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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IN 연예人/연예인 vs 정치인

정치보다 더 정치적인 드라마 '대물'을 정치적으로 해석해 보면...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0. 23.



현실 정치를 이용하는 '대물', '대물'을 이용하는 현실 정치 


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 <대물>(SBS)이 화제다. 일단 시청률이 파죽지세다. 첫 주에 <도망자>(KBS 2TV)와 시청률이 엎치락뒤치락하던 <대물>은 4회 때부터 시청률 격차를 크게 벌렸다. <대물>이 23.4%로 <도망자>(12.0%)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작가와 PD가 교체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30%에 육박했다. 드라마가 이렇게 ‘대세’를 형성하면서 정치권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부고 기사 말고는 욕먹더라도 언론에 한 줄이라도 나오는 게 낫다는 정치인처럼 드라마 역시 최악은 아예 언급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물>은 현실 정치인과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를 맺고 있다. 박근혜라는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가 있어서 <대물>이 관심을 끌 수 있었고, 박 전 한나라당 대표 역시 <대물>이 여성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를 높여준다면 다음 선거에서 그 혜택을 볼 수 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마이너스다. 현직 대통령에게는 차기 대통령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 자체가 레임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0년대 초 <야망의 세월>(KBS 2TV)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 인물로 부각되었던 그가 다시 드라마를 통해서 레임덕의 시작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과연 ‘대물’의 영향이 여기까지 이를 수 있을까?

   

'대물'에서 고현정은 ‘카리스마적 리더’였던 '선덕여왕' 미실 때와는 다른 ‘소통형 리더십’을 보여준다. <대물> 탓에 MB 레임덕 시작?



<대물> 탓에 MB 레임덕 시작된다?


지금까지 드라마의 정치성은 주로 사극에서 불거졌다. 1997년 방영된 <용의 눈물>(KBS 1TV)에서 방원(유동근)이 탄 백마에 ‘DJ’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김대중 후보 당선을 암시할 수 있다며 신한국당이 항의하기도 했었다. 당시 이 해프닝을 ‘하늘의 계시’라고 평가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직접 <용의 눈물> 촬영장을 찾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에는 <대장금>(MBC 2003년)이 화제가 되었다. 극중 장금이(이영애)와 그의 스승인 한상궁(양미경)의 관계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를 연상시키고, 권신들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사하는 민정호(지진희)가 대선자금을 조사하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기에도 드라마의 정치색에 대한 시비가 있었다. 경주 최부자댁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명가>(KBS 1TV)는 현 정권 실세로 꼽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경주 최씨 종친회 회장이라는 이유로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로드 넘버 원>(MBC), <전우>(KBS 1TV) 등 전쟁 드라마가 연이어 제작되자, 전쟁 참상을 환기시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명가> <로드 넘버 원> <전우>가 방영되면서 논란은 잠잠해졌다. 의석이 적은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듯,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는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보지 않는 드라마에 대해 정치권에서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그러나 <대물>은 다르다. 26부작 대물은 4회 만에 25% 내외의 시청률을 달성했다. 

   

정치 드라마 '대물'에 찬사만 쏟아지는 게 아니다. 리얼리티와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시청률 고공비행, 제2의 <모래시계> 조짐


시청률이 높은 만큼 이야기가 많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주인공 서혜림(고현정)이 박근혜 전 대표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에, 한명숙 전 총리나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떠오른다는 다른 주장도 나온다. 서민 출신 대통령으로 나중에 탄핵을 당한다는 점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도 연상케 한다.


선거 유세 도중에 린치를 당해 얼굴에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유세장은요?'라고 물은 것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때 박근혜 전 대표가 면도칼 테러를 당하고도 '대전은요?'라고 물었던 것을 연상시킨다. 정치권에서 극중 무능하고 부패한 여당을 민우당으로 설정한 것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합친 말 같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그러나 당의 색깔은 한나라당과 같은 파란색이다). 


'서혜림을 보고 떠오르는 정치인'을 꼽아 보라고 트위터 이용자들에 물었더니, 주된 반응은 '서혜림과 박근혜는 단지 여자라는 것 말고는 닮은 점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이었다. 반면 남편을 잃은 서혜림과 신혼생활 6개월 만에 남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어 13년 동안 갇혀있었고 본인도 민주화운동으로 수감되었던 한명숙 전 총리가 닮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서혜림을 닮은 현실 정치인은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주변 인물들도 현실 정치인과 일대일 비교를 할 수 있다. 사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검사 출신의 여당 실세 의원 강태산(차인표)은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저돌적인 하도야(권상우) 검사는 슬롯머신 사건을 수사해 ‘모래시계 검사’로 알려진 홍준표 의원을 닮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강력한 여당 총재로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배호(박근형)에게서 한나라당 총재 시절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  


'대물'을 닮으려는 정치, 정치를 닮아가는 '대물'


정치 드라마라는 꼬리표를 가진 <대물>은 드라마의 제작 과정이 정치를 닮아 있기도 하다. 반전과 역설이 난무했다. 이 드라마가 여성 대통령이라는 설정과 함께 초기에 화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현정이라는 대형 배우를 캐스팅한 덕이다. <선덕여왕>에서 미실로 진골 귀족의 카리스마 넘치는 안타고니스트(주인공의 적대적 인물) 역할을 수행했던 그녀는 이번 작품에서 서민을 대변하는 친근한 프로타고니스트(주인공)로 변신했다. 


