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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김대중 대통령 추모 게시판

나의 작은아버지, 김대중 대통령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09. 8. 27.


제 대신 하의도에 취재갔던 인턴기자가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하의도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받았던 그 훈훈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글 - 심진용 (시사IN 인턴기자)


지난주 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1박 2일간 하의도를 다녀왔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마을의 추모 분위기를 담기 위해서였지요.

목포와 광주도 둘러봤지만 확실히 고향 하의도는 달랐습니다.
친인척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영감님', '할아버지', '삼촌' 등 '선생님'보다도 훨씬
친숙한 호칭이 여기저기서 들리더군요.

천수를 누리셨다고 할 수도 있지만..
워낙에 힘겨운 시련 속에 사신 분이라 고향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4월 고향을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에
'짠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맞잡은 그 분 손이 어린아이처럼 아무 힘도 없어서
벅차오르는 감격 속에서도 무척이나 슬펐다는 이야기.
휠체어 타고 내리는 것도 힘겨워 하셔서 마음 아팠다는 이야기.
'삼촌 저 아무개에요'하고 인사를 드렸지만
잘 알아 듣지 못하고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는 이야기. 그래서 눈물이 나더라는 이야기.
하필이면 비가 오락가락 궂고 추운 날씨라
발발 떠시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는 이야기.

....
...
..


김대중 대통령과 얽힌 즐거운 추억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야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인과 즐거웠던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 하의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카 김홍선씨가 맏상주로 분향소를 지키고 있더군요.
자리를 마주하고 '나의 작은아버지 김대중'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다음은 김홍선씨가 기억하는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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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이었나, 초등학교 6학년이었나 어머니 모시고
동교동 작은아버지 뵈러 올라 간 적이 있었지.
근데 그때 하의도는 전화고 뭐고 없잖아? 올라가기 며칠 전에 전보를 부쳤어.
작은어머니한테 서울역 올라와서 연락하라고 답이 왔어.

그런데 우리는 뭐 서울도 하의도마냥 나가서 몇 번 물어보면 다 찾아갈 수 있을 줄 알았지.
마늘이며 양파며 고춧가루며 이고, 지고, 메고 목포에서 열차 타고 서울역에 내렸어.
그때 편도 4차선 도로를 처음 봤는데 차는 씽씽 달리고 길 건너는게 어찌나 무섭던지.
엄청 달린 기억이 나네..

하여간에 무작정  택시부터 잡아탔어.

"김대중씨 집에 갑시다."

우리 작은아버지가 날리는 정치인이니까 이름만 대면 다 알거라고 생각했는데
택시기사가 또 어딘지 알아듣더라고. 허허.

그렇게 해서 내린 데가 신촌로터리인가 아마 그 부근일거여.
그때 어린 마음에 작은 아버지가 워낙에 유명한 사람이니
당연히 근방에서 제일 크고 으리으리한 집에 사실 거라고 생각했지.

좋아 보이는 집만 골라서 다섯 집인가 벨을 눌렀는데 다 아니라고 하더라고.
한참을 찾아 헤맸는데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건너편 저 집이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거야.

그런데 이건 뭐 동네에서 제일 작고 초라한 집 아니겠어?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보니까 비 오면 여기저기 안 새는 데가 없겠더라고.

하여간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가 왜 연락을 안했냐고 물으시길래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찾아왔소.
으리으리한 집만 찾아다니다가 진 다 뺐소 하니까

다들 그렇게 배꼽 잡고 웃으시는게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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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김홍선씨가 워낙에 말씀을 잘하셔서 참 재밌게 들었는데
막상 글로 옮기고 나니 말로 들었을 때보다 재미가 많이 덜한 것 같네요. ㅡㅜ

여튼.. 하의도 촌놈 김홍선씨 그날 처음 서울 올라가서
서울 작은 밥공기로 일곱 그릇이나 밥을 먹었다.
수세식 화장실을 처음 봤는데.. 한참이나 물 내려가는 거 보고 덜컥 겁이 났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납니다.
그때마다 껄껄 웃으셨다는 젊은 시절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희호 여사 모습도 머리에 그려지구요.

김홍선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 형님의 막내아들입니다.
늦둥이로 태어나 다른 형제와 나이차이도 많이 나지요.
올해로 마흔 여덟인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열한 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작은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형님이 안 계시니 내가 이 집안 장남이다. 너희들도 나를 아버지라 생각하고 뭐든지 이야기해라."
라고 하셨다는데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아버지 대하는게 어려워 지더라는군요.
작은아버지이기 전에 정치인 김대중의 그림자가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요.

남들에게는 그렇게 자상하면서도 가족, 친척에게는 엄했던
'어려운 작은아버지'

김홍선씨가 기억하는 작은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섭섭한 점도 많았지만 다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원래 큰 나무 밑이 그런거 아니겠냐면서요.

돌이켜보니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해 늘 미안하다던 고인의 말이 생각나네요.
조국을 대하는 정치인 김대중 이상으로
한 사람의 남편, 세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 잃은 조카들의 작은아버지로서 느낀
인간 김대중의 고뇌 역시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호(102호) 시사IN 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특집호로 꾸렸습니다. 
독재에 항거해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민을 통합해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그의 일생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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