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살지 못해도
잘 놀고 잘 쉴 수는 있지 않을까?
연중 기획으로 '잘 놀고 잘 쉬는 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먼저 '놀쉬돌' 4인의, 그들이 사는 세상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잘 놀고 잘 쉬는 무리 - 놀쉬당'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주변에 이런 그룹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지난여름 백수 신세를 감수하고 캄보디아·네팔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나는 조금 더 자랐다. 돌아와 나는 여전히 가난하지만, ‘삶’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허은실-방송작가)
"고되고 지치면 떠난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이라도 느리게 걷거나 낯선 골목으로 스며든다. 조금 더 먼 땅으로 걸음을 내기도 한다. 그곳에서 잠깐씩 걷고 자주 머문다."(박상준-카페주인)
"보스나 직장인이나 조금 일하고 많이 쉬고, 또 많이 벌고 싶은 건 마찬가지다. 그게 직장의 본질이다. 결국 질풍처럼 일하고, 폭풍처럼 노는 게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유일한 방법이다."(탁현민-기획사 대표)
"덴마크 아이들에게는 치열한 경쟁이 없다. ‘학력’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고 ‘흥미’와 ‘관심’이 그 자리를 차지하다보니, 쉴 수 있다. 그리고 잘 놀 수 있다."(탁재형-오지여행 전문PD)
‘노는 여자’ 힌두 신과 놀다
허은실 (방송작가 - MBC라디오 <문화야 놀자>)
작정해서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지난여름은 힌두의 신들과 놀았다. 처음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킨 곳은 몽골과 남미였다. 하지만 함께 가기로 한 사람과의 시간 조율이 여의치 않아 우선 캄보디아와 인도로 떠나기로 한 것.
두 달간의 휴가였다. 두 달씩이나 휴가를 쓸 수 있느냐며 부러워하시겠지만, 나는 비정규 계약직 구성작가이다. 한번 떠나면 돌아올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쉬는 동안은 수입이 땡전 한 푼 없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 역시, 사람들이 늘 ‘가난한’이라는 수식을 아낌없이 달아주시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백수가 된 처지이므로 여행 경비의 반 정도는 동생에게 빌려야 했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을 즐기는 것이 내일의 통장보다, 방송작가라는 이름표보다 소중했다. 그 두 달은 10년 방송작가로 살아온 내 몸에 주는 최소한의 안식월이기도 했다.
먼저 캄보디아. 하늘과 웃음이 많은 나라. ‘써바이’라는 말을 배웠다. ‘쏙 써바이?’(행복하십니까?) ‘써바이 써바이’(행복합니다). 그들의 인사다. 나는 나의 안부를 물었다. 쏙 써바이? 마음이 대답하지 않았다. 무너진 폐허의 신전에서 나는 마음의 폐허를 더듬었다.
힌두 ‘신’을 알현하고 와 지난여름 ‘시인’이 되었다. 그리고 8월. 애초에는 인도만 가려고 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 전 누군가 늘어놓은 네팔 예찬에 귀가 얇은 우리 커플은 네팔행까지 즉흥적으로 결정해버린다. 비자와 비행기 표 문제로 현지 대사관과 여행사를 찾아다니느라 애 좀 먹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만사형통이고 일사천리라면 재미없잖아! 그런 마음가짐으로 간 배낭여행이었지만 나는 내가 서울의 시계에 매여 있음을 깨달았다. 되도록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려 욕심을 내고, 애초 세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내가 보였다.
최대한 마음 내키는 대로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이방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일은 나의 내부를 편력하는 일이었다. 짐승과 사람이, 자동차와 인력거가, 먹는 물과 똥물이, 산 육신과 시체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좋고 나쁜 것, 쾌와 불쾌의 구분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 것인지를, 그 분별하는 마음이 나의 감옥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앙코르와트와 바라나시와 카트만두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나는 내 마음의 우기(雨期)를 지나는 중이었다. 일상의 시간에서 신화의 시간으로 나는 확장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조금 더 자랐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글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느낀다.
이방의 거리에서 나는 자랐다
돌아와 나는 여전히, 아니 더욱 가난하다. ‘적게 벌어 적게 쓰자’가 내 생활관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더 담대해지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원고료를 주는 연출가조차 그거 갖고 살 수 있느냐고 진심으로 걱정하지만, 남들의 ‘생활’과 같아지려는 욕심만 버리면 ‘삶’은 부자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는 생물학적으로 진리다. 하여 음주가무라는 이념에 충실하고자 나는 주말마다 라틴댄스와 기타를 배운다. 노래방에 갔을 때 ‘어디서 좀 놀아보셨군요’ 하는 칭찬을 듣는 게 보람차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 놀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에 오늘을 저당잡혀서 살기에는 당신은 너무 아까운 사람! (그래요. 나, 노는 여자예요.)
