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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닷컴 Inernational/해외에서 당한 억울한 일

젊은 한국여성 속죄양 삼는 네델란드 외교관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2. 17.





1653년 동인도 회사 소속 상선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은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어 표류하다 제주도에 도착했다. 조선 조정은 그를 구출해 심문한 후 훈련도감에 편입시켰다. 그뒤 1657년 강진의 전라병영, 1663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시켜 업무를 보게했다. 하멜은 1668년 본국으로 돌아가 <하멜표류기>를 남겼다.

350년 뒤인 2002년 또 한 명의 네델란드인이 한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표류한 것이 아니었다. 당당히 한국의 초청을 받고 온 그의 이름은 거스 히딩크,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감독이 되었다. 자신을 알아준 한국을 위해 히딩크는 최선을 다했고 월드컵 4강으로 보답했다. 한국인들은 그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가슴 속에 아로새겼다.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그가 묵었던 호텔방에, 그가 앉았던 레스토랑 자리에 그의 이름을 새기기도 했다.

그랬던 네델란드가, 그렇게 친근했던 네델란드인들이 낯선 이름으로 다가왔다. 지난해 9월 네델란드정부는 온두라스 정부를 압박해 한국인 여성 한지수씨를 인터폴에 적색 수배하게 만들었다. 온두라스에서 자국 여성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다이빙 강사를 하던 한지수씨는 귀국 길이 공항에서 붙들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온두라스로 소환되었다. 소환 과정에는 네델란드 외교관이 내내 동행했다. 

한지수씨가 온두라스에 송환된 이후 네델란드는 온두라스 재판부를 압박해 그녀가 구속 수사를 받게 만들었고 유죄 판결이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교관들은온두라스 사법부와 마찬가지로 한지수씨가 무죄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납듭할 수 있을 만큼 한지수씨의 무죄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델란드 외교관들이 그녀를 구속시키려는 이유는 단지 속죄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1년 전, 온두라스에서 자국 여성이 의문사했고 이 사건은 본국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범인으로 지목되던 호주 남성(영국 이중국적자)은 부실한 수사를 받고 자신의 나라로 도주했다. 본국의 언론은 들끓었고 네델란드 외교관들은 속죄양이 필요했다. 그들의 덫에 걸린 사람이 바로 한지수씨였다

이 내용은 이미 충분히 증명된 것이기에 긴말 하지 않겠다. 한지수씨의 죄라면 죽어가는 네델란드 여성을 모른척할 수 없어 다이빙 강사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응급처치를 한 것 뿐이었다. 그 순간 알지도 못하는 외국 여성의 불행을 못본 척 했다면 그녀에게 불운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의로운 길을 택했고 자신이 구하려던 여성의 조국으로부터 배신당했다.

뒤늦게 네델란드 외교관들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호주 남성 대신 한지수씨에게 칼 끝을 겨누었다. 범죄인 인도가 되지 않는 호주에 움츠려있던 호주 남성과 달리 아무런 죄가 없던 한지수씨는 자유롭게 해외를 드나들었다. 그런 그녀가 이국 땅 이집트에서 인터폴에 붙잡혀 낯선 이국의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사연은 한국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방영되었고 한국 국민들은 네델란드의 ‘외교적 횡포’에 분노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지수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잊지 말자며 매주 수요일을 ‘한지수요일’로 정해 한지수 구명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한지수씨와 트위터( @freejisoo )를 통해 소통의 끈을 이어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안다면 네델란드 정부가 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잊지 말라. 한지수는 살해범이 아니라 은인이었다. 


주> 이 내용이 각국 언어로 번역될 예정입니다.
번역된 글을 적당한 곳에 올려주시거나 이메일로 발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어 버전>


若い韓国の女性をスケ―プ-ゴ―トにするオランダ外交官達。

 ”本文は韓国の社会週刊誌であるシサINの記者である’コ、ゼヨル’さんが個人のブログに作成されたものを、もっと多くの人々に知らせるため、本人が和訳した文である”
”原文のURLなどは一番したの部分に書いておきましたので、ご興味のある方はご参考ください。”

