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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Inernational/이의헌의 하버드 통신

속옷의 전설, '빅토리아 시크릿'의 진짜 시크릿은 이것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 18.


빅토리아 시크릿은 카투사 복무시절 저의 로망이었습니다.
그 카달로그 때문에 미국에 함 가봐야겠다, 라는 생각도 해보았죠.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재학중인 독설닷컴 보스톤 특파원 이의헌 님이
빅토리아 시크릿의 레슬리 왁스너 회장의 특강을 듣고 글을 보내왔습니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의 특강이 아니라 아쉽기는 하지만
한번 읽어보시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실 겁니다
.  





글 - 이의헌 (독설닷컴 보스톤 특파원)

Euyhun.yi@gmail.com


한국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정식 수입을 놓고 이러쿵 저러쿵  소문이 많은 것 같더군요.

여성 속옷 브랜드인 VS는 섹시한 디자인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지만 하이디 클롬, 알레산드라 암브로시오, 미란다 커 같은 여신급 모델들을 전속으로 고용해 수많은 남성들의 가슴을 콩딱거리게도 합니다.

VS의  쭉쭉빵빵 모델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이 누굴까요? 제가 아래에 쓸 글에 끼어 맞추기 위해 답을 알려드리자면……일부 몰지각한 분들께서는 완전 루저로 취급하실 바로 이 할아버지. 레슬리 왁스너 ( Leslie Wexner) 입니다. (실제로 뵈니 키가 160센티 내외로 보이시더군요.)

레슬리 왁스너는 VS그룹의 설립자이자 회장입니다.

오늘은 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짧게 해보겠습니다. 아니죠. 할아버지가 학생들에게 해주신 ‘리더십’, 또는 ‘부자들의 책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보렵니다. 저처럼 돈 없는 분들 말고, 부자들이 이 글을 많이 읽으면 좋겠는데…음 독설 방문자층을 생각하면..….조갑제닷컴에 기고해야 할까요? ㅎㅎㅎ

암튼, 벌써 두 달 정도 됐네요. 학교에 이 할아버지께서 방문하셨습니다.

VS회장이라고 해서 잔뜩 기대를 갖고 강연에 참석했는데, 저도 솔직히 외모를 보고 실망했습니다. 그냥 옆집에 사는 너무나 평범한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 하지만 왁스너 회장의 열정은 제 가슴을 다시 한번 콩딱거리게 했습니다. (물론 VS모델을 볼 때 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이제부터는 왁스너 회장의 말과 제 생각을 함께 써 내려가겠습니다.

왁스너 회장은 “어린시절 나는 내가 한번도 리더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는 말로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키도 작고 그냥 그런 학생이었던 그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던 오하이오 주립대에 진학합니다.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집에서 부모님의 일을 도우면서 학부를 마친뒤, 법대에 진학한 그는 결국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모인가 고모에게서 5천불을 빌려 그가 시작한 사업은 옷 가게. 아버지가 잡화상을 하셨기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천재적 사업가 기질이 발휘됩니다. 젊은 여성만을 위한 옷가게를 오픈한 것이죠. 약 50년 전이니까 당시에는 혁명적인 아이디어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선택은 적중했고, 1년 만에 평생 아버지가 번 돈보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나이 40이 됐을 때 그의 점포는 500-1,000개 사이로 늘어났고, 직원들이 그를 리더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일주일에 8일, 하루 25시간씩 일했다” 고 하더군요.

이제 오하이오주의 유력 사업가가 된 그는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던 민주당 연방하원의원과 만찬을 하던 중 그로부터 “형님 형님은 좋은 분이시니까 상원의원에 나가 보시죠. 정계에도 좋은 리더가 필요합니다(약간 의역)”라는 제안을 받은 뒤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독실한 공화당원입니다.

어쨌든 제안을 받고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얼마 뒤 혼자 산행을 갔다가 악천후를 만나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는 “오늘 내가 여기서 죽는다고 생각하니 두 가지 걱정이 되더군요. 첫째는 슬퍼하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둘째로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쳤더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인생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선재단(http://www.wexnerfoundation.org/)을 설립해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 준 곳들에게 기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태인인 그는 특히 미국 내 유태인 커뮤니티와 자신의 모교인 오하이오 주립대, 그리고 고향 오하이오주를 위한 일에 많은 돈을 쓰고 있습니다. 1984년 재단 운영을 시작한 그가 사회복지를 위해 쓴 돈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합니다. 한 예로 1999년에는 피카소의 작품을 4200만달러에 구입한 뒤 자신이 세운 비영리 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한국의 어떤 가족과 비교되네요.)

그는 리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리더는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찍 리더십을 깨달으면 좋지만, 어린 나이에는 그것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사업이나 단체를 운영하는데 미래의 리더가 될 직원을 뽑기 원한다면  1.자신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2.다른 문화가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3.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청할 줄 아는 자를 선택하라고 말했습니다.


직로선택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는

“투자은행 종사자들이 많은 돈을 벌지만 그쪽 업계는 행복하고, 균형잡인 인간을 키우지 못한다. 돈에만 모든 가치를 두고, 40살이 되면 은퇴해야 하기 때문에 그쪽업계에는 젊은 사람에게 지혜와 영감을 건내 줄  멘토가 거의 없다. 이런 일은 피해야 한다”고 충고 했습니다.

어떻게 촌에서 자란 그가 전 세계 패션을 선도하는 심미안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나에게 미적감각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항상 젊은 사람들과 호흡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면서 “7살 때 내 방을 스스로 칠하고, 돈을 절약하려고 첫 가게 실내 디자인을 직접했는데…그냥 나도 모르게 좋은 디자인을 찾아내는 재주는 있는 것 같다” 고 말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돈을 벌었지만, 그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유가 있다면 자선사업과 환원에 대한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며 강의를 마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