즐겁지 않으면 떠나십시오!
박상준 (카페주인)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카페를 하며 산다. 서울의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다 정착했다. 한적한 동네다. 잠을 자는 집은 이대역 근처다. 아침에 일어나 이대역에서 부암동으로 넘어온다. 정확히 넘어온다,가 맞다. 도로의 건물들 너머로 인왕산이다. 기세등등하다. 청운동을 지나 길은 산속을 가로지른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다. 고개를 넘어설 때 먼발치에는 다시 북한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때로는 두서너 정거장 일찍 버스에서 내린다. 풍경이 부르는 날이다. 봄날의 산벚나무이거나 가을날의 꽃단풍이거나. 비 오는 날의 괜스러운 낭만 앞에서, 설산의 위용 앞에서 슬며시 하차 버튼을 누른다. 고작 15분 남짓의 일탈이다. 삶의 궤도를 바꿔놓을 시간은 아니지만 하루의 기운을 바꿔놓기에는 충분하다. 방전된 삶을 채우는 습관이다. 짧은 여행이다.
계기는 있었다. 마음이 주저앉은 어느 날이었다. 수도승처럼 카페를 지키고서는 아무도 오지 않기를 바랐다. 간절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그날은 낭만 대신 낙망이 난무했다. 반가움으로 사람을 대하기가 버거웠다. 밤 10시 마지막 손님이 찾아왔다. 단골 신부님이었다. 그는 마치 성경의 한 장면을 재현하듯 떡을 떼어 나누더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스러운 구도의 길도 스스로 즐겁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었다. 심란하거나 지친 마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가 즐겁지 않은 삶에 돈이 무슨 소용일까.
세상의 속도에 맞서는 딴청
카페에서 커피를 내린다. 틈틈이 여행에 관한 글을 쓴다. 부러움을 사는 삶이다. 감사하다. 나 또한 좋아하는 나의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풍요를 보장하지 않듯, 늘 즐거운 것만도 아니다. 때때로 고되고 지친다. 쓸쓸한 마음이 내리는 커피는 쓰고, 갑갑한 마음이 쓰는 글은 무겁기만 하다. 그럴 때는 즐겁지 않다. 고통이다. 그럼 떠난다. 버스에서 내려 잠깐이라도 느리게 걷거나 낯선 골목으로 스며든다. 조금 더 먼 땅으로 걸음을 내기도 한다. 그곳에서 잠깐씩 걷고 자주 머문다. 노동 같은 걷기보다 산책 같은 걸음이다.
특별한 것도 없다. 행복에 대한 수긍과 긍정마저도 강박일 테니. 그저 가끔씩 길 위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주저앉거나 눕는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거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먼 데 바람이 불어와 이마의 땀을 씻는다. 황홀한 찰나. 그 순간 내 주변의 세상이 도란도란하다. 세상의 속도에 맞서는 딴청이다.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다. 비켜서서 누리는 행복이다. 물론 그 사이 통장의 잔고는 준다. 카페의 손님도 줄고 원고 청탁도 준다. 한번 끊긴 줄은 다시 잡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마음의 잔고’는 늘어난다. 풍요로운 마음의 살림살이는 남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지. 그 사실마저도 인정할밖에. 그 손실이 즐겁지 않은 삶보다 클까만. 그래서 또 즐겁지 않으면 떠나고 즐겁기 위해 떠날밖에. 공자님 말씀처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아멘! 이 말씀이 경전이다.
죽어라 일해라, 그래야 논다
탁현민 (P당 대표, 성공회대 겸임교수)
보스로 3년 동안 지내며 내린 결론은 갖은 혜택을 부여해도 회사란 결코 (마냥) 즐거울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직장이란 대부분 늦게 나와서 빨리 가고 싶은 곳이고, 자아실현이니 놀면서 일하는 직장이니 하는 말들은 전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일 뿐이다(도대체 왜 자아 실현을 직장에서 해야 하며, 왜 직장에서 놀아야 하는가?).
직장인은 조금 일하고 많이 쉬고 많이 받고, 또 더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다니기 마련인데 그것은 사실 보스도 별반 다를 바 없다. 보스가 되는 것은 좀 더 좋은 자동차와 좀 더 맛있는 음식과 좀 더 많은 돈을 받는 대가로 좀 더 많은 고민과 좀 더 많은 일과 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물론 보스는 스태프들의 입사 면접 때, 너무나 일하고 싶다던 맹서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맹서가 ‘너무나 놀고 싶다’로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 그러니 “너 들어올 때 열심히 일하겠다며? 일이 좋다며?”라고 따져 묻는 것은 객쩍은 일이다.
