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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호평받은 다큐명작 <오래된 인력거>를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2. 18.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로 꼽힌다. 지난해 독립 다큐멘터리 PD 박봉남 감독의 <철까마귀의 날들>이 이 영화제 중편 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탔다. 올해에는 인도 콜카타의 인력거꾼 이야기를 다룬 이성규 감독의 <오래된 인력거>가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미친 듯한 존재감’을 과시한 <오래된 인력거>는 이번 영화제에서 최대 화제작이었다. 현지 언론이 가장 많이 보도했으며, 평론가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영화제를 마치고 온 이 감독을 만났다. 그리고 <오래된 인력거>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자신의 작품을 국내에 방영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독립PD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이 감독은 독립PD 1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의 독점 구조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오래된 인력거>(위)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해 현지 언론과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사진에서 인력거를 끄는 사람이 이성규 감독이다. 


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의 의미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존재감을 심어주었다고나 할까. 한국도 이런 다큐를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유명 커미셔너가 와서 말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수확은 당신을 발견한 것이었다”라고. 네덜란드 최대 신문사 NRC에서 3회에 걸쳐 다뤄준 다큐는 <오래된 인력거>가 유일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제가 되었다고 보나. 

그들의 다큐 문법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 다큐는 인력거꾼이 “너 왜 나 찍어? 너 저리 가. 넌 내 친구 아냐”라고 말하며 촬영을 막는 신부터 시작된다. 이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10년간의 우정이 밑바탕이 된 깊은 신뢰에서 나온 애증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찍지 말라는 대상을 찍은 것은 비윤리적 행위라는 비판도 있었다. 작품을 통해 그의 거부가 서양을 향한 분노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내에서는 방영되지 못한다던데. 

저작권 때문이다. 한국 방송사는 국내 판권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판권을 요구한다. 외국 방송사들은 그렇지 않다. 해외 방영권은 우리가 따로 판매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곳에 방영권을 팔려고 한다. <달팽이의 별>을 제작하고 있는 이승준 PD 역시 해외 방송사들에게 미리 방영권을 선판매한 상태에서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도 국내에서는 방영될 여지가 없다. 


외국에서 인정받은 한국 다큐를 외국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NHK나 BBC 다큐는 대부분 자체 제작물이 아니다. 가능성 있는 다큐 제작사를 지원하는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방송사에 독립 제작사들이 심하게 종속되어 있다. 어찌되었건 독립PD들이 해외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해외 시장이 열린 것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밥벌이를 위해 예술을 포기하거나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역으로 예술을 추구하니 밥벌이가 따라왔다. 




한국 다큐의 성취를 어떻게 평가하나? 

일부 블록버스터 다큐가 조명받고 있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대상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보다 눈요깃거리나 충격적 장면에 치중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하려 든다. 이런 다큐는 해외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한국 다큐가 해외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는?

해외 시장에 제대로 팔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차마고도>가 팔렸지만 가격을 공개 못할 정도였다. 소재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우리에게는 새로워도 이미 BBC나 NHK가 했던 소재일 가능성이 높다. 스토리텔링과 캐릭터의 힘이 중요한데, 대상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로 나열식 다큐가 되곤 한다. 그러니 외국 사람들이 “한국 다큐는 봐도 이해를 못하겠다”라고 평하게 된다.


‘다큐 한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문제는 접근법이다. 이번에 독립다큐 PD 8명이 함께 가서 영화제를 관람했다. 모두 바람이 잔뜩 들어 돌아왔다. 공통적인 소감은 ‘해볼 만하다’라는 것이었다. 이제 기술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 누가 대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한국 다큐의 가능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은 포트레이트 다큐(휴먼 다큐)에 강하다.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이다. 국제 에미상을 받은 MBC의 <풀빵 엄마>가 대표적이다. 한국 PD들은 대상과 밀착하는 데 탁월하다. 요즘 세계적으로 휴먼 다큐가 강세다. 특히 감독이 직접 화자로 등장하는 사적 다큐가 강세인데, 한국 연출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