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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발견/대한민국 '놀쉬돌'

여행 대신 권하는 여행서 일곱권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2. 8. 4.

인생을 알면 알수록 고전이 달리 읽히듯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여행서도 새롭게 읽힌다. 여름휴가 때 여행을 못 가는 상황이라면 여행서를 읽으며 여행을 상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서는 여행을 가기 직전 실용적인 목적으로 구입하곤 한다. 여행을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지, 정보 위주의 여행서들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여행을 다녀오면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다시 여행을 가게 될 때는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새로운 여행 안내서를 구입하기도 한다. 


이런 것 말고 다른 여행서는 없을까?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고 새로운 경험을 얻는다. 그러면서 감성의 회복을 꾀한다. 여행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직접 여행을 떠난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제대로 된 여행 ‘이론서’를 만난다면 말이다.





여행서 종결자는 문인들이 쓴 책들


먼저 평범하지 않은, 나만의 감성적인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문인이 쓴 여행서를 권한다. <시인의 오지 기행, 고요로 들다>(문학세계사)는 시인들의 여행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발걸음마다 상념에 젖고 시선을 옮길 때마다 감상에 젖는 시인들은 ‘감성 종결자’라 할 만하다. ‘마음속에 마음의 주인조차 어쩔 수 없는, 외면하고 싶은,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은 오지들이 있었다’며 오지를 찾는 이문재 시인을 비롯해 시인 23명이 독자를 오지로 이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불현듯 차를 몰고 오지로 향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영복(성공회대 명예교수)의 <변방을 찾아서>는 또 다른 맛을 전달하는 인문학적 여행기다. 여행지에서 공간을 만나는 방식,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 궁리하는 여행자들에게 권한다. “선생님 달 보냈습니다.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전해 밤하늘을 보게 만든 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을 독자로서 동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감옥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색을 한 저자이니 여행에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겠는가.







직업에 따라, 나이에 따라, 기분 상태에 따라...


취향에 따라 여행서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 여행서들은 세분화되어 있다. ‘런던의 카페’ ‘유럽의 작은 마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식으로, 테마가 구체적으로 나뉘어 있다. 여행 방식에 따라서도 도보 여행, 자전거 여행, 오토바이 여행, 자동차 여행, 전차 여행 등 다양한 책이 나와 있다. <유모차 밀고 유럽 여행>(김윤덕) 같은 안내서도 나와 있을 정도다. 자신의 나이대는 물론 심지어 현재의 기분 상태에 맞춰 여행서를 고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칠 것 같아 가봤다>(김승근)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서>(홍인혜) 가봤다는 식이다.


요즘 여행서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 여행작가나 문인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여행기를 쓴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소울 플레이스>의 경우 한의사, 영화감독, 영화배우, 건축가,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쓴 여행기를 담은 컴필레이션 여행서다. 제주도와 지리산을 지나 뉴욕과 바르셀로나와 같은 도시 그리고 방글라데시의 오지까지 여행하고 사유하는 방식이 직업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다. 대표 저자인 한의사 이기웅씨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한 어둠을 맛보라.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못 느끼는 불감증을 치료하는 최고의 묘약이다”라며 여행의 최고 처방전은 ‘어둠’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여행서들이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면 진짜 ‘고전’을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여행의 본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최근 나온 <오도릭의 동방기행>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븐 바투타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4대 여행서로 꼽히는데, 이 중 가장 늦게 번역되었다. 베네치아에서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갔다가 중앙아시아로 돌아온 여정을 담았다. 


후대에 문명의 기억을 좇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었던 당대에 현장을 돌았던 여행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여행지에서 송사에 휘말려 마호메드를 모독했다가 목숨을 잃은 네 수도사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깊이 있게 풀어냈다.  


여행에 대한 고정관념을 아예 집어던진 책도 있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이 대표적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썼던 저자가 이번에는 ‘불륜을 저질렀을 때 알리바이를 대려고 여행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듯’ 여행하지 않은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풀어냈다. 전작이 책을 읽지 않는 읽기, 즉 읽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책읽기에 대한 비판이었듯, 이 책 역시 여행했으나 여행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행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


CBS 정혜윤 PD는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서 인생을 ‘관광’에 비유하지 않고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사람과 사물과 공간을 대하듯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기쁨을 느끼듯 인생을 대하라고 저자는 말한다. 


세계 최고의 여행출판사로 꼽히는 론리 플래닛을 만든 토니 휠러와 모린 휠러 부부가 처음 세계여행을 떠나 지구 반대편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이들에게 남은 돈은 달랑 27센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40여 년의 여행을 통해 론리 플래닛을 키운 뒤 이들 부부가 BBC월드에 지분을 넘길 때 이 출판사의 가치는 수천만 달러로 커져 있었다. 이들의 철학은 ‘다른 여행자들이 쳐다보지 않는 여행지를 재발견하는 것’.


환갑을 넘긴 지금도 여전히 여행자로 사는 부부를 지난해 제주에서 만난 적이 있다. ‘어디가 가장 좋았나’ ‘어디가 가장 끔찍했나’ ‘어디를 여행해보고 싶나’ 등등 질문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부는 해초무침을 오래도록 씹으며 조용히 화순항을 바라보았다. 이들의 은은한 눈빛은 마치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