그렇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 아니던가? 하여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일도 하고 회사도 돌아가고 아쉬운 대로 잘 쉬기도 하고 어쩌고 하기 위해서는, 그런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폭풍처럼 일하고 폭풍처럼 쉬게 해주는 방법 말고는 묘안이 없었다. 스태프들에게 일 년에 한 달을 쉬게 해주고 그 한 달 동안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비행기 표를 끊어주는 것,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이나 다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눈 딱 감고 지원해주는 일 따위는 사실 폭풍처럼 더 일하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자아실현? 웃기고 있네
그런 모습을 회사 밖 사람들은 ‘놀면서 일하는 회사’ ‘즐거운 일터’로 착각하지만, 그렇게 놀고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 그 나머지 시간에 당하는 혹사는 뭐 대략 예상하시는 대로다. 물론 그 정도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재계 순위를 다투는 대기업도 아니고, 기껏 스물댓 명이 모여서 한 해 벌어 한 해 먹고사는 주제에 사실 좀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보스라는 자리도 결국 노는 것을 목적으로 일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보스를 스태프와 같은 위치에 놓고 보면 스태프들을 놀게 해주는 딱 그만큼 보스도 놀 수 있게 된다. 같이 일하고 같이 노는 사람이 된다.
일하는 게 노는 것이고 일이 좋아서 일한다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곳, 결국 일을 해야 하는 곳에서 일하지 않고 놀고 싶은 욕구를 채우려면, 그러면서 일도 잘 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질풍처럼 일하고 폭풍처럼 노는 것만이 능률과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호모루덴스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보고서
탁재형 (오지여행 전문PD EBS <세계테마기행>)
자꾸 우울해지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려고 초콜릿을 씹으며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내린 것이 지난해 9월24일이었다. 다큐멘터리 <행복해지는 법>의 취재를 위한 일주일간의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취재 시작부터 역설일 수밖에 없었다. 취재 예산을 절감하느라 스위스에서 다른 프로그램의 촬영이 끝나자마자 조연출과 출연자 편에 촬영 테이프를 한국으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떠나온 참이었으니. 누구보다 수면 부족에, 일에 치여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인 내가, ‘행복’에 대한 취재를 한다고? 손에 들고 있는 스위스 초콜릿 포장지에 인쇄된 젖소가 웃을 일이었다.
덴마크는 행복학 연구의 선구자 에드 디너 교수(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가 해마다 실시하는 국가 간 ‘행복도 조사’에서 거의 매년 1위를 놓치지 않는 나라이다(참고로 지난해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전체 135개 조사 대상국 중 꼴찌에서 거꾸로 15위를 차지했다). 취재 목적은 명확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 왜 그렇게 행복한 거야?’ 아니, ‘진짜로 행복하긴 한 거야?’
안 그래도 살짝 짜증 나 있는 상태에서 시작된 취재는 첫 방문지인 초등학교에서 이미 정신적 공황상태로 이행하고 만다. 아니 글쎄, 아이들이 학교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것이다! 거대한 놀이방처럼 꾸며진 학교 1층에서는, 수업을 마친 저학년 아이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미장원 놀이가 한창이고, 한쪽에서는 당구를,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소꿉놀이가 한창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부모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오후 시간을 온통 놀이로 보내는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에게 물었다.
불안한 사람에게 휴식은 없다
“아이가 노는 시간에 부족한 공부를 좀 더 시키거나 하고 싶지는 않습니까?” “그래 봤자 아이가 스트레스를 느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사립학교를 보내다가 공부를 너무 시키는 것 같아서 이 학교로 옮긴 건데요.” “그러면 시험 성적이 떨어지거나 하면요?” “시험 같은 건 없는데요.”
9학년까지 다니게 되어 있는 덴마크의 초등학교에는 시험이 없다. 다만 9학년 말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자격시험이 있을 뿐이다. 그럼 그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만이라도 머리 싸매고 공부하지 않겠느냐고? 전혀. 덴마크에서 학력은 그 사람의 관심사와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기가 진정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으면 대학을 가고, 일찍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싶으면 직업학교를 간다. 이 선택의 결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단언컨대 전혀 없다. 그러고도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4위다.
불안한 사람에게 휴식은 없다. 도태의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놀 수 있는 여유란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 내 어깨에서 이 유리와 반도체로 만들어진 골칫덩이를 내려놓고,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다시 초콜릿을 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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