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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노무현을 가까이 모실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전 참여정부 행정관)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5. 27.


전 참여정부 행정관 김상철님께서 '독설닷컴'에 글을 한 편 보내왔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회고를 담은 글입니다.
김상철님은 서거날 봉하마을 빈소에서 뵈었었는데,
황망한 마음에 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노무현은 무대 위와 무대 밖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글 - 김상철 (전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첫날 내려갔다가 직장 때문에 어제 새벽에 먼저 올라왔습니다.
다른 참여정부 前 직원들도 다들 급하게 봉하마을로 모였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라 경황이 없었지만
그래도 치러야 하는 일이라 변변히 울지도, 헌화도 분향도 못하고
바쁘게 일했습니다.
끝까지 일을 참 많이 시키시는 대통령이십니다.

분향소를 지키면서
일찍 찾아온 많은 분들의 얼굴을 뵈었습니다.
제가 딸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온 분들을 보면
유독 눈물이 더 많이 흘렀습니다.
지체장애로 보이는 아들을 안고 추모한 분도 계시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 하염없이 울던 외국인 노동자도 계셨습니다.
묵념을 마치고 돌아가시면서 상주로 서있는 참여정부 보좌진들에게
"대통령 돌아가시게 한 당신들은 벌 받을 것"이라며
비수 같은 말을 남기신 분도 계셨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분이 있습니다.
작은 체구의 여자 분이셨습니다.
상주들에게 체구만큼이나 가녀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또박또박 "잊지 않을게요" 하고 가셨습니다.
그 한 마디가 아직도 가슴을 울립니다.


저 같은 실무진 입장에서 기억하자면,
정말 일을 많이 시키신 대통령이셨습니다.
한 행사를 실무주관하면서 한달동안 7kg이 빠진 적도 있었고
일주일에 나흘 밤을 새기도 했습니다.
'정말정말, 내 용량으로는 더 이상은 못하는데' 생각할 정도의 상황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혹여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분들에게 누가 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그때 계셨던 누군가에게 들어보면
4년차 말, 5년차 임기 말이 되면 기본적인 업무 외에는 별 일이 없었답니다.
퇴임 후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거나 더러 '딴 짓' 할 여유도 있었답니다.
저도 5년차에 들어서서는
'퇴근 후에 평소 해보고 싶었던 섹소폰 학원이나 다녀볼까' 하는
순진한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퇴임을 앞둔 2008년 1월 차기 정부와 정부조직 개편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을 자료로 정리해 알리자고 했을 때는
뒷목이 돌덩이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일하는 과정은 비슷해서
위에서 지시가 나오면 계통을 타고 내려와 실무진에게 떨어지고
다시 계통을 타고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곧 나가는 마당에 이렇게까지 일을 시켜먹어야 하나' 싶어
속으로 많이 툴툴댔습니다.

그래도 했습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안 하면 당신께서 또 다 짊어지시고 나섰을 테니까요.
잘은 모르지만, 보좌진들 다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또 다른 이런저런 일들로 이취임식을 앞둔 마지막 주까지 야근하고,
짐 싸고 나가는 금요일까지 일처리하고 나왔습니다.
그냥 '허허' 웃으면서 했습니다.
해야 할 일 미루지 않고 먼저 겪은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벌여놓은 일, 남겨놓은 숙제들
우리 사회는 결국 다시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제기했지만 그냥 '씹어버리거나' '퉁 쳤던' 문제들도
다시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시 곱씹고 고민하고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일한 사람으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위안 받습니다.


이미 당신에 대한 평가와 추억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거창한 무언가를 더할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교적 다른 행정관들에 비해 비공개, 비공식 석상에서
대통령님을 뵙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똑같았습니다.
공개석상에서 하는 말씀이나 비공개석상에서 하는 말씀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런 말씀은 여기서만 하시고 공개석상에서는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괜한 시비만 불러올 텐데' 싶은 말씀도 나중에 공개석상에서 그대로 하셨습니다.
발언에 대한 평가나 시비를 떠나,
'무대 앞'과 '무대 뒤'의 말이 다르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아는, 당신이 접한 그 노무현이 그 노무현입니다.
잠시 참여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저는 물론이고
수십년간 대통령님을 모셨던 분들이 아는 노무현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 노무현을 생각하고 추모하는 여러분들이 아는 노무현이
바로 그 노무현입니다.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사람, 그런 정치인이나 대통령을
우린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요.


제대로 통곡이나 하면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눈물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저를 일하게 했던 업무 가운데 하나가
참여정부 5년을 기록하는 단편 동영상 제작이었습니다.
그저 참여정부 역사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던 그 동영상이
이렇게 빨리, 당신의 추모영상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어쩌다가 여기까지 온 건가요.

거창한 거 바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늘 봉하마을에 계실 테니까
언젠가 느긋하게 제 가족들 데리고 내려가면
"자네 오랜만이네, 딸아이하고 부인이신가 보지?"
이렇게 아는 척 한번 해주시고 사진 찍어주시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거창한 바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바랄 수 없게 됐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아픕니다.


2005년 4월부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대통령님을 모셨습니다.
커가는 제 딸아이에게
아빠는 그때 청와대에서 노무현 할아버지를 모셨다고,
아빠가 모신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늘에서도 우리나라 잘 지켜주세요' 이런 말 못 드리겠습니다.
많은 일을 하셨고, 너무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가셨으니, 이제 그만 편히 쉬십쇼.
부디 편히 쉬십쇼.


(김상철님 블로그 - 한줌의 ReStart : http://ksoul.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