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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의 김건모 재도전이 시청자에 대한 기만인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3. 21.




나는 <슈퍼스타 K>나 <위대한 탄생>과 같은 TV오디션 프로그램이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 시합을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88만원세대 출연자는 검투사 노예처럼 죽도록 싸우고, 이를 기성세대는 태평하게 관람하고, 연예인 황족들은 저 높은 곳에서 심판하고. 살리느냐 죽이느냐, 황제의 엄지손가락을 쳐다보듯 노래를 다 부른 도전자는 죄인처럼 서있는 모습도 닮았고.

그래서 그들, 황족들이 직접 링에 내려와 겨루는 MBC <나는 가수다>를 지지했는데, 실망했다. 신입사원 모집을 공개 오디션으로 해서 방송으로 만든 <신입사원>은 비판하면서도 프로가 프로답게 겨루는 <나는 가수다>는 지지했었다. 음악에 우열이 있을까마는 오늘 우리 대중음악의 현실을 냉정하게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MBC는 TV오디션 프로그램 부작용의 종결자가 되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시청률만 바라보고 이상한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을 했다가 비난이 쏟아지니 갈팡질팡하다가 이저저도 아닌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은 모양새다. 공개 오디션으로 전향한 것에 맞게 아나운서의 역할에 대한 재해석, 선발 방식에 대한 고민 없이 기존 공채를 그대로 공개 오디션으로 바꾼 <신입사원>은 재미는 없지만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어제 <나는 가수다>에서 평가단 500명의 결정을 무시하고 제작진이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준 것에 대해 트위터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500명의 심판이 500명의 들러리가 되었다고. 평가 받을 가수들이 자기들끼리 평가를 내리면 심판은 왜 뽑았느냐고. '방송국'격을 떨어뜨리는 결정이라고. 차라리 제목을 바꾸라고. '나는 선배다'로. 대략 80대 20 정도로 비판의견이 더 많았다. 

MBC 홈피의 <나는 가수다>의 프로그램 소개 글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레젠드급 가수들의 극한 서바이벌!, 한 사람은 탈락해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자면 이것은 명백한 ‘과장광고’다. 시청자들이 확인한 것은 ‘레젠드급 가수들을 위한 극적 서바이벌!’d이었다. 그래서 어느 트위터 이용자가 이 글 밑에 조그맣게 ‘탈락자에게도 재도전 기회를 줍니다’라고 써 놓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분명히 ‘극한 서바이벌’이라고, 한 사람은 탈락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시청자들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프로그램 포맷을 이렇게 정했다. 그럼 따라야 한다. 이 룰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그런데 막상 탈락자로 김건모가 선정되니 제작진이 흔들렸다. 제작진이 흔들린 것은 다른 출연 가수들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출연진의 요구에 제작진은 원칙을 버렸다. 마치 집권 여당의 탈법을 중앙선관위가 간과하듯이. 

(좀더 정치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풀어볼까? 이 프로그램의 권력관계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김건모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마 이 피라미드의 마지막에는 가수들을 들러리선 개그맨들이 있을 것이다. 진행자 이소라가 눈물로 판을 흔들었고 다른 가수들이 응집력을 발휘했다. 여기에 제작진이 휘둘리면서 시청자와 평가단을 외면했다. 천하의 쌀집 아저씨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을 '김건모의 용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글쎄 정치인들도 사면복권 받고 재출마할 때... 다들 국민의 부름을 받고 용기를 냈다고들 한다.)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었다면, 남은 6명의 가수에게도 재도전 기회를 줘야 공정할 것이다. 김건모만 사정이 있겠나? 다른 가수들은 사정이 없겠나? 이소라는 김건모의 탈락만 안타까워할까? 그럼 최소 12주(2주에 한 명씩 탈락) 동안은 탈락자가 없을 것이다. 사면복권을 남발하는 정치권처럼 말이다. ‘극한 서바이벌’을 맛보기 위해서 시청자는 이 정도는 참아줘야 할까? 

트위터 이용자들은 <나는 가수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사회 지도층 인사(혹은 사회 특권층 인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떠올렸다. '전관예우' '원칙 무시' '기득권 보호' 등 정치권의 온갖 부정적 모습 떠올렸다. <나는 가수다>의 연출자인 쌀집아저씨 김영희 선배를 여전히 존경하지만 그의 결정에는 반대다. 그 결정으로 우리 사회의 온갖 부정적인 단면이 환기되는 것으로 보았을 때 이번 결정은 명백한 패착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1차적으로 이소라씨가 져야 할 것이다. 진행자로서 룰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고 이를 지켜야 할 위치의 사람이 프로그램을 흔들었다. 자신과 가장 가깝고 가장 대접받을 위치의 사람인 김건모를 위해 일종의 '몽니'를 부린 것이다. 이를 제어하지 못한 김영희 PD는 2차적 책임이 있을 것이고, 쿨하게 거절하지 못한 김건모씨에게는 3차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건모는 국민가수니까 기회를 준다? 그렇다면 월드컵에서도 'MBC룰'을 한 번 적용해볼까? 영국 스페인 이태리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인기 있는 나라들이 떨어지면 재경기를 하게 하고, 메시나 루니 호날두가 퇴장 경고를 받으면 다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들이 진짜 축구를 보여줄 수 있게 하자는 명분으로. 플레이어들끼리 룰을 정하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예능프로그램 하나가 문제면 얼마나 문제겠는가? 1등 했다고 팔자를 고치는 것도 아니고 떨어졌다고 밥줄이 끊기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을 바꾸는 잘못된 결정을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맞는 얘기다. 그래 맞다. 사람들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고 있다. 그러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금 시청자들은 최소한의 룰을 지키는 세상을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