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블로거 인큐베이팅’,
두 번째 대상은 바로 연예인입니다.
그런데 좀 색다른 연예인입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대만에서 ‘송아진(쑹야친)’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정다운님입니다.
(yaqinstory.tistory.com)
컴퓨터에 달린 캠으로 셀카를 찍어봤는데 제법 잘 나왔다
정다운님은 지난 겨울에 대만에서 데뷔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와 상하이에서 연예계 데뷔를 시도했지만
둘 다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기획사와 계약을 해서
상처받을 일도 없고, 일도 술술 잘 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대만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금의환향'할 수도 있겠죠.
정다운님은 ‘사즉생 생즉사’의 각오로 지난 겨울 대만으로 갔습니다.
아직 안정 단계에 들어섰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다운님은 CF모델로 활약하면서 몇몇 오락프로그램에도 출연하는 등
대만 연예계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어떤 CF에 출연했는지 2편에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다운님은 제가 <시사저널> 문화부에 있을 때
연예계 데뷔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메신저로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대만 연예계에 데뷔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4명을 취재했었는데, 다른 분들 소식도 궁금하군요)
왜 연예인이 되려고 하는지,
왜 대만에서 데뷔를 했는지,
대만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등을 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걸 제가 취재해서 전달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취재한 것도 다 포스팅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러다 문득 정다운님이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해 보았더니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언론장악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다 보니 블로그가 좀 건조해졌습니다.
그래서 좀 재밌는 내용이 아쉬웠는데, 정말 ‘딱’이다 싶었습니다.
(특히 텍스트 위주라 독자분들께 정말 미안했는데,
이번에는 사진 위주로 포스팅하려고 합니다.)
정다운님은 앞으로 3부 정도로 나누어 자신의 대만 데뷔기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 자료를 감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블로그를 만들어 한국의 팬들과 직접 만날 것입니다.
(저의 압박으로 어제 바로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정다운님 블로그 주소는 yaqinstory.tistory.com입니다.
방문하시고 응원 댓글 남겨주세요)
시리즈 제목을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로 지은 것은
정다운님이 혈혈단신으로 대만에 넘어가
연예인 ‘쑹야친’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붙여본 것입니다.
‘쑹야친’이 제2의 ‘산드라 박’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한 번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블로고스피어' 스타로 큰다면 재미있는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내 옆모습, 제법 분위기 있게 나온 것 같다.
대만에서 ‘야친’으로 살아남기
제1부 ‘내가 대만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
아시아에서의 한류의 첫 시작 시점은 대략 6~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 텐진에서 중국학교를 다니며 거주했던 터라,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린 마음에도 한국 연예인들이 더 나은 질의 대중문화를 전파하며 한국의 문화 사절단 역할까지 해내는 것을 보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중국의 어린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새로운 동경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의 꿈을 안고 있었던 저는, 진로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그 생각은 더욱 선명해 졌습니다. 많은 드라마와 음악이 중화권에 나가 사랑을 받지만 정작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진정한 한류 연예인이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제 인생에 대한 궤도를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나 연예계라는 판은 어찌나 여자의 마음처럼 갈대 같고 까탈스러운지 노력만 갖고는, 아니 혼자만 잘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스치고 지나치고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고...
정말 그야말로 삽 하나만 들고 물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계속 이렇게 땅을 파서 물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도 포기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였는지 소중한 인연을 따라 대만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살면서도 대만이라는 나라에 대해 사실 무지했는데, 중국말 할 줄 안다는 이유 하나로 겁 없이 들어간 것이죠. 와서 보니 말투도 글자도 다른 중국어라 현지 적응을 하는데도 시간이 좀 걸렸어요 . ‘쑹 야 친(송아진)’ 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대만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회사 신인들이랑 잡지 창간기념 파티에 가서 찍은 사진. 가운데가 난데, 지금보니 눈이 짝짝으로 나왔다. ㅋㅋ
적응을 좀 해놓고 숨을 돌리고 나니, 대만 연예계도 참 흥미로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첸수이비엔 대통령이 8년 동안 나라를 쥐고 흔드는 바람에 그 오랜 시간 대만은 국제무대에서 거의 고립되어 살았습니다. 하지만 연예계는 반대로 외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대만의 연예계가 중화권 시장으로 나가는 첫 번 째 통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살면서 알았던 많은 연예인들이 대부분 대만사람들이었고 싱가폴, 홍콩 등의 연예인도 대부분 대만에서 데뷔를 하거나 대만을 거쳐서 다른 곳으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전체 인구 수가 서울 인구 정도밖에 안 되는(야친 님이 살짝 잘못 아신 것 같은데, 2천3백만 정도라고 하네요.) 작은 대만에 이런 또 다른 매력이 숨어있었던 것이지요.
차이차이차이라는 장수 예능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사진. 오른쪽 두 번째가 나다.
제가 대만에 도착했을 당시에 이미 한류의 바람은 대만에서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대만에는 한국이랑은 달리 공중파보다는 케이블이 보편화 되어 있는데, 90개 가까이 되는 채널의 케이블이 거의 집집마다 달려있을 정도랍니다.
채널이 90개라고 방송사도 90개는 아니고 한국의 MBC가 MBC드라마넷 MBC ESPN, 이런 식으로 특성화 한 채널을 갖고 있듯이 대만에도 공중파 방송사격의 큰 방송국에서 3~4개 이상의 채널들을 갖고 있어서 뉴스, 예능, 드라마 등으로 나누어 채널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여러 채널에서 한국 드라마를 끊임없이 틀고 있고(심지어 아침드라마도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답니다), 대만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덕택에 대만에서 한국인으로 연예계에 진출할 때 좋은 반응들을 얻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작년 겨울에 무작정 옮겨온 대만이라는 무대에서 ‘쏭 야 친’이라는 또 다른 나를 만들어가는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대만은 내거다. 미래의 우리집 앞에서 살짝 사진 한 방 박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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