “한 간부 수첩을 보니 본부와 국실별로 참가자 일일보고를 하고 있었다. 젊은 PD들이 술자리에서 나는 A급 참가자니 B급 참가자니 하면서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다”라고 말했다.


파업 참가자를 등급을 나눠 파악하는 것에 대해 KBS 한상덕 홍보국장은 “회사에서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이상 근태기록을 할 수밖에 없다. 파업에 동참하는 정도에 따라, 이를테면 온종일 자리를 비우는 사람을 A급으로 분류하는 식으로 구분해서 파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KBS는 지금 블랙리스트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