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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실험실

스마트폰과 SNS로만 '유리집에서 한 달' vs '전국일주'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3. 26.


주> 스마트폰-SNS 생존 실험 관련 계정 
tvN스페셜팀 - @tvnspecial
박준영 - @tvnspecial_he
박승제 - @tvnspecial_she





스무 살 박준영씨는 지난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친구들이 대학에 발을 들여놓을 때 그는 대학을 잠시 유예하고 ‘세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일단 세상을 살아보고 자신에게 맞는 대학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 그가 3월10일 커다란 배낭을 메고 30박31일 일정으로 전국 일주를 시작했다. 
 

같은 날 거실이 통유리로 된 경기도 가평의 한 전원주택에 박승제씨(26)가 여장을 풀었다. 암벽등반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런 그가 30박31일 동안 유리 집에 들어가서 고립된 채 스마트폰과 SNS로만 사람들과 소통하며 지내기로 했다. 한 달 뒤에는 손에 쥔 상금으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경기를 직접 보러 영국에 갈 수 있다는 꿈을 안고.
 

박준영씨와 박승제씨는 케이블 텔레비전 tvN 스페셜의 다큐 실험 <세상을 바꾸는 스마트폰 생존기>에 참가 중이다. 스마트폰과 SNS의 효용성을 알아보기 위해 <시사IN>도 공동 취재하기로 한 이 프로젝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만을 활용해서 생활이 가능한지를 실험한다. 박준영씨는 전국 일주를 하며 오프라인에서 SNS의 효용성을 실험하고, 박승제씨는 유리 집에서 온라인에서의 효용성을 실험한다. 실험에 성공하면 상금 300만원을 받게 된다.


박승제씨는 CCTV가 설치된 방에 고립되어 살아간다. 그는 자신을 ‘국민 다마고치’에 비유했다.


tvN스페셜의 스마트폰-SNS 실험

규칙은 간단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SNS만 가지고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해결한다. 단 전화 통화는 안 된다(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음성 통화는 가능하다). 사람들과 말을 할 수도 없다(SNS로 관계를 맺은 사람과는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을 지키면서 각자 미션을 수행한다.
 

얼핏 보기에 뭔가 익숙한 실험이다. 10여 년 전 인터넷이 붐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주로 했던 ‘컴퓨터와 인터넷만으로 생활하기’ 실험과 닮았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SNS로만 생활하기’는 이보다 한 계단 진화한 실험이다. 단순히 생활이 가능한지 여부가 아니라, 이용 조건을 극대화해서 얼마나 생활에 유용한지, 특히 관계 맺기와 관련해 폐쇄된 공간에 고립되어 있어도 오프라인에서 맺는 관계만큼 유의미한 관계를 끌어낼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실험이 시작되자 두 피험자는 관계 맺기에 주력했다. 일단 관계를 맺어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험자들의 멘토 역할로 실험에 참여한 기자는 이들을 ‘트친소(트위터 친구를 소개합니다)’로 트위터 이용자들에게 소개했다. SNS 입소문만으로 일주일 동안 팔로어(구독자)를 1000여 명 모을 수 있었다.
 

트위터의 경우 친구(팔로어)가 늘면 ‘골목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 더 신이 나서 적극 소통하게 된다. 그런데 관심 끌기에 어느 정도 성공한 피험자들에게 강력한 장벽이 나타났다. 바로 일본 지진 해일 소식이었다. 사람들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쏠리자 두 피험자는 소외감을 느꼈다.


전국 일주 중인 박준영씨는 SNS 명사들에게도 적극 도움을 청했다. 위 왼쪽은 박원순 변호사.


SNS에서 친구나 팔로어를 모으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이벤트를 하는 것이다. 기업 계정의 경우 상품을 내걸기도 하는데 일반인들은 ‘공약’을 내건다. 박승제씨는 ‘팔로어 10만명을 모으면 명동에서 속옷만 입고 밥을 먹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박준영씨는 이외수·김제동·김주하 씨 등 트위터의 ‘빅 마우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들을 통하면 더 많은 사람과 쉽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SNS, 전국 일주에 ‘요술방망이’처럼 큰 도움 

SNS는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남들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상호작용 속에서 연예인처럼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일종의 ‘자발적 트루먼 쇼’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CCTV가 설치된 방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박승제씨는 자신을 ‘국민 다마고치’에 비유했다(다마고치는 대중적 인기를 끈 디지털 애완동물이다).
 

두 피험자는 곧 소통 노하우도 익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람들과 기계적으로 소통했다. 마치 온라인 메신저를 주고받는 것처럼 멘션(댓글)을 주는 사람에게 무조건 답변하는 양적 소통에 치중했다. 그러나 곧 그런 형식적인 소통이 비효율적임을 깨닫고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개발했다. 박승제씨는 다양한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적극 답변을 이끌어냈다.
 

천천히 적응했지만 스마트폰과 SNS가 만능은 아니었다. 박승제씨는 스마트폰의 대형 할인마트 앱을 통해 생필품을 주문했는데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한꺼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따로 도착해 당장 끼니를 해결하기도 벅찼다. 다행히 SNS에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피자를 대신 배달해주고 반찬과 쌀을 챙겨 보내주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박준영씨와 달리 박승제씨는 SNS에 더욱 매달렸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했다. 실험 5일째, 그는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 나쁘게 말하면 무척 예민해졌다. 재미, 호기심, 돈 때문에 이 실험에 동참했는데 사람들이 나를 동물원 원숭이처럼 지켜보는 것이 불쾌하다”라고 말했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짜증이 날 무렵 기자가 유리 집을 찾아 SNS 친구들의 선물을 전했다. 그는 그때의 기분을 “새로운 사람의 등장만으로 미소가 얼굴에 번지는 내 자신이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SNS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흔적들이 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얼어붙었던 감정이 눈 녹듯 흘러내리고 눈가는 촉촉해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라고 SNS에 묘사했다.
 

SNS는 요술발망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척척! 

전국 일주 중인 박준영씨에게 SNS는 요술 방망이 같았다. 필요한 것을 SNS에 올려놓기만 하면 누군가 해결해주었다. 유명인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평범한 스무 살 청년이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별히 가기로 한 곳도 없고 만나기로 한 사람도 없는 여정이었지만, 가고 싶은 곳을 말하고 오라는 곳을 찾아가면서 일주일 만에 ‘서울-해남-광양/하동-진주-창원-통영-거제-부산’을 돌았다.


모바일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SNS는 효용이 컸다. 기자도 지방에 여행 갈 때 SNS를 통해 맛집이나 관광지를 추천받곤 하는데, 박씨는 한 수 위였다. 식사는 물론 숙소도 바로바로 해결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될 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준영씨의 여행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가면서 SNS로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았다. 자신의 발밑에 ‘네트워크’라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소셜 여행’을 즐기면서 낯선 도시도 쉽게 친근해졌다. 박준영씨는 이런 느낌에 대해 “창원에 SNS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도시지만, SNS 이용자들과 연결되면서 창원이라는 도시가 내 손바닥 안의 스마트폰만큼 작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오프라인의 강렬한 자극을 경험하지 못하는 박승제씨는 SNS 이용 목적을 재미를 추구하는 것에서 의미 추구로 한 계단 승화시켰다. 일본 지진 피해와 관련해 유용한 정보를 모아 전달하고 온라인 강의 공유 사이트인 TED에서 좋은 동영상을 찾아 SNS 친구들과 나눴다. 3월17일 현재, 실험 기간의 4분의 1가량이 지났을 뿐이지만 박씨는 스마트폰과 SNS의 여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