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한 사람들이 금빛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사진)은 금빛 상상력을 품고 고향으로 갔다. 산티아고보다 아름다운 제주의 길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포부였다. 가진 것은 없었다. 자연이 빚어낸 막사발, 올레를 알리겠다는 열정뿐이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 편집장으로 함께했던 서 이사장은 성격이 급한 스타일이었다. 마감 늦는 기자에게 "'고요한 돈강' 쓰냐? 기사를 쓰는 거냐, 노벨문학상에 출품할 소설을 쓰는 거냐?"라고 채근하곤 했다. 혹여 실수라도 발견되면 "머리는 몸통 위에 보기 좋으라고 올려놓은 게 아니다"라며 다그치곤 했다.
그런 성질 급한 서 이사장이 올레길을 낸다고 했을 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꼬닥꼬닥('천천히'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 한 코스 한 코스를 정성 들여 길을 이었다. 그렇게 놓은 길이 벌써 21개 코스 340km. 사람들은 '21세기 김만덕'이라며 그를 칭송했다. 조선시대 빈민을 구휼했던 김만덕처럼 올레길로 한물 간 관광지 제주를 생태 제주로 거듭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은 길을 놓으며, 놓은 길을 걸으며 만난 올레꾼·올레지기·올레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다. 막히면 뚫고 끊기면 잇고 없으면 새로 내는 그 고난의 행군에 대한 후기를 23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한 베테랑 저널리스트답게 기록했다. 하늘에서 내려와 13코스 길을 내준 특전사부터 고달픈 인생의 무게를 지고도 늘 웃는 얼굴인 순심씨 이야기까지 소설보다 재미있고 시보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주> 아래는 1년 전 제주올레에 가서 서명숙 이사장을 만나고 썼던 글입니다.
다음주에 제주올레에 가서 함 뵙고 오려고 하는데...
이전 글 먼저 올려봅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제소자들을 동원해 제주도 남북을 관통하는 5-16도로를 개설합니다.
그 비인간성을 보고 자란 여학생 서명숙은 대학생이 된 뒤 독재정권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독재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습니다.
30년 뒤 이 여학생은 제주도에 돌아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낸 박정희와 달리 사람의 속도로 걸을 수 있는 '저속도로'를 냅니다. 그 길의 이름은 바로 '올레길',
이름 없는 사람들이 돌을 치우고 흙을 돋우며 길을 뚫어갑니다.
그렇게 뚫은 길이 벌써 14코스(알파코스 2개) 274km에 이릅니다.
조선시대 빈민을 구휼했던 김만덕처럼
서명숙은 올레길을 뚫어 '관광제주'를 '생태제주'로 거듭나게 합니다.
서명숙 선배는 올레길과 관련해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으로
제주도 사람들이 올레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본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제주도가 제주도 사람들에게 재발견되는 것이 가장 뿌듯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제주도를 절반 정도 에둘러 온 올레길은 이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서명숙은 그 길 위를 맹렬히 달렸습니다.
그 올레길을 찾아가 서명숙을 만나고 왔습니다.
시사저널 선배였던 서명숙을 올레길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함께 올레식당에서 점심을 먹고(갈칫국)
올레길에 있는 서귀포 5일장에 가서 장을 보고
올레 사무실까지 함께 올레길을 걷고
그리고 그녀가 추천한 7코스를 걷고 왔습니다.
바쁜 서명숙 선배를 붙들고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후배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는데,
서명숙 선배는 총리가 와도 이렇게 예우 안한다며,
국빈급 예우라고 생색을 내시더군요.
10만원짜리 중고차로 안내하면서요. ㅋㅋ
하늘의 별자리만큼 많은 제주도의 각종 관광지 속에서
올레길은 마치 '막사발'과 같은 투박한 매력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자연과 대화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사색하지 않을래야 사색하지 않을 수 없는 올레길...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한나절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안타까웠습니다.
12월 초에 15코스가 개장한다고 합니다.
서명숙 선배는 앞으로 15코스 정도를 더 뚫을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총 연장 600km 정도의 올레길이 만들어질 것 같습니다.
박정희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반환점을 돈 올레길에 대해
12월초 15코스를 개장할 무렵 현장 취재를 해서
그 감동의 역사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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