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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판 위원회/키 작은 영화들

영화 <부당거래>의 정당한 흥행이 한국 사회에 말하는 것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0. 12. 5.



<부당거래>는 재밌는 영화다.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청룡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터질 듯이 터질 듯이 터지지 않는 영화만 연출해왔던 류승완 감독이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박찬욱 김지운 최동훈 이정범 등과 함께 한국형 느와르의 주요 주주임을 증명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주먹이 운다>(2005), <짝패>(2006),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7)까지, 실험성은 늘 차고 넘쳤다. 평단도 그의 영화를 애정어린 관심을 보였지만, 문제는 대중성, 그의 영화에는 단맛이 부족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그의 하드고어한 영화를 보면 자기 음악만 고집하는 인디밴드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류승완의 영화들은 늘 마초가 풍년이었다. 더 정확히는 마초와 마초가 부딪치는 영화였고, 더더 정확하게는 건달적인 마초와 양아치적인 마초가 맞서는 영화였다. 그 부딪침은 개운한 맛을 내지 못하고 뭔가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뒷골목 풍경화를 그리던 그가 검사와 경찰을 모델로 한 앞골목 풍경화를 그렸다. 이번에는 잘 그렸다. 구도도 좋았고 색감도 좋았다. 




<부당거래>는 강한 놈이 살아남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 놈인 한국사회의 알레고리로 맛깔스럽게 밥상을 차려냈다. 황정민은 황정민처럼 숟가락을 반듯하게 올렸고, 류승범은 류승범답게 얄밉게, 유해진은 유해진만큼 간사하게, 모두들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200만 명이상이 이 잘 차려진 밥상을 즐겼다.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강자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약자는 한 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그리는 것은 감독의 오랜 주제의식이었지만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그런 구조 아래서 신음하는 주인공들이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구조의 주역들을 통해 그렸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작업이 유쾌하진 않았을 터인데, 감독은 그 불편한 작업을 기꺼이 감내해냈다. 

무엇이 류승완을 변하게 했을까? 억지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변화를 촛불집회에서 읽는다.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류승완은 촛불에 ‘몰입’해 있었다. 취재 차 나갔던 나는 여러 번 거리에서 그와 마주쳤다. ‘명박산성’에 맞선 ‘스티로폼 산성’이 쌓아 올라갈 때 새벽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던 그를 보기도 했다. 급기야 ‘촛불 리포터’로 나서는 모습까지 보았다. 촛불의 함성이 거리의 에너지가 <부당거래>에 녹아들어갔다고 본다.  




부당거래의 갈등 구조는 이렇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황정민 분) 반장은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프로타고니스트다. 광역수사대를 관할하는 검찰청의 담당 검사인 주양(류승범 분) 검사는 그와 사사건건 맞서는 안타고니스트다. 이들의 악연과 인연이 교차하면서 영화는 희극과 비극 사이를 진동한다. 관객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범인 검거에 귀신인 광역수사대 최반장은 승진에는 등신이다.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후배들에게 밀린다. 줄도 없고 빽도 없는 그는 늘 낙동강 오리알 신세다. 그런 그에게 늘 걸려드는 호구가 있다. 조폭 출신의 건설회사 사장 장석구(유해진 분)다. 비열지존이지만 장석구는 그의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에 쥐 신세다.  

검찰청 고위 간부를 장인으로 둔 주 검사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좋은 사건을 수임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장인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는지 태경건설 김태경(조영진 분) 회장을 스폰서로 두고 떡값을 받아쓴다. 장석구에게 뒷돈을 받은 팀원들을 심하게 혼쭐내는 융통성 없는 최반장과 다르게 주 검사는 윗선에 줄을 댈 줄도 알고 기자를 구워삶을 줄도 안다. 

김 회장의 뒤를 봐주려는 주 검사에게 무대포 수사로 덤비는 최반장은 눈엣 가시다. 그 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최반장을 옭죌 궁리를 하는데 비보가 들어온다. 최반장이 대통령의 관심 사항인 여아 연쇄 성폭행 사건의 특별수사팀 팀장으로 발령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 경감이 범인까지 잡아버린다. 사정을 좀 봐달라는 주 검사를 최 경감은 소 닭보듯 한다.  



얼핏 승부는 최반장 쪽으로 쏠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승부는 이제부터다. 우연히 주 검사가 특별수사팀에 관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게 되면서 사건은 꼬이기 시작한다. 최반장의 부탁으로 장석구가 범인을 캐스팅해 사건을 무리하게 마무리 지으려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장석구는 라이벌인 김태경 사장을 꺾기 위해 그와 특수관계인 주검사의 약점을 잡아 같은 편이 된 최반장에게 갔다 바친다. 

여기서부터 스토리가 복잡하게 꼬인다. 앞을 향해 달리는 두 남자는 서로에게 장애물이 되자 상대를 거칠게 걷어차기도 하고 모여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배를 맞추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의 생각대로 간단하지 않다. 최반장의 호구에서 가짜범인을 제공한 후 최반장을 호구로 만든 장 사장까지 얽혀 운명의 배는 산으로 간다. 이제부터는 러시안 룰렛이다. 살기 아니면 죽기다. 

이런 이 영화가 재미있어진 것은, 그리고 이 영화가 흥행하게 된 것에는 아마 전현직 검사들의 공이 클 것이다. <PD수첩> ‘검사와 스폰서폰’에서 이들이 지방 건설업자에게 빌붙어 용돈을 받고 성접대를 받는 모습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여주었다. 영화는 마치 <PD수첩>을 재현이라도 하듯이 스폰서 문화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세상이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만든 셈이다. 




<부당거래>를 흥행시킨 공의 8할이 검사들의 방만한 사생활이라면 나머지 2할은 대한민국의 천박한 국격에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아본 사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분명 사람 위에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 있다는 사실을, ‘검찰 위에 사찰, 스마트폰 위에 대포폰, 고시 위에 장관 딸’이 있는 이 나라에서는 저 보다 더한 일도 가능할 것이라는 푸념은 영화의 개연성을 높였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변호사는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조작에 대한 태도를 꼽았다. “경찰이 범인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주양 검사의 관심은 전적으로 어떻게 이것을 구실로 최철기를 박살낼까 하는 것에 쏠려 있었다. 억울하게 구속된 피의자의 인권 문제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물론 그 피의자가 범인이 아니라면, 아직도 거리에서 배회하면서 순진한 어린이들을 노리고 있을 진짜 성폭행범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는다”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런 사실의 나열만으로도 검사사회에 대한 내부비판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은 씁쓸하다. 큰 도둑은 빠져나가고 작은 도둑만 걸리는 허술한 그물, 대한민국 법처럼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은 약자들이다. 이쯤에서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이 바꿔 놓은 <논어> 옹야편(雍也篇)의 격언을 상기하게 된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즐기는 자는 장관 딸을 이기지 못한다.  

주> 여성지에 기고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