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제가 복수의 확인 과정을 거쳐 '실체'임을 확인한 일입니다.
아직 당사자인 한지수씨나 언니인 한지희씨와 직접 접촉은 되지 않았지만
주변 인물들을 통해 검증했습니다.
이런 일은 해외에서 누구든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 친구도 남미 여행 중에 중상을 입어서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는데,
훨씬 더 난감한 경우인 것 같습니다.
누리꾼 여러분이
함께 진상을 규명하고
함께 대책을 논의했으면 합니다.
온두라스에서 살인 누명을 쓰고 억류된 한지수씨.
동생이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온두라스 감옥에 있습니다
http://pann.nate.com/index/index.do?action=index_main&body=board&boardID=200309425
안녕하세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여러 글들을 읽으며 웃고 울고 기뻐하거나 안타까워하며 그저 댓글 하나 달고 서명 하나 하던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세상 일은 모르는 것이라 도저히,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고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제 동생 지수는 지금 살인 공범의 혐의로 온두라스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온두라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는 분도 계실 텐데, 멕시코 아래 중미의 작은 나라랍니다.
GDP가 낮고 한 때 우리나라와 축구 경기를 했으며, 최근에는 쿠데타가 발생해서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태인 나라에요.
이야기를 하자면 1년 전으로 거슬러 갑니다.
관련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www.telegraph.co.uk/news/worldnews/centralamericaandthecaribbean/honduras/2627923/British-diver-held-in-Honduras-after-student-dies.html
동생 지수는 그 당시 스쿠버 다이빙 강사 자격증을 따러 온두라스의 로아탄이라는 섬에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일이라 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아 2008년 여름 온두라스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떠났던 것입니다.
댄(Dan)이라는 영국, 호주 국적을 가진 같은 다이빙 샵의 강사와 함께 방2개, 부엌1 , 화장실이 있는 건물을 임차하여 각자 방을 사용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사망한 마리스카(Mariska)는 네덜란드인으로 온두라스에 관광 혹은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왔습니다. 그렇게 셋은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사건 전일(2008.8.21) 저녁, 셋은 댄의 방에서 술을 마시며 담소를 하였으며, 얼마 후 지수는 잠을 자러 자기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잠을 자는 도중 댄의 도와달라는 소리를 듣고 화장실에 가보니 마리스카가 쓰러져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리스카를 구하려고 애를 썼고(두 사람 모두 다이빙 강사 혹은 강사 지망생이었기 때문에 응급 처치 방법 등을 알고 있으며 이에 응급 소생술을 시행습니다) 결국 마리스카를를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그 와중에 병원 앰뷸런스가 연락이 닿지 않아 트럭에 시트를 깔고 눕혀서 이송했을 정도로 열악한 국가입니다.
그 후 병원에서 스페인어로 말하는(온두라스는 스페인어를 씁니다) 의사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그 자리에 있으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둘은 귀가하여 흐트러진 사고 현장을 청소하였습니다. 마리스카가 쓰러질 당시 대변 등의 분비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 둘은 마리스카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마리스카의 사망 이후 댄은 구속되었고 지수는 이틀 간 거주제한을 받아 외출을 못하다 8월 25일 다이빙강사 자격시험 당일 법정출두를 명 받았고 이웃 섬에 있는 법정에 출두하여 진술하였습니다.
재판 이후 댄은 여권을 압수당한 상태에서 풀려났으며, 그 후 압수 당하지 않은 다른 여권을 이용하여 온두라스를 출국하였습니다. 지수는 재판에 출두하는 바람에 자격시험을 치르지 못해 1달 여를 더 머물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지수는 이 사건은 사고사다, 라고 알고 사건이 모두 종결되었다고 생각했고, 이 당시 지수에 대한 출국 금지 명령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지수는 몇 달 머물다가 이집트로 스쿠버 다이빙 강사 생활을 하러 떠났습니다.