뺑소니 사건을 일으킨 권상우를 정의감 넘치는 검사로 캐스팅한 것 또한 역설적이었다. 경찰이 초기에 그의 매니저가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던 사건은 나중에 권상우의 짓으로 밝혀졌다. 그가 드라마에서 “대한민국 검사가 이것밖에 안 됩니까”라고 말하자 트위터에는 “그것밖에 안 되니까 뺑소니 치고도 니가 500만원에 풀려났지(@beatshon)”라는 뼈 있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권씨가 저지른 일을 매니저가 대신 책임지려고 했던 일은 정치인들이 뇌물 수뢰 사건만 터지면 아내 핑계를 대는 것과 닮았다. 정치인이 표를 통해 정치적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권씨는 시청률을 통해 흥행으로 평가받았다. 온갖 비난에도 ‘권력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부활하듯 권씨 역시 시청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브라운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차라리 고현정이 출마하면 찍어주겠다”


정치권에서도 <대물>은 단연 화제다. 극중 서혜림 역할을 맡은 고현정이 자신과 닮은 것 아니냐는 ‘나도 고현정’ 증후군도 보이고, ‘왜 여성 대통령을 부각하느냐’ ‘왜 여당 이야기만 나오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반면 시청자들은 ‘고현정 닮은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차라리 고현정이 나오면 찍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 비수기에 <대물>로 인해 정치권 안팎에 이야기 꽃이 피었다. 


많은 정치인이 <대물>에 대해 말을 얹고 있는 가운데 MBC 사장 출신인 최문순 의원은 <대물>은 “<대장금> <굳세어라 금순아> <내 이름은 김삼순> <선덕여왕> 등 일을 통해 성장하는 전문직 여성의 성공 스토리 계보에 있는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잘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리얼리티와 디테일이 부족해 보인다. 정치를 보수 언론이 보여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순항하던 <대물>은 초반에 작가 교체라는 악재를 겪었다. 황은경 작가가 쓴 대본으로 1~4회를 제작하고 5회 이후는 <여인천하> <무인시대> <왕과 나>를 집필한 유동윤 작가가 맡았다. 유 작가는 사실 <대물> 초기에 기획을 함께 했던 작가로 대본도 10회분 정도를 썼다. 그러므로 작가 교체는 유 작가의 ‘원대 복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 교체 이유에 대해 SBS는 ‘PD와 작가의 작품 해석 차이에 의한 갈등’이라고 밝혔지만, 정치적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에서는 간혹 작가를 교체하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4회까지 추세로 보면 작가 교체 논란이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정치란 사실의 싸움이라기보다 사실에 대한 인식의 싸움이다’라는 말이 있다. 작가 교체에도 이런 정치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교체당한 황 작가와 연출자 오종록 PD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알리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황은경 작가는 오 PD가 “대본을 갈기갈기 찢는 수준의 개작을 했다”라고 비난했고, 오 PD는 “드라마 시작 전에 하차시키고 새로 작업했다”라고 맞섰다. 그러나 오 PD 역시 메인 PD에서 밀려난 후 자진 하차했다.  


작가 PD 교체로 작품성 심각하게 훼손


그러나 <대물>의 작품 완성도는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었다. 작가 교체와 PD 교체를 거치면서 작품의 톤과 무드과 완전 달라지고 캐릭터도 변해버렸다. 선 굵은 정치드라마에서 정치시트콤로 변질되었다. 비약과 과장이 심하고 에피소드간 유기성도 떨어진다. 대물의 현재 행보는 거의 '막장드라마'에 가깝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것이다. 이렇게 망가진 '대물'이 어떻게 시청률을 유지하고 심지어 상승할 수 있냐는 것이다. 현실정치도 그렇다. 정치권에 데뷔해 온갖 치부가 드러나 망가져도 지지율은 오르고 당선되는 기현상이 부지기수로 나타난다. 정치의 관점에서 '대물'을 바라보면 이런 이상 과열현상이 이해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정치란 유행과도 같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원로 정치인들이 정치에 대해서 말할 때 흔히 '정치는 생물과도 같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정치드라마 '대물'도 그렇다. 작가가 바뀌고 PD가 교체되고 드라마 촬영을 거부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시청률은 유지하고... 시간이 지나면 콘텐츠가 빈곤한 정치인들은 고꾸라지곤 했다. 위태로운 쪽대본 행보를 하고 있는 <대물>의 미래는 어떨까? 


별 볼일 없는 아나운서가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계기로 대오각성해 ‘깨어 있는 시민’이 되고 어렵게 국회에 입성해 ‘행동하는 양심’을 실천해서 도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된다는 <대물>의 이야기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은 현실 정치에 대한 결핍감 때문일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드라마에 왜 열광하는지, 그 열망을 잘 읽어내고 실천하는 정치인이 <대물>이 남긴 긍정적인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