 
若い韓国の女性をスケ―プ-ゴ―トにするオランダ外交官達。

1653年、東インド会社の所属であった商船船員のヘンドリックハーメルは嵐による遭難で朝鮮(韓国)の済州島にたどり着いた。朝鮮政府は彼を救出し、取り調べた後に訓練トカン(兵務などを担当する官庁)に編入さえた。そのあと1657年カンジン(地名)のゼンラ兵栄(県のような区域を担当する部署), 1663年のヨスのゼンラ左水栄(海軍)に配置し、業務を任せた。ハーメルは1668年、オランダに帰国し <ハーメル漂流記>を残した。

350年がたった2002年、もう一人のオランダ人が韓国に着いた。今回漂流ではない。堂々と韓国からの招待を受けてきた、その人の名は’ガ-スヒデンく’、韓国のサッカー代表チームを指導する監督になった。自分を信じてくれた韓国民のため、彼は最善をつくし、結果はワールドカップ4位となんた。韓国民達は彼を永遠に記憶するため、その名を胸に刻んだ。それだけでは足りなかったのか、彼が泊まったホテルの部屋に、彼が座ったレストランの席に彼の名をつけたりもした。

そのようないいイメージだったオランダが、そんなにも愛しかったオランダ人が見知らぬ名前に変わった。去年の9月、オランダ政府はホンジュラス政府に圧力をかけ、韓国人の女性’ハン、ジス’さんをインタポールに手配させた。理由はホンジュラスでオランダの女性を殺害したということ。エジプトでスキューバのインストラクタをしていたハンさんは帰国するための空港で逮捕され、オランダのアムステルダムをよってホンジュラスに送還された。その間、オランダの外交官がずっと一緒だった。

 ハンさんがホンジュラスに送還されてから、オランダ政府はホンジュラスの裁判省に圧力をかけ、彼女が拘束捜査を受けることにさせ、つきましては有罪の判決がでるように圧力をかけている。しかし、その外交官達はホンジュラスの裁判省と同じくハンさんが無罪であることを承知している。一般の思考ができる方なら誰にでも納得がつくようにハンさんの無罪は既に十分証明されてある。 

 しかし、このような状況にもかかわらずオランダの外交官達が彼女を拘束しようとうるのは、ただスケ―プ-ゴ―トが必要からである。1年前、 ホンジュラスで自国の女性が疑問死して、この事件はオランダのディアでも大きく取り上げられた。犯人の容疑者であるオストラリア人の男性(イギリスの国籍も持ってある)は抜けのある捜査をされてから、自分の国に逃げあられた。オランダのメディアは熱く騒ぎ、オランダの外交官たちはスケ―プ-ゴ―トが必要になった。彼らの罠にかかったのがハンさんだった。

 この内容は十分証明されたことであって、多くのものを語りはしないつもりだ。ハンさんの罪(?)誤りといったら死に掛けのオランダ人の女性を見殺しに出来ず、スキューバの授業の際にまなんだ救急処置をしただけだった。そのとき、見知らぬ外国人女性の不幸に目をつぶったら彼女に今のようなことは起きてなかったのだ。でも、彼女は人間としてのあるべき道を選んで、自分が救おうとした女性の母国から裏切られた。

 後になってオランダの外交官たちは騒ぎ始めた。彼らはオーストラリアの男性のかわりにハンさんに刀を向けた。犯罪者の渡しができないオーストラリアに引きこもっているオーストラリアの男性とは違って、何の罪も無いハンさんは自由に海外を旅した。そんな彼女がエジプトでインタポールに捕まえて、見知らぬ異国の監獄に閉じ込められた。

この話は韓国の新聞やテレビに放送され、韓国民達はオランダの’外交的横暴’に憤慨している。

多くの韓国人がハンさんのことを自分のように考えている。そして彼女を忘れないため毎週の水曜日を’ハンジスイヨウビ’に呼び、ハンさんを救命キャンペーンをおこなっている。
今日もその日である。ハンさんとTweeter( @freejisoo )を通じて、話し合い、苦しさを分け合っている。このような事実を知ることがオランダ政府も理性を取り戻すために役立つと考えてある。忘れないでほしい。ハンさんは殺人犯じゃなく、恩人であることを。

[출처] 若い韓国の女性をスケ―プ-ゴ―トにするオランダ外交官達。 한지수 사건.|작성자 유상진
번역문 주소 : http://blog.naver.com/masterofgt/10080991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