2008년 12월부터 반 년이 좀 넘게 아무 일 없이 강사 생활을 하였는데 지난 달, 8월 27일 이집트를 출국하려다가 인터폴에 수배되어 갑자기 체포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많았던 것이, 지수가 체포 당하면서 이집트에서는 대사관이나 가족들에게 아무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착해서 연락하기로 한 동생의 소재를 알 수도 없고 연락도 닿지 않고 거의 일주일 가까이 연락 두절이었고 저희 가족들은 이집트의 지인이며 대사관 항공사 등 여기저기 연락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어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다 지수를 찾은 것도 공적인 루트로 연락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수가 현지인에게 가족으로의 연락을 부탁해서 언니인 제가 겨우 연락을 받아 대사관에 연락했고, 대사관에서 그를 바탕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찾아주었기에 겨우 행방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혐의와 영장 발부 사유도 제대로 고지 받지 못하여, 풀려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이전에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저희 가족과 대사관은 동분서주하였습니다.
동생은 공항에서부터 체포 당해 제대로 체포 사유도 알지 못한 채, 소지품을 압수, 수색 당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을 분실했고(심지어는 이집트 경찰이 수색하고 난 후에 돈이 없어지기까지 했다는군요) 열악한 유치장에 역시 최소한의 인권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갇혀 있었습니다.
스물 다섯의 여자입니다.
멀리 타국에서 그 누구와도 연락이 안되는 상황에서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죄목으로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있으면 그 어느 누구라도 편하지 못할 테지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모든 사람들과 금새 친해지던 제 동생은, 1주일 후 겨우 연락이 닿았을 당시 정신적으로 너무나 불안하고 피폐해져 있었습니다. 처음 유치장에 갇혔을 때 차가운 돌바닥에서 잠을 자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니 목이 돌아가 있는 걸 발견하고 울면서 목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너무 속상한 나머지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일이 있었지만 그 하나하나에 화를 내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이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화낼 기력도 없다는 이야기니까요.
이집트에서 수감된 지 3주 후에 이집트 정부는 지수를 온두라스로 신병 인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제법의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이집트가 동생을 온두라스로 신병 인도할 의무는 없었다고 알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후진국이고 적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낮은 온두라스에 동생을 보내면 안될 것 같아 어떻게든 이를 막으려고 하였으나 결국 동생은 온두라스에 가기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사건의 발생지인 온두라스에 가면 이 불합리한 상황을 어떻게 잘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어느 정도는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것도 없잖아 있습니다.
동생이 온두라스로 떠난 것이 23일, 현지의 한국 대사관과 연락을 취하던 저희 가족 중 아버지도 25일 급히 온두라스로 떠나셨습니다. 온두라스의 재판을 적법하게 정당하게 받을 수 있다면 큰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다만 이미 체포된 사실부터가 부당하고 듣기로는 정국이 불안하며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나라라는 말을 듣고 한시도 지체할 겨를이 없었기에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법 제도가 우리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지만 1st hearing이라고 동생이 온두라스에 도착한 지난 주(9월 23일) 처음 재판이 열렸고(아마도 구속적부심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2nd hearing이라고 사건의 타당성을 밝히는 재판이 어제 열렸습니다.
1st hearing에서는 동생의 변호사도 배석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절차만 진행이 되었고 이에 동생이 거세게 항의하자 담당 검사는 동생의 물품과 담당 영사님이 유치장에 넣어준 매트리스까지 빼앗았습니다. 이 부분만 보더라도 상식적인 사법 체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 당시 희망이 있었던 건 저희 쪽에서 검토한 사실을 보면 동생이 구속된 것부터가 부당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검사 쪽에서 현재 증거로 제시하는 부검 결과 목이 졸린 흔적이 있고 사인을 질식사라고 하지만 작년 댄(Dan)을 용의자로 한 재판 당시와 부검 결과도 다르고(만약 그랬다면 댄을 풀어줄 리가 없었겠죠, 졸린 흔적이 있다면 확실하게 살인이 성립되고 지문이나 기타 증거가 있을 텐데 왜 당시 용의자인 댄도 풀어주고 제 동생에 대해서도 아무런 제제가 없었을까요), 저희 변호사 측에서 고용한 의사의 분석 결과 엠피타민(마약, 코카인의 성분, 이 것이 사인이 될 수 있습니다)이 검출되었다고 기재되어 있지만 그 양도 기재가 되어 있지 않은 등 부검 결과 자체도 모순이 많고 그 것으로 동생의 혐의를 입증할 수 없음이 확실했습니다.
