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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 논쟁이 던지는 몇 가지 질문들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4. 3.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아니 새로 시작되었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냄비 근성’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김건모 재도전’이 방송된 상황에서는 비난 일색이었던 것이 프로그램 잠정 중단이 결정되자 ‘빨리 방송을 재개하라’며 아우성이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다고 푸념할 만하다. 
 

 
그래도 이 논쟁이 던진 질문을 건져보자. 가수들은 대중을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PD들은 음악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시청자들은 예능프로그램에서 뮤지션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자. 좋은 질문을 던진다면 좋은 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현실은 세 곳에서 두루 욕먹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먼저, '나는 가수다'는 시작 단계에서 뮤지션들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가수는 음악만 잘하면 된다는 ‘순수주의’와 시청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현실주의’가 늘 부딪쳤다. 콘서트 위주로 활동하는 가수들은 전자의 입장이고 ‘예능감’이 있어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후자의 입장이다. 대체로 전자가 우위에 선 입장이다. 하지만 명심하자, 그들은 ‘대중가수’들이다. 
 

다음으로 서바이벌이라는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다. 한 명씩 탈락시키는 것은 흥행을 위해 '나는 가수다'가 선택한 독배다. 조영남 신중현 남진 등 원로뮤지션들은 음악에 점수를 매기고 프로 가수들한테 순위를 매긴다는 형식에 반발했다. 평론가 진중권씨는 피카소와 고흐를 줄 세워서 순위를 매기는 것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서바이벌은 '나는 가수다'의 원죄였다.
 

그러나 이들은 가수 지망생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에 가수들이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원형경기장에서 노예 검투사들처럼 처절하게 싸우고 죄인처럼 서서 판정만 기다리는 가수 지망생에게 황제처럼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가? 그들은 ‘음악의 신’이라도 되는 것인가?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라고? 그러나 학생들의 점수를 매기는 교수들도 강의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강의평가일 것이다. 그 강의평가를 자발적으로 받기로 한 김건모 이소라 윤도현 김범수 백지영 박정현 정엽의 선택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이 독배를 들어서 ‘주말 황금시간대’ 편성이라는 큰 원형경기장을 따낸 것이다.
 

다음 생각해볼 논점은 우리 사회가 연예인과 예능프로그램에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가 너무나 가혹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위공직자나 성직자보다도 엄격하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학력위조 문제가 불거졌을 때 공직자나 성직자가 단지 착오일 뿐이라고 내뺄 때 연예인들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사죄하고 몇몇은 자숙기간을 갖기도 했다.


억울할 수 있다. 예능프로그램에서 공정사회의 전범을 찾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잘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시청자들은 예능프로그램에서나마 공정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김건모가 후배 가수들을 위해 서바이벌의 제단에 희생양이 되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거부했다. 그래서 실망했다.
 

여기서는 예능계 내부정치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힘 있는 기획사의 인기 가수가 상을 독점하는 것을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김건모 재도전’은 단순히 가수에게 노래 한 번 불러볼 기회를 더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기득권에 대한 특혜로 보였다. SM JYP YG 등이 속한 가요계 부자클럽, KMP홀딩스 김창환 대표가 김건모의 소속사 대표였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그렇게 보였다.  
 

다음은 뮤지션에 대한 존중 부분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대중음악평론가들은 ‘뮤지션이 최고의 음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뮤지션 또한 제작진의 판단을 존중해줘야 한다. 달면 뱉고 쓰면 삼키면 되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룰은 따라줘야 한다. 제작진은 시중들려고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커뮤니케이션 오류다. 제작진은 프로그램 룰과 관련해서 2중 정책을 썼다. 출연자들에게는 유연하다고 설명했고 시청자들은 엄격하다고 광고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엄격할 줄 알고 기대했다. 반면 출연자들은 유연한 줄 알고 시정을 요구했다. 오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논쟁은 어찌보면 ‘서바이벌 방식’이라는 장치의 실패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로도 볼 수 있다.

 
 주> PD저널에 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