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관해 크게 한 수 가르쳐준 쿠바 여행의 기록
관광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자존업이다.
쿠바 여행이 준 깨달음이다.
관광을 서비스로 접근하는 건 하수다.
관광은 자존업이다.
관광지 사람들의 자존감이 여행자의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물론 쿠바의 역설도 있다.
모두가 쿠바에 가고 싶어하는데
쿠바의 젊은 세대는 다들 쿠바를 떠나고 싶어한다. (우리 가이드도 그랬다)
나라가 가난하니까.
그럼에도 쿠바인들은 자존감으로 꽉 차 있다.
심지어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거리에 구걸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지만 태도가 당당했다.
쿠바에 왔는데 돈 좀 내시지, 하는 태도.
무엇이 쿠바인들의 자존감의 원천인지가 궁금했다.
아르메니아는 가난하지만 격조 있는 나라였는데,
쿠바는 가난하지만 자존감이 있는 나라였다.
혁명 정부가 문화예술 교육과 체육 교육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쿠바인들의 자존감의 원천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쿠바인들은 일단,
스타일이 좋다.
그리고 피지컬이 좋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면 남 앞에서 일단 당당할 수 있다.
일종의 자기 완결성이 있는 셈인데, 일본인의 자기완결성과도 대비된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에서는 일치하지만
쿠바인들은 외형이 아니라 행위에서 자기완결성을 추구한다.
거기에서 나온 춤과 음악은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 여행자를 홀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쿠바의 레스토랑은 대부분 음식이 별로다.
플레이팅도 별로다.
그런데 음악에 홀려서 음식은 뒷전이다.
비유하자면 레스토랑에서 음악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곳에서 음식도 주는 것이다.
쿠바는 그런 곳이다.
쿠바인들의 이런 자존감의 원천이 혁명이 아닐지,
쿠바혁명이 남긴 유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쿠바의 매력을 구성하는 4대 요소를 꼽아보라면
아프리카 조상들이 물려준 소울
스페인 정복자들이 남긴 유산인 정열
미국 자본주의가 뿌려놓은 퇴폐와 향락
쿠바혁명이 남긴 자존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 셋도 비교 불가이지만,
이중 쿠바혁명이 원초적 자존감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소 우리를 쿠바로 이끄는 것과
우리가 쿠바를 기억하는 것은 달라진다.
쿠바로 이끄는 것을 꼽아본다면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체 게바라 그리고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쿠바에 다녀온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으로 쿠바를 기억하지 않는다.
모히토가 아니라 다이끼리로 아바나를 기억하듯이 말이다.
쿠바인들이 국부로 여기는 독립운동가 시인 호세 마르티의 '관타나메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라고 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자존감
거리의 이름 없는 밴드들이 선물한 멋진 순간들,
이것들로 쿠바를 기억하게 된다.
특히 피델이 인상적이었다.
관광객의 공간에는 게바라 상징이 압도적이었지만 일상의 공간은 피델이 주인공이었다.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보고 갈테면 가라 하고,
자신보다 인기 많은 게바라를 마음껏 추모하게 하고,
자신의 무덤에 ‘FIDEL’ 이름 다섯 글자만 남긴 남자,
그의 자존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런 피델처럼 쿠바인들도 자존감 덩어리들이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말이 쿠바인에게 적절할 것 같다.
그들은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그 자존감에 묻어지낸 쿠바의 모든 순간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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