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랑의교회의 2500억 교회 신축에 대해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있는 독설닷컴 보스톤 특파원 이의헌 님이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참고로 이의헌 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예수님이라면 2500억 호화교회를 반기실까?
이의헌 (독설닷컴 보스톤 특파원 -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2003년 초로 기억된다. 오정현목사님이 서울 사랑의교회의 청빙을 받았고, 남가주 사랑의교회 사임이 결정됐다. 한국 사랑의교회로 부임하기 전 오정현 목사님은 LA지역 각 대형교회를 돌면서 설교를 했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돼 한국교회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부흥회도 아닌데 경쟁 관계에 있을 수 있는 교회 목사에게 주일 설교를 양보하고, 심지어 축도권까지 나눠주는 LA지역 목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뭉클한 무언가를 느꼈다.
정확하게 7년이 지났다. 여전히 미국에 남아있는 나는 오정현 목사님이 한국에서 하는 사역의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강남 한복판에 2500억짜리 교회건물을 세우자며 교인들을 독려하면서, 건설현장에서 교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속에서 웃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7년전 내가 보았던 오정현 목사님의 모습은 아니었다. 내가 변한 것일수도 있고, 내가 7년전의 오정현 목사나 현재의 오정현 목사 중 한 쪽을 잘못 받던 것일 수도 있겠다.
목사님에 대한 단상은 여기쯤에서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2500억짜리 건물이 왜 문제인지 생각해 본다.
세상을 알면 알수록 내 정체성의 아주 중요한 바탕이기도 한 한국교계와 개교회의 모순과 편협성에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2500억짜리 건물의 기저에 깔린 한국기독교의 독특한 사상은 기복주의인 것 같다. '우리 아들 좋은 대학가게 해주세요', '우리 남편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등으로 대표되는 기복주의적인 기도 또는 신앙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부모로서 가족으로서 가질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하고, 인간적인 감정의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신앙은 기독교의 본질이라 할수 있는 '구원'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복음'과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럼 왜 기복주의가 2500억짜리 교회와 연결이 될까. 한국교계적 텍스트에서 기복주의의 기본적 관심은 '나' 또는 (배타적의미에서의) '우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라는 경계를 한정지어주는 개별교회라는 울타리는 쉽게 뛰어 넘긴 힘든 일종의 장막인 셈이다. 어려울 일이 있으면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식구들이 함께 기도를 해주니, 뭔가 좋은 일이 생기면 교회에 감사헌금을 하고 기쁨을 교인과 함께 나누자는 심리는 어느정도까지는 수긍할 만 하다.
하지만 기복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런 우리 라는 개념은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점차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예수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설교를 하니 복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교회로 몰리고,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에는 실제로 많은 복(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교회에서 롤모델로 인정받아 지도자(집사와 장로)가 되려면 적정수준의 헌금을 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경제적 사회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 교계의 일반적인 현실이다.
사회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대형교회의 중심부에 자리를 잡으니 그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속한 우리교회의 성공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교회가 좀 더 복을 받는 것이 결국 우리 가족과 나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교회가 받은 복을 수치적으로 계량화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많은 성도와 헌금액 그리고 그에 걸맞는 예배당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심리가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강남 부자교회의 대표적 예인 사랑의교회는 2500억짜리 교회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 25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건축헌금 약정을 어렵지 않게 교인들로부터 받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들의 리그'에서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겠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참견이냐라고 물을 수 있다. 좀 더 정화된 표현을 쓰자면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예배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 신축이 불가피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절대적 예배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에는 동감한다. 하지만 교회분할, 토요예배 신설, 주차장 및 예배공간 대여 등 다양한 해결방안이 있다. 굳이 비싼땅에 그 많은 돈을 들여 또 하나의 대형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논리적 근거가 궁색하다. 나 역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논리와 이성을 떠나 신학적 - 신학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니 예수님의 마음 - 으로 이번 일을 바라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내가 아는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항상 가난한자와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계셨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좋아하신다고 하셨지, 호화 건물에서 드리는 예배를 더 좋아하실 것 같지도 않다.
얼마전 기독교 구호기관인 월드비전 리처드 스턴 CEO의 강의를 들었고, 그의 책 '우리 복음의 맹점'(The hole in our Gospel)을 읽었다. 그는 개인의 구원문제에만 집착하는 교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을 받은 신자들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멋진 건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보다는 지금도 먹을 음식이 없어 죽어가는 10억명의 인류와 북녁땅의 동포들, 소년소녀 가장들, 외국인노동자와 이주민 가족의 자녀들, 독거 노인들..... 등등 복 받아 돈있고 힘있는 대형교회와 그 교회 교인들이 내미는 따뜻한 손을 기다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는 너무나 많다.
과연 2500억이라는 돈을 어디에 쓰는 것을 예수님이 원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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