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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

2010년 대한민국을 웃긴 신조어, 그 씁쓸한 뒷맛...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1. 4.

명박왕... 보온상수... 희롱용석... 빠따철원...


북괴국의 잦은 침입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명박왕에게 안상수가 찾아왔다. 그는 ‘보온병’ 1만명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나면 자신이 입대해 보온병들과 함께 자연산 보온병을 양팔에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적의 식량을 훔쳐 보온병에 담아서 함께 행방불명되겠다는 것이다. 명박왕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 명박왕에게 강용석이 찾아왔다. 그는 ‘성희롱병’ 1만명 양성을 주장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인정사정없는 성희롱으로 적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들 몸 바치고 군대 왔지? 4년제 대학 이하로는 장교하기 힘들다던데…”라는 식으로 희롱하고, 최악의 경우 적들의 휴대전화 번호라도 따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박왕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최철원이 명박왕을 찾아왔다. 그는 ‘빠따병’ 1만명 양성을 주장했다. 적이 쳐들어오면 빠따병들이 나가 적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면 된다는 것이다. ‘1빠따에 100만원’ 정도로 매 값을 받으면 적이 비용 부담 때문에 결코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명박왕은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서해에 보(堡)를 설치하기로 했다.


 
      
통큰치킨 패러디(위). 
                  수도권의 롯데마트 지점을 연결해 ‘닭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소통이 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던 올해, 인터넷에서는 패러디가 만발했다. 이때 쓰인 주요 키워드가 바로 ‘종결자’와 ‘끝판왕’이었다. 종결자나 끝판왕이라는 말은 ‘최종 승자’ 혹은 ‘최고 사례’를 뜻하는 말로 ‘압권’과 용례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쓸 데 있는 곳에서 권위가 사라진 시대, 사람들은 쓸데없는 곳에서 권위를 찾았다.

종결자나 끝판왕 말고도 ‘무엇무엇의 진리’ 혹은 ‘누구누구의 위엄’ ‘어디어디의 레전드’라는 말을 써서 쓸모없는 것에 쓸모를 부여하기도 했다. 사라진 무엇인가, 혹은 떠난 누구인가를 그리워하며 사람들은 ‘미친 존재감’을 찾아 헤맸다. 트위터에 올라온 의견을 종합해보면 올해 ‘남우 존재상’에는 변학도(<방자전>) 송새벽을, ‘여우 존재상’에는 티벳궁녀(<동이>) 최나경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종결자 혹은 끝판왕... 쓸모 없는 권위를 찾아서...


외래어(라기보다는 외계어에 가깝다) 중에서 가장 많이 쓰인 ‘케미’와 ‘레알’ 역시 ‘진정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케미스트리(chemistry)의 약자 케미를 활용해 ‘케미 돋는다’라고 하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의미이다. 즉 ‘잘 어울린다’는 뜻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레알은 영어 ‘리얼(real)’을 말하는데, 어떤 사실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된다.

진짜와 최고를 찾은 해라는 점에서 2010년은 ‘루저 플루’가 만연했던 2009년과 비교된다. 2009년 ‘180㎝ 이하는 루저’라는 ‘루저녀의 저주’ 이후 패러디가 작렬했다. 톰 크‘루저’를 비롯해 히스 ‘루저’, ‘루저’넬 메시, 웨인 ‘루저’, 타이거 ‘루저’, 나폴‘루저’, ‘루저’ 14세, 마틴 ‘루저’ 킹, 백설공주와 일곱 ‘루저’, ‘루저’가 쌓아올린 작은 공, 산타크‘루저’, 스크‘루저’, 할렐‘루저’ 등 동서고금의 유명인이 한국에서 난데없이 개명을 당하기도 했다.

‘연아신(김연아)’ ‘종범신(이종범)’ ‘민한신(손민한)’ ‘양신(양준혁)’ 등 스포츠 신과, ‘윤아신(소녀시대 윤아)’ ‘유이신(애프터스쿨 유이)’ 등 걸그룹 여신을 숭배한 2009년과 달리, 2010년은 훈남 연예인 때문에 여성 시청자들이 ‘앓이’를 많이 한 한 해였다. 현상의 주체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것인데, 확실히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한 수 위였다. ‘앓이’를 할 정도니….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날치기’를 비판한 작품. 


당연하겠지만 ‘앓이’의 대상은 루저가 아니라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따도남(따뜻한 도시 남자)’ 등 훈남이었다. 루저녀와 마찬가지로 명품녀·패륜녀 등 ‘녀’라는 말이 붙으면 대체로 나쁜 뜻으로 통용되었지만 ‘남’이 붙으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앓이’의 감염 경로는 이랬다. ‘고수앓이’(<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정설인데, 이후 ‘서변앓이’(<검사 프린세스>의 박시후)와  ‘걸오앓이’(<성균관 스캔들>의 유아인)를 거친 뒤 따도남 ‘원빈앓이’(영화 <아저씨>)와 까도남 ‘현빈앓이’(<시크릿 가든>)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지곤조기' '기왕지사' MB는 신조어 자판기


여성들이 이런 ‘앓이’를 하는 동안 남성들은 ‘베이글녀’에 환호했다. ‘베이글녀’는 베이비 페이스(동안)와 글래머를 합친 말로 ‘청순한 글래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꿀벅지 타령을 하던 남성들의 시선이 위로 올라간 건데, 대체로 서우·신민아·신세경 등이 베이글녀 트로이카로 꼽힌다. 이들 외에도 베이글녀 사전에는 많은 여성 연예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짐승돌’ ‘성인돌’ 등으로 이어진 ‘돌’ 붙이기 조어 놀이의 끝판왕은 ‘가창력 종결자’ 아이유였다. 타이틀 곡 ‘좋은 날’에서 3단 고음으로 걸그룹들을 압도하며 ‘고음돌’ 칭호를 얻었다. 이 외에도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군필돌’, 생계형 아이돌에 이어 동정형 아이돌 ‘동정돌’ 등이 회자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꼰 패러디물. 


'얼리어닭터'와 '닭세권'에 담긴 소상공인의 눈물...


올해 특이한 현상은 예전에는 연예인들에 대해서 주로 발휘되던 누리꾼들의 조어력이 사회 현상에서도 빛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롯데마트 ‘통큰치킨’ 발매에 따른 패러디였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이 치킨을 사는 사람을 ‘얼리어닭터’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해 통큰치킨 등장으로 피해를 입게 된 주변 지역을 ‘닭세권’이라고 부르는 등 패러디가 만발했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을 일으킨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카페가 인터넷을 들썩들썩하게 만든 이후 여론을 호도한 타진요 카페 운영자(왓비컴즈)를 상대로 ‘왓비컴즈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왓진요)’라는 카페가 새로 생겨났는데, 그 뒤로는 쓸데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인물에 대해 ‘누구누구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시리즈가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요미우리 신문>이 보도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관련 발언에 대해 ‘지곤조기’라는 사자성어가 나왔다며 비꼬았던 누리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수해 지역을 방문해 “기왕 이렇게 된 거…”라고 한 말에 대해서는 ‘기왕지사’라는 말로 비꼬았다. 이 대통령의 “복지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말에는 “억지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맞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