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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몸살 프로젝트/조선일보 칼럼 첨삭 지도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의 황당한 올림픽 비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8. 8. 28.





김대중군 보아요


일단 안부부터 전하지요.
오래간만이에요.
그동안 선생님이 이명박군의 방송장악 놀이를 막느라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썼네요.
아직 명박군의 놀이가 다 끝나지 않았지만,
김군의 칼럼 역시 ‘목불인견’이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네요.
 

8월25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금메달과 평준화’라는 칼럼 잘 읽었어요.
이 칼럼에서 김군은
“올림픽 금메달은 찬양하면서 '경쟁' 부정하는 것은 위선이다.
경쟁 가득 찬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아이들에 경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라고 주장했어요.
여기에 대해서 선생님이 한 마디 할께요.


칼럼 첨삭지도에 앞서 선생님이 요즘 우려하는 바를 먼저 전할께요.
요즘 우리 사회에 ‘빨갱이’들이 득세하고 있어요.
청와대에도 있는 것 같아요.
글쎄 KBS가 관영방송이라면서 이명박 정부의 통치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는 거에요.
이것은 방송을 사회주의 선전선동의 도구로 쓰는 ‘빨갱이’들의 주장과 똑같은 것이에요.


올림픽 이후에는 ‘엘리트 체육’ 육성을 주장하는 ‘빨갱이’들이 득세하고 있어요.
역사적으로 올림픽 순위에 가장 연연하고 ‘엘리트 체육’을 구현했던 정치 지도자는 대부분 ‘빨갱이’거나 독재자였어요.
구소련과 중국이 대표적인 예죠.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자 우리 사회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빨갱이’들이 눈에 띄더군요.


걱정마세요.
김군이 ‘빨갱이’라는 것이 아니라, 행여 빨간 물이 들까 걱정이 돼서 한 얘기예요.
젊은 시절 빨간 물이 짙게 들었던 이들이 회색 물을 들이고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나와서 젊었을 때 했던 얘기와 180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봐서, 노파심에서 한 얘기에요.
늙어서 그러면 추할 것 같아서요.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먼저 김군의 놀라운 발견을 축하드려요.
김군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역시 김군은 남들이 발견하는 것을 발견하고 남들이 생각해내는 것을 생각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 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 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 '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올림픽의 정신은 참여에 있다고들 하고 패자(敗者)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김군은 금메달은 경쟁에서 이겨내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말하며
이를 ‘교육 평준화’를 비판하는 논리로 활용했어요.
경쟁을 터부시하는 평준화가 우리 아이들의 학력을 ‘하향평준화’ 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김군은 이것을 모두 전교조 탓으로 돌렸어요.
김군은 “경쟁을 나쁜 것으로 여기는 전교조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은 우리의 차세대들은  '너 죽고 나 사는' 투쟁에 아무런 훈련이나 준비 없이 나서게 된다.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무장인 채 세상에 내보내고 있다. 이것은 죄악이다”라고 비난했어요.


김군은 또한 냉혹한 세상의 질서를 얘기하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인생이, 인간의 삶이 언제까지나 평등하게 가고 너 나의 차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경쟁은 힘들고 평준화는 편하다. 경쟁은 때로 각박하고 남을 밟고 넘어서는 작업이다. 비인간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쟁 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은 그야말로 낙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준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곧 경쟁이 판치는 엄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경쟁이 아닌 배정(配定)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금메달만을 숭상하는 세상의 인심에 직면하게 된다.”


김군의 말은
음...딱 맞는 말도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닌 이상한 말인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부분 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전혀 논리적이 않은 말이에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 지 모르겠는데,
일단 잘못된 비유부터 고쳐줄께요.


김군은 올림픽과 입시를 비유했는데, 맞는 비유가 아니지요.
올림픽은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될 수 있지만
입시는 그렇지가 않지요.
노벨상 정도를 올림픽에 비유한다면 모르겠지만
입시를 올림픽에 비유해서 최종 목적으로 삼는다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입시는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들이 치르는 기초체력 테스트 정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라면 기초체력이 좋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기초체력이 좋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런데 한국은 기초체력 테스트(입시) 성적만 가지고서
그 성적이 좋으면(김군처럼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면)
마치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도 된 것처럼 떠받들지요.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고 떠받드는 것은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아니라 
우리나라 유도 선수 중에서 기초체력 테스트 100등 안에 들었다고 그 선수를 떠받드는 것이잖아요.


입시는 단순히 학생의 종합적인 학습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에요. 
그 학생이 어떤 학문적 성취를 할 수 있느냐와는 상관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김군, 운동선수가 메달도 못따고선 기초체력 테스트 성적이 좋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면 그  모양이 우숩지 않을까요?  


그리고 김군은 ‘고교 평준화’를 엿장수 마음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이해하는 평준화라는 것은 경쟁을 아예 하지 말고, 싹수 있는 학생들도 대충대충 공부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부모가 돈이 많든 적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강남에서 학교를 다니든 강북에서 학교를 다니든 아니면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든
경쟁조건을 최대한 평등하게 하자(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지만)는 것이
고교 평등화의 취지 아닌가요? 


아울러 선생님은 김군의 지극히 비관적인 세계관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어요.
김군은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세상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나 김군, 세상은 바뀔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했어요.
김군 등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바로 바뀐 세상이었어요.


만약 김군의 말이
‘봐라 명박이형이 6개월만에 다 바꾸어 놓지 않느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일면 일리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세상은 바뀌는 거에요. 명박이형도 이제 4년 6개월 남았어요. 


“이것은 죄악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 없는 세상을 끝까지 보장할 수 없다면 아이들을 덮어놓고 무장 해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왜냐하면 메달은 바로 경쟁이고 금메달은 최고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평준화로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김군의 잘못은,
그런 비관적인 세계관을 아래 세대까지 이어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에요.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戰後)세대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웠다. 형제끼리도 경쟁했고 친한 친구끼리도 경쟁했다.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했던 경쟁 속의 삶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경쟁체제로 가고 있다. 경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고 평준·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교조식(式) 교육으로는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세대가
자식들도 자신들처럼 뺑이치라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을까요?
자식들은 자신들처럼 무의미한 삶의 톱니바퀴에 치여 살지 말라고 그 생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가르친 것 아닐까요?


또한 선생님은
우리의 의식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김군의 의식구조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어요.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순되는 의식의 단면들을 여기저기서 목도한다. 교육제도는 평준화에 머물면서 경쟁의 최고치인 금메달에 환호하는 이중구조가 대표적이다.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부르짖으면서 자녀들은 미국에 못 보내 안달인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상이 버젓이 존재한다. 명색이 법치국가라면서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진 세태가 판을 친다. 너무나 위선적이다.”


뭐가 위선적이라는 것이죠?
자녀를 미국에 보내는 사람은 미국에게 먹을만한 쇠고기를 수출하라고 주장하면 안 되나요?
북한주민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비정규직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실이 더 문제 아닌가요?
명색이 법치국가라면서 국가기관이 법을 무시하는 세태가 더 위선적인 것 아닌가요?


김군,
지난번 첨삭지도 했을 때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좀더 분발하세요.


추신) 김군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무엇인지 깨우칠 수 있도록 시드니 올림픽에서 수영경력 9개월 만에 자유형 100미터 경기에 출전한 적도기니의 에릭 무삼바니 선수의 동영상을 올려 놓았어요. 특별초청 선수로 출전한 그는 개헤엄으로 코스를 겨우 완주한 후 “100미터는 너무 길었다. 빠져 죽지 않기 위해 완주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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