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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위기인 한국의 대학/위기의 대학언론

MB식 언론탄압, 중앙대에서 재현되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7. 20.


이명박 정부가 언론장악을 위해 '미디어악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와 비슷한 언론장악 시도가 대학에서도 벌어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몇몇 대학에서 관련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데,
중앙대학교에서 이와 관련한 기고글을 보내왔습니다.
(위기의 대학언론 상황은 시사IN에서 기획기사로 다룰 예정입니다.)



MB의 언론탄압, 중앙대에서 재현되나?


글 - 이재원 (중앙대 대학원신문사 편집위원)


  기업가 출신 MB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던 지난해, 중앙대에서는 두산 그룹 박용성 회장이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직후 박 이사장은 “대학도 하나의 산업”이라며 “중앙대란 이름만 빼고 모두 바꿀 계획”이라고 말해 ‘불도저 MB’ 못지않게 ‘소통 없는 개혁’을 밀어붙일 것임을 예고했다. 그에게 개혁이란 곧 “19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싹 잊어버리고 백지 위에 새로 그리는” 기업식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박 이사장의 구조조정 예고는 새 재단이 들어선지 일 년이 되는 지금 본격화되고 있다. 학과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먼저 ‘소통 없는 개혁’의 바람이 불어 닥친 곳은 ‘소통의 중추’인 학내 언론사다. 여성주의 교지인 <녹지>는 성격이 다른 교지 <중앙문화>와의 통폐합을 강요당하고 있다. 또한 행정적으로 독립돼 있어 학교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대학원신문>마저 언론매체부로의 통합을 종용받고 있다. <대학원신문>이 자치기구로 남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관련 예산 지급이 중단된 상태다. 예산지급 중단은 학생자치활동을 인전하지 않는 실질적인 폐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불협화음’ 만드는 작곡가 출신 총장님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7월 14일(화요일) 오후 1시, 중앙대 본관 총장실 앞은 위와 같은 학교의 학내언론탄압을 규탄하는 학생들의 집회가 열렸다.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이루어진 약 30여 명의 학생들은 언론탄압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한 시간여 동안 자유발언과 구호가 이어진 끝에 학생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는 박범훈 총장을 만날 수 있었다.

  박 총장은 시위하는 학생들을 보자마자 삿대질을 하면서 해산을 명령했다. 이에 한 학생이 “언론이 구조조정의 대상입니까?”라고 항의하자 박 총장은 “학교가 그것뿐만 아니라 대학과 대학도 통합을 해야 하고, 학문단위 구조조정도 하고 있는데 그런 중에서 여러 가지를 검토해보라고 총장이 왜 말을 못해?”라며 응수했다. 하지만 총장이 말한 ‘검토’ 권유는 이미 예산 지급이 중단된 언론사 입장에선 일방적인 협박과 강요일 수밖에 없다. 허술한 답변에 만족하지 못한 또 다른 학생이 예산 지급 중단 문제를 거론하자 박 총장은 대꾸하지 않고 총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학내언론탄압이 가져올 대학의 어두운 미래

  이번 구조조정의 대상인 <녹지>와 <대학원신문>은 각각 ‘여성’과 ‘대학원생’이라는 범주 안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학내 언론이다. <녹지>는 여성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약자들의 권리 침해에 두루 관심을 두며, <대학원신문>은 명목상 학생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연구조교, 행정조교로 복무하고 있어 학교나 교수와 갈등이 생겼을 시 이를 드러내거나 문제화하기 어려운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 올해 상반기 <대학원신문>은 교수의 학생 연구 도용 문제, 학과의 장학금 유용실태, 교수임용제도의 문제점 등 민감한 이슈를 학내에 공론화시킨 바 있다. 이번 학내언론사 탄압이 중단되지 않을 시 앞으로 학내 여학생과 대학원생은 총여학생회나 대학원총학생회만을 의지해 권리를 지켜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학내에서 언론의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학교 측의 손해이기도 하다. 연구 사회에서 지향하는 창의적인 연구 성과는 기존의 권위 있는 연구들에 대한 거침없이 비판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획일적이고 무비판적인 담론만 무성하다면 그 대학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총장과 이사장은 학내 언론의 ‘추임새’에 귀 기울여야

 박범훈 총장은 올해 초 ‘풍류를 알면 정치를 잘 한다’ 강연회에서 판소리의 원리를 정치에 적용해 정치인과 국민 간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강연 내용에 의하면 정치인인 “소리꾼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민인 “관객의 호응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정치인은 국민의 “추임새를 들으면 빨리 잘못된 음을 고쳐야 한다.”
 학교 당국과 학내 언론의 관계는 박 총장이 제시한 소리꾼과 고수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아무리 개혁을 강행해나가도 그 과정에 학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수렴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총장과 이사장을 비롯한 개혁의 주체들은 무자비하게 학내 언론을 통폐합시킬 게 아니라 오히려 학내 언론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판을 수용하여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져있는 개혁의 선로를 수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