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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조선시대 전문가들의 투철한 프로의식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1. 2.



기사 마감을 끝내고 머리를 식힌다며 클레이연구소가 선정한 세계 7대(현재는 6대) 수학 난제를 풀곤 하던 <시사IN> 신호철 기자(휴직 중)가 탐낼 만한 수학사(數學史) 책이 나왔다. 조선 최고의 수학자들 이야기를 장혜원 교수(진주교육대·수학교육과)가 묶어낸 <수학 박물관>. 연구 논문 발표를 위해 분석한 조선시대 중인에서 임금까지, 수학자 11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첫 번째 주인공은 중인 출신 수학자 홍정하. 청나라 사신으로 온 중국 최고 수학자 하국주와의 대담을 통해 조선 수학의 위상을 떨쳤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홍정하의 수학 실력에 탄복한 하국주가 조선의 산대(나무 막대기 계산도구)를 얻어가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다음으로 주목한 인물은 수학이 맺어준 중인 이상혁과 사대부 남병길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둘은 신분을 뛰어넘어 학문적으로 교유했다. 

홍대용과 같은 이과 천재 이야기도 있다. 수학적 지식을 음악 연주에 응용한 그는 처음 접한 파이프오르간으로 가야금 선율을 연주하는 ‘퓨전 국악’의 선구자 구실을 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회계 업무를 보는 위리 벼슬을 했던 공자처럼 조선의 사대부들에게도 수학이 멀기만 한 학문은 아니었음을 책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소현세자였다. 청나라에서 독일인 아담 샬과 교류하며 최고 수준의 수학 지식을 갖춘 그는 끝내 선진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을 도입하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으로 조선 수학은 부흥의 계기를 잃었다”라고 평가했다.




조선 선조 때 표헌이라는 역관이 있었다. 술고래 중국 사신과 대작하기 위해 선조가 술 대신 꿀물을 마셨는데 중국 사신이 잔을 바꾸자고 했다. 이에 그가 넘어지는 척 잔을 엎었다. 왕은 그 자리에서 표헌을 꾸짖었지만 사신이 물러가자 포상했다. 임진왜란이 나자 의주로 몽진(蒙塵)한 왕이 요동으로 건너가려 하자 그는 "나라를 잃은 자를 나라로 대우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라며 선조에게 충고했다. 

일개 역관이 왕에게 따끔하게 충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외교 전문가'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 조선 전문가의 일생 > 은 표헌처럼 조선시대를 윤기 나게 했던 전문 기능인들의 이야기이다. 훈장·천문역산가·의원·광대·승려·음악가·궁녀·목장·화원·역관 등의 이야기를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자 등이 풀어냈다. 

'조선의 전문직' 시리즈를 기획하고 연구자들을 섭외해 이를 책으로까지 묶어내는 지난한 작업을 떠맡은 이는 송지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50·사진)다. 그는 "조선 사회를 실제로 움직인 테크노크라트와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했던 전문가들이 어떤 직업의식을 가지고 임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문직이 모두가 원하는 직업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주로 중인이 맡았다. 직업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송 교수는 "조선의 전문가들은 이를 업으로 여기고 대대로 이어가며 했다. 지금의 전문가 기준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궁중악사 전악(정6품)은 조선통신사를 따라 해외 출장을 가기도 하고, 새로 도입한 악기의 연주법을 배우기 위해 해외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