그리하여 2nd hearing에서 동생에 대한 기소가 불합리하다는 것이 밝혀지면 모든 일이 잘 종결될 수 있다고 변호사가 말했고 어제 2nd hearing 후 한국 시간 9월 29일 오전 12시 반(현지 시간 28일 오전 9시 반) 결과가 나왔는데..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결과가 나왔습니다.
변호사의 주장도 잘 들어주지 않았고, 의사의 부검 의견서도 검토하지 않고 다음에 열릴 본 재판에서 검토하겠다고 넘겼고
보통 60일 이내에 열리는 재판도 길게는 1년 이내에 열릴 수 있다고 변경하였고
재판이 열려도 끝나려면 역시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하네요.
심지어 그 동안 동생은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죄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유치소도 아닌 감옥에요.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망인의 국가인 네덜란드 쪽의 유무형의 압박이 심해서 그렇다고 하네요.
동생이 이집트에서 인도되어 올 때부터 네덜란드 측 경찰 혹은 공무원이 파나마에서부터 동석했고, 각 재판 때도 네덜란드 관계자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동생의 변호사도 들어올 수 없었던 1st hearing에서도요. 네덜란드 언론에서 동생을 취재하러 오기도 했고요.
실상 동생에 대한 기소가 이유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금방 풀어주면 네덜란드에 대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그런 이유로 그저 증인이었던 제 동생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유치장도 아닌 감옥에 갇혀 몇 년의 기약 없이 고생을 하게 될 지경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정말 막막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저와 저희 가족과 외교부 쪽에서 노력을 하였어도 이렇게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여태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름을 밝히는 것이 누가 될까 한 분 한 분 이 자리에서 감사 말씀을 드릴 수는 없으나 그 분들의 도움으로 동생과 연락할 수 있었고 각고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죄송스럽게도 저는 더 많은 분께 더 많은 도움을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삼가 대한민국과, 그 대한민국의 주인이신 여러분께 간절히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이 이야기를 널리 알려주시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움 주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꼭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지수의 언니, 한지희 드림
다음은 한지수씨 본인이 쓴 글입니다.
원문은 http://generalhan.egloos.com/ 에 가시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몸은 갇혀있는 상태지만 마음은 펄펄 기운차게 날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걸 이렇게 배우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집트에 감금되었던 그 순간부터, 어리석은 제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 신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인지 의문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이 저의 가족입니다. 지금 진 이 빚은 제가 이 생에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갚겠습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저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생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기운 내라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주소 스크랩 해서 주변 사람들께 알리시는 분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 격려 전화해주시는 분들, 문자 한 통 보내주시는 분들, 마음속으로 기도해주시는 분들, 이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저에게는 진짜 천사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도 한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될 수 있는,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견디겠습니다. 이것이 설사 몇 십 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건강한 신체와 성숙해진 정신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굳은 마음 먹고 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도 눈 부릅뜨고 꿀꺽 삼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 인생에서 저의 영혼이 이렇게 충만했을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제 영혼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울컥 합니다. 더이상 쓰면 글을 쓰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 같아서 감사의 말씀은 한국에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언니가 올린 글이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고 누락된 부분도 있어, 제가 다시 글을 올립니다. 여러 분들께서 의문을 주셨던 것에도 답변이 될 것입니다. (글을 조금이라도 짧게 하고자 단순 서술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말이 짧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독설닷컴 Inernational > 독설닷컴 특파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 Best 5 (39) | 2009.11.20 |
---|---|
트위터로 18명의 '해외특파원'을 모셨습니다 (59) | 2009.11.19 |
G20 정상회의 열면 '외국인 촛불원정대' 만 명 한국 올 것 (14) | 2009.09.27 |
뉴욕 한인들의 3차 '반MB 시위' 장면 (속보 4신) (17) | 2009.09.24 |
'미국 시민권자인 내가 반MB 시위를 한 이유' (속보 3신) (10) | 2009.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