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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

졸속으로 만든 지역축제, 졸속으로 사라진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8. 11.



지방권력 이동으로 지방 문화권력도 이동

6월2일 한나라당이 참패하면서 여러 곳에서 지방권력이 야당으로 이전되었다. 급작스러운 권력의 이동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지방 문화예술계 역시 홍역을 앓고 있다. 지역 문화예술 축제가 단체장 생각에 좌우되어 정치논리에 따라 흥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7월1일부터 집무를 시작한 새로운 지방 수장들은 난립한 지역 축제의 구조조정에 나섰다.


여기에 경기도 성남시의 지방채 지불유예 선언도 한몫했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이 파탄 위기라는 언론 보도가 거푸 나가자 신임 단체장들은 맨 먼저 지역 문화예술 축제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 작업에 들어갔다. 지역 축제 죽이기에 행정안전부도 가세했다. 지방재정 건전화를 위해 지역 축제에 대한 투자·융자 심사 범위를 5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낮췄다. 


지난해 신종플루로 반쪽 행사를 치렀던 지역 축제들이 올해는 존폐 자체를 놓고 논쟁 중이다.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북도 그리고 울산시가 기존 축제를 축소 통폐합하기로 한 가운데, 재정이 열악한 기초단체의 경우 폐지 발표를 잇달아 하고 있다. 경남 진주시·사천시 등이 주요 축제 폐지를 발표했는데 대전 중구의 경우 문화예술 행사 33건 중 ‘대전역 0시 축제’ ‘루체페스타 축제’ 등 무려 31건을 취소하기로 결론을 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921개 지역 축제가 열렸다. 그러나 제대로 꼴을 갖춘 축제는 많지 않다. 이중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대표·최우수·우수·유망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된 곳은 불과 50곳 남짓이다. 이순신 관련 축제만 해도 전국 9개 지자체에서 개최되는 등 중복 축제가 많다. 보령머드축제나 함평나비축제처럼 전국적 인지도를 쌓은 축제도 있지만 대부분 지자체 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졸속으로 만들어지고 졸속으로 사라진다

축제가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는 과정도 문제였지만 기껏 자리를 잡은 축제들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어떤 축제가 폐지되고 어떤 축제가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지역 축제 중에는 해당 지역과 중앙의 평가가 다른 경우도 많다. 중앙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지역에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신임 시장이 폐지하기로 결정한 양주세계민속극축제와, 영화제 프로그래머 징계로 물의를 빚고 있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대표적이다. 둘 다 특색 있는 행사로 자리 잡았지만 지역에서는 반응이 시큰둥하다. 


지역 축제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역에서 소재를 발굴해서 전국적 축제로 키워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기획력으로 축제를 일궈내는 방식이다. 보령 머드축제는 전자이고 함평 나비축제는 후자다. 정신 축제경영연구소 소장은 “지역에서 소재를 찾은 축제가 성공 가능성이 크다. 소재가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을 경우 지역 주민이 애착을 덜 느낀다”라고 말했다.  


중앙과 지방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는 것은 축제를 평가하는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축제를 평가할 때는 축제에 출연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수준이나 축제 참여의 편리성이 관건이다. 반면 지역에서는 얼마나 지역의 문화예술인에게 기회를 부여하느냐, 얼마나 지역경제에 이바지 하느냐가 기준이기 때문에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대체로 단체장들은 지역 여론에 민감하기 때문에 후자의 평가에 더 비중을 둔다.


지역 주민들이 축제 효과를 고루 볼 수 있게 한다며 행사 지역을 분산 배치해 불편을 초래하기도 한다. 함평 나비축제의 경우 행사 장소가 이곳저곳에 분산되어 있어서 효율이 떨어진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경우 영화 상영은 시내에서 하고 행사는 시 외곽 청풍호 인근에서 하는데 도로가 좁고 막히기까지 해서 불편하다. 주변 도시에서 숙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사를 일부러 한쪽에서 몰아서 하는 경우도 있어서 관람객의 불평을 듣기도 한다.



   
지자체장 성향에 따라 울고 웃는다

축소·폐지 혹은 유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문화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보통 큰 지역 축제에는 국비 지원도 이뤄지므로 중앙 정가의 간섭도 이뤄진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경우 위원장으로 영화계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운 영화제작자 차승재씨가 내정되어 있었지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친분이 있는 김영빈 감독이 임명되면서 구설을 낳기도 했다. 유 장관의 경우 퇴임하면 김동호 위원장 후임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영화계가 반발하기도 했다.  


지역 축제는 어쩔 수 없이 문화 논리와 정치 논리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야 한다. 문화적 성과도 내야 하지만 정치적 의미부여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지자체 단체장들은 전임 단체장의 공적으로 간주되는 기존 축제 지원에는 소극적이고 자신의 공적으로 남을 축제의 지원에는 적극적인 특징이 있다. 그래서 방만한 축제를 구조조정하겠다고 공약하면서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새로운 축제 아이템을 들이민다. 


송영길 인천시장의 경우 전임 안상수 시장이 방만한 축제 운영을 했다고 보고 비판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성남시와 마찬가지로 인천시도 재정 적자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펜타포트 록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여러 문화예술 축제를 ‘펜타포트’라는 브랜드로 묶어내고 지역 경제에 기여하지 못하는 행사는 폐지할 계획이다. 전반적으로 구조조정한다는 방침이지만 시민의 의견을 묻고 있다. 송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bulloger)을 통해 “월미도 은하모노레일과 월미도에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것에 대해 시민 여러분들의 의견이 어떤지 듣고 싶네요”라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충북에서는 지방선거로 무술축제가 부활한다. 지방선거에서 이시종 한국무술총연합회(한무총) 회장이 충북도지사로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충주무술축제는 이 지사가 충주시장 시절 신설했다. 정부 우수축제로까지 인증받았지만 후임 시장이 미온적이면서 사실상 휴업 상태였다. 충주시장 역시 교체된 상황이라 충주무술축제는 부활의 청신호를 울렸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발전적 계승'의 전범 보여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임 단체장의 성과를 이어받기로 한 것이다. 이완구 전 지사는 평범한 지역 문화행사였던 백제문화제를 국제 행사로 키워 세계대백제전을 만들었다. 2007년 40억원, 2008년 80억원, 2009년 100억원으로 계속 행사를 키워 올해 240억원(국비 30억원, 지방비 170억원, 기타 40억원) 규모의 행사로 키워놓았다. 안 지사는 이 행사를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세계대백제전은 오히려 단체장이 교체된 후 더 힘을 받았다. 


직무정지 상태인 이광재 강원도지사는 전임 김진선 지사가 이루지 못한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위해 뛰고 있다. 관련 행사장에서 VIP석을 받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자신의 트위터 계정(@yeslkj)에 “강원도민이 열망하는 동계올림픽 개최!! 오늘이 개최지 선정까지 1년 남은 날입니다. 도민들의 여망을 담아 평창에서 꿈의 동계올림픽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라며 의지를 남겼다. 그러나 이 지사는 강원도가 동계올림픽에 ‘올인’하면서 다른 발전동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판단하며 다른 대안을 모색 중이기도 하다.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절충형 모형이다. 전임 김태호 지사가 구상한 ‘남해안 문화관광벨트’는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한 이어갈 예정이지만 콘텐츠에 대해서는 대안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은 “김혁규·김태호 전 지사는 각 시군에 문화예술회관 짓는 것을 문화 행정이라고 생각했다. 김두관 지사는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어서 차별화된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