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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키 작은 영화들

베를린 심사위원장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인지 몰랐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3. 23.

베를린영화제에서 단편영화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박찬경 감독은 ‘멀티아티스트’였다.
학부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사진을 전공하고 
그리고 졸업 후에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스마트폰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 박찬욱 감독과 함께 찍은 영화 
<파란만장(Night Fishing)>으
베를린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곰상을 거머뒤었다
박찬욱의 동생이 아닌, 멀티아티스트 박찬경을 만나보았다. 




"심사위원장은 스마트폰 영화인지 몰랐다"

“심사위원장은 우리 영화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라는 것을 몰랐다.” 올해 제61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 부문에서 <파란만장(Night Fishing)>으로 황금곰상을 수상한 박찬경 감독의 말이다. 놀라웠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라서 조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인 줄도 몰랐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이제 조명되어야 할 사실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영화가 극장판 영화로도 가능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아직 한계는 있다. 심사위원장 낸 골딘의 이어지는 소감은 이랬다고 한다. “좀 화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일부러 그런 줄 알았다.” 아직 한계는 있지만 분명히 ‘스마트폰으로 영화까지 찍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형(박찬욱 감독)과 함께 이 전대미문의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박찬경 감독으로부터 체험기를 들어보았다.

일단 박찬경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 박찬욱의 동생으로서가 아닌 감독 박찬경이 누구인지를. 그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그리고 졸업 뒤에는 미디어아트 작업을 주로 해왔다. 평론가로도 활동했으며 대안공간 큐레이터도 지냈다. 흔히 말하는 ‘멀티아티스트’로 살아온 셈이다.

단편영화 부문에서 <파란만장>이 주목받은 데에는 두 가지 맥락이 있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는 부분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연출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도 단편영화를 들고 왔는데, 감독의 이름값 덕분에 주목되었다. 박찬경 감독은 “전작의 스타일 때문에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가 유력해 보였다”라고 말했다.


 
 

박찬경 감독이 ‘형 덕’을 봤다고?

다른 하나의 맥락은 최근 세계 주요 영화제가 ‘통섭’ 영화에 기울이는 관심이다. 베니스영화제가 ‘아티스트 필름 섹션’을 둔 것을 비롯해 미디어아트 등 인접 예술 장르와 결합한 영화가 눈길을 끌고 있다. 베를린영화제도 단편 부문 심사위원장에 사진작가 낸 골딘을 임명하며 이런 조류에 합류했다. 애인에게 얻어맞은 뒤 피멍 든 자신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 낸 골딘의 시선이 형제의 그로테스크한 영화에 멈춘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쯤 되면 박찬경 감독이 ‘형 덕을 봤다’고 쉽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타이완의 차이밍량(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이나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등 유명한 감독도 ‘통섭’ 영화 제작을 통해 세계 평단의 조명을 받았다. <파란만장>의 후반부는 ‘굿’에 관한 내용인데, 이 부분은 전적으로 박찬경 감독의 역량으로 꾸려졌다. 그는 굿을 소재로 한 <신도안>이라는 단편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열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저녁거리가 없다’는 속담처럼 멀티아티스트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순혈주의를 중시하는 한국의 예술계 풍토에서는 특히 그렇다. 박 감독은 “여러 우물을 파면 한 우물도 제대로 파지 못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공포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면 다양한 기회가 생긴다. 이번 스마트폰 영화도 가능성을 열어두어서 생긴 기회였다”라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들은 <파란만장>(위)에 대해 ‘동양적 샤머니즘의 독특한 표현’이라며 환호했다. 형제는 <파란만장>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박찬경 감독은 “내가 뼈대를 세웠고, 형이 피를 흐르게 하고 살을 붙였다. 내가 가져온 소재와 이미지를 형이 드라마로 재구성하고 대사를 붙였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우리나라 굿 중에서 ‘임사체험(귀신이 들리는 체험)’ 단계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황해도굿을 활용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안개가 짙게 깔린 강변에서 밤 낚시를 즐기는 남자(오광록)의 낚싯대에 커다란 무언가가 걸려온다. 그것은 소복 차림의 여자(이정현)다. 놀란 남자는 여자를 낚싯줄에서 빼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엉켜든다. 죽은 줄 알았던 여자가 갑자기 팔로 남자의 목을 감자 남자는 기절한다. 남자가 일어났을 때 여자의 소복을 입은 남자에게 남자의 옷을 입은 여자가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자 그들은 굿을 통해 원혼을 달래기로 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 영화에 심사위원들은 동양적 샤머니즘의 독특한 표현이라며 환호했다. 박 감독은 “우리가 굿을 천시하고 두려워한 것은 종교적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서양은 이를 문화인류학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아직도 실제 삶에서 굿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오리엔탈리즘을 이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굳이 피해갈 필요도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반응과 일반 관객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는 “시사회에서 유심히 관찰했다. 평론가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우리가 의도한 데에서 의도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뭔가 길을 잃은 느낌이었다. 일반 관객에게 쉬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라고 그 차이를 설명했다.

<파란만장>은 사실 스마트폰 영화로 기획된 작품은 아니었다. 형제가 단편영화를 기획하고 있을 때 통신사 측에서 제안해와서 스마트폰으로 제작을 한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지만, 둘 다 얼리어답터와는 거리가 있었다. 동생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한 번씩 경험해보는 수준이었고, 형은 일반 휴대전화를 병행해 사용하고 있었다.





배우들, ‘시선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스마트폰 촬영이 가능해진 데는 촬영감독의 공이 컸다. 다양한 실험 촬영을 거쳐서 감독들이 원하는 화면을 구현해주었다. 박 감독은 “메인 카메라 외에도 최소 두 대, 보통 서너 대, 많게는 열 대까지 휴대전화 카메라를 사용했다. 덕분에 다양한 시점 샷이 가능해 편집에 융통성이 생겨서 박진감 있게 편집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영화는 배우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박 감독은 “(배우들이) 거대한 카메라가 주는 시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물론 메인 카메라가 있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라 위압감이 덜했던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박찬경 감독의 단편 황금곰상 수상만큼 놀랄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양효주 감독이 <부서진 밤>으로 은곰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을 비롯해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출품된 터라 그들과 경쟁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최대 경쟁작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생인 양 감독의 작품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40회 로테르담영화제에서는 <파란만장>을 제치고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가 타이거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새로운 디지털 기기가 나왔을 때 한국 사람만큼 잘 가지고 노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라는 박 감독은 젊은 영화인들이 스마트폰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해줄 것을 주문했다. “스마트폰 영화가 젊은 세대에게 큰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카메라 비용에 대한 부담을 상당히 줄여주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