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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논객 열전/보수에게 듣는다

촛불 1년, 보수 논객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5. 1.


촛불집회 1주년을 앞두고 보수단체인 공정언론시민연대 최홍재 사무처장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촛불집회 1주년에 대한 자신의 글을 보내며,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최 사무처장이 보낸 글을 올리고, 빠른 시일 내에 제 답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촛불! 과연 민주주의인가?

최홍재 -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촛불시위를 생각하면 언제나 양치기소년에 대한 우화가 연상됩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온전히 믿고),

바쁜 자신들의 일상을 뒤로 한 채 양과 소년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마을 주민들.

그러나 정작 늑대는 없었고, 성난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지요.

만일 그 소년이 마을 사람들의 ‘자발적’, ‘공공적’ 행위를 두고 ‘참여의 귀감’이라느니 ‘민주주의적 행위’라고 말한다면 그 마을 사람들의 기분이 어떠할까요?

그 옆 마을 사람들이 듣기엔 또 어떠할까요?

속고 기분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 마을 사람들은 공공의 일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 질 것이고

그렇다면 정작 그 소년은 사람들의 ‘자발성’이나 ‘공공성’,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 되겠군요.

‘촛불 =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등식이 성립하려면 ‘두 마리의 실존 늑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광우병이라는 늑대이고 또 하나는 그 늑대의 등에 타고 앉아 국민을 위협하는 정부라는 짐승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마리의 늑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PD수첩의 의도적 왜곡논란이 사실로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보면 늑대는 그들이 만들어낸 에니메이션일 뿐입니다.

빨리 한미FTA 비준해서 일자리 많이 만들려고 그야말로 기업식으로 일을 추진했던 정부에게 ‘상의’나 ‘소통’의 부재를 따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반민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인데 또 다른 늑대로 형상화된 것은 민주적으로 구성된 정부를 조기에 무력화시키려 했던 ‘반민주세력’들의 선동이었을 뿐이지요.

우리는 가끔 공공적인 일이 대중적으로 무산되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쓰레기 소각장 건설이 무산되거나, 결식아동을 위한 무료 방과후교실 개설을 반대하여 무산시키는 것도 모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또한 매우 비극적인 사태가 대중의 자발적 지지나 행동을 통해 결과되는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나찌즘 출현과 그 전개과정이 그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군요.

결국 ‘대중의 참여 = 민주주의’라는 등식이 성립하려면 참여의 내용이 진실과 민주주의적 내용에 기초해야만 합니다.

그런 면에서 ‘촛불=민주주의’라는 등식은 MBC PD수첩의 스튜디오나 ‘반민주세력’들의 문서 속에서만 존재할 것입니다.

거짓으로 인해 일어난 참여는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합니다.

거대한 사기극에 가슴졸인 우리 중·고생들이 승자일까요? 사기로 드러나고 있는 그 방송이 승자인가요?

허니문 기간 동안 속수무책으로 무력화되었던 정부가 승자인가요?

아무런 대안없이 오직 촛불 재점화에 온 희망을 걸고 있는 ‘반민주세력’들이 승자일까요?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 국민이 승자일 까닭이 있겠습니까?

우화속에서도 승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패자이지요. 거짓이란 그런 것입니다. 단순 명쾌한 진리일 것입니다.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가장 커다란 패자는 거짓말을 믿어준 사람들이 아니라,

정작 그 거짓말을 한 사람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지요.

우화 속의 소년처럼 말입니다.

‘거짓과 광기의 100일’

그 비극의 첫 날이 다가옵니다. 그 날을 점화시켰던 방송의 기억이 또 바로 ‘눈앞’이군요.

만일 양치기 소년이 첫 거짓말을 반성했다면 비극적인 우화의 주인공으로 회자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MBC 방송과 좌파진영이 현대판 우화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간곡하게 희망하는데,

정말 부질없는 것일까요?

공정언론시민연대 최홍재 사무처장

촛불 1년. ‘사상투쟁’이 불붙고 있다.
촛불집회를 자신의 프레임으로 끌어오려는 좌우의 경쟁이, 촛불 1주년을 계기로 본격화하는 기세다.
좌우 양쪽에서 “우리에게 과연 촛불은 무엇이었나”를 묻는 토론회가 앞다투어 열리고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촛불, 어떻게 볼 것인가> <거짓과 광기의 100일> 등 책 출간도 잇따른다.

<시사IN>은 보수 논객 세 명으로부터 촛불에 대한 평가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보수 논객 세 명에게 촛불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최홍재(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
변철환(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이사)
변희재(인터넷미디어협회 정책위원장. 미디어워치 대표)이 참석했다.

상대적으로 여론 시장에서 ‘소외받아온’(그들의 평가다) 세 보수 논객은
이날 작심한 듯 진보 진영이 먼저 나서서 ‘촛불 신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말을 한명 한명 따로 정리해 보았다.
최홍재 공정언론시민연대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 <시사IN> 독자가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이라지만, 평소 듣기 힘든 보수 성향 인사들이 촛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해한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최홍재 : 신문을 보고 있는데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아빠 그 신문 보지 마세요. 미친 소 수입해 국민 죽이려고 하는 나쁜 신문이에요. 우리 반 애들이 다 그래요”라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하더라. 이렇게 어린아이에게까지 사실이 아닌 논리를 주입해 여론을 왜곡하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이냐 하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 그런데 대중은 왜 그렇게 거리로 쏟아졌던 걸까?
최홍재 : 두 가지 동력이 있었다. 첫째, 광우병 위협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봤다. 시위를 점화했던 학생과 유모차 부대는 위험을 사실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거리로 안 나오면 오히려 그 나라는 희망이 없는 거지. 또 하나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다. MB 정부 조기 무력화를 노리던 세력이 모인 단체다. 대중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니까 대책회의가 급조됐다. 이런 두 흐름이 뒤섞여 흘러가다가 정부의 재협상 선언 이후 전자는 빠져나가고 후자만 남아서 나머지 50일을 끌고 갔다.

- 광우병대책회의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홍재 : 대책회의는 쇠고기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정부가 재협상을 천명했는데도 시위를 밀고 나간 것이 증거다. 어떤 의미에서 목표는 실현했다. 일 년간 정부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무력화되지 않았나. 하지만 따져보면 좌파가 받은 상처가 더 컸다. 모두가 패배한 싸움이었다. MB가 잘 해서 500만 표차로 이긴 게 아니다. 노무현의 실패가 MB 정부를 만들었다는 건 진보든 보수든 다 아는 얘기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 절실했던 것은 자기반성과 성찰과 혁신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촛불은 그런 성찰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진보 진영에서 지금도 성찰은 안 보이고 촛불을 어떻게 다시 불붙일까 얘기만 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고민이 안 보이는 거다. 그래서 최악의 패자는 진보 진영이다.

- 대책회의에 대중이 호응한 까닭은?
최홍재 : 이건 탄핵의 반작용이다. 탄핵은 본질적으로 보수 진영이 노무현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대책회의 역시 MB를 인정 못하는 거다. 양쪽 다 네 글자로 압축하면 ‘선거 불복’이다.

- 촛불이 우리 사회에 끼친 사회적 영향에 대해 평가해본다면.
최홍재 : 그 누구도 승자가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MB 정부가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현상적인 평가다. 가장 힘이 강한 집권 1년을 다 놓쳤다.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일을 추진해나갈 기회를 박탈당했다.

- 관심을 대중으로 돌려보자. 촛불 대중에게 촛불은 무엇이었을까. 촛불은 왜 꺼졌을까.
최홍재 : ‘촛불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세 가지를 묻고 싶다. 자발적 참여 축제 분위기에서 정부에 대한 항의라는 현상적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라면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현상’은 아니지 않나? 내가 은평구에서 결식아동 학교를 만들려 할 때, 동네 아줌마들이 자발적 참여로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했다. 이게 민주주의인가? 첫째 질문이다. 둘째, 아이들이 거리로 나오게 했던 근본적 동인, “미국산 쇠고기는 곧 광우병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셋째 “나 열다섯 살밖에 안 됐어요. 죽이지 말아주세요”는 그때 그 아이들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나 열다섯 살밖에 안 됐어요. 속이지 말아주세요”라는 역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거냐? 거짓과 위선 위에서 반정부 운동을 하려는 유혹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