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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살벌한 독설

날고 기는 독설가 중 '진중권'이 최고 독설가인 이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1. 4. 10.




독설 권하는 사회, 진짜 독설은 없다

독설이 풍년이다. 김구라 왕비호 등 1세대 원조독설가들을 이어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신입사원> 등의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승철 방시혁 박완규 등 2세대 독설가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독설가 사이먼 코웰처럼 심사위원 중에서 유독 독설가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방현주 아나운서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제 독설 한 방 시원하게 날려주지 못하면 ‘예능감’이 없는 연예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독설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이다. 이런 정의대로라면 독설가가 환영받는 현상이 이상하다. 독설가가 사랑받는 것을 보면 시청자들에게 독설은 ‘애정어린 비판’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적 정의에 통사적 정의가 하나 더해진 것이다.

이런 독설이 요즘 왜 주목받는가에 대한 담론이 풍성하다. 대략 이런 분석이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만땅’이라 세상을 향해 던지는 거친 말이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독설을 하면 피해를 받을 것 같은데,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 대신해줘서 통쾌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왠지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이런 ‘개념 독설’은 사전적 정의에 통사적 정의를 거쳐, 사회적 정의까지 더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에는 함정이 있다. 김구라 왕비호 방시혁 이승철 이런 독설가들은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날리는 사람이 아니다. 김구라와 왕비호의 독설 동료 연예인을 향해있고 방시혁 이승철 박완규의 독설은 풋내기 가수 지망생들을 향해 있다. 그들의 독설은 웃음의 재료요 프로그램의 설정일 뿐이다. 그것을 진정한 독설이라 할 수 있을까? 블로그 ‘독설닷컴’을 4년 째 운영하며 나름대로 ‘독설가’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독설가들에게 독설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인기를 위해서 남의 약점을 활용하고 풋내기를 상대로 독설을 날리는 것을 세상을 향한 독설로 과대포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런 독설을 들으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비틀어준다고 생각한다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이다. 자신들을 괴롭히는 위정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는 독설가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다면, 모양이 좀 웃기지 않을까?

수억 원의 상금을 내걸고 진행되는 TV 오디션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자. <슈퍼스타 K2> <위대한 탄생> <신입사원>같은 프로그램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검투사 시합과 닮아있다. 젊은 지원자들은 오디션이라는 원형경기장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기성세대 관객들은 TV로 구경하며 응원 함성을 보내고, 연예인 심판들은 엄지손가락 올렸다 내렸다하며 합격 불합격을 결정짓는다.

아마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시합보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나은 점이 있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한 명의 승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들은 심사위원들의 갖은 독설을 받아내야 한다. ‘음악의 신’처럼 군림하는 심사위원 앞에서 왜 그들은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고도 죄인처럼 서서 꾸중을 들어야 할까? 왜 그들의 곡 해석과 개성은 무시당해야 할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정한 우리 사회의 알레고리다. 시청자들은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것 아닐까? 진짜 강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내 앞의 약자들에게만 할 말 다하는 그런 ‘찌질한’ 시대의 연장선이 아닐까? 왜 우리의 독설은 강자를 향할 때는 무디고 약자를 향할 때는 그리도 예리할까?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검은독설, 세상을 대상으로 한 하얀독설

물론 동료 연예인을 독설의 소재로 삼는 왕비호와 김구라의 독설은 나름 염치는 있다. 둘의 독설은 일종의 설정으로 독설을 통해 상대방의 존재감을 심어주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다. 이승철 방시혁 박완규의 독설은 의심할 바 없이 가수 지망생들의 단단한 기본기를 요구하는 애정어린 독설이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시대 독설이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거짓말을 선의의 하얀 거짓말과 악의적인 검은 거짓말로 나눌 수 있듯이 독설도 하얀 독설과 검은 독설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움 없이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할 말을 다 쏟아내고 ‘소외된 이웃’에게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것이 전자라면 단순히 웃음의 소재로 삼기 위해 남의 약점을 물어뜯고 사회적 약자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독설을 쏟아내는 것이 후자일 것이다.

그런데 검은 독설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동안 하얀 독설을 하는 사람들은 비판의 표적이 된다. 진중권 교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트위터 투표를 통해 뽑아 본 ‘우리 새 최고의 독설가’는 진교수였다. 약 70%의 트위터 이용자가 그를 꼽았는데 독설계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다. 신해철 김구라 방시혁 박완규 왕비호 이승철 등 내로라하는 연예인들도 그에 비하면 그저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그의 독설은 독보적이다.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있고 이익을 구하려는 계산이 없고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말한다. 그러나 이런 대가로 그가 듣는 평가는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 한다. 그러나 가난을 만드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한다”라고 했던 돔 헬더 까마라 주교가 말했다. 그의 말처럼 ‘소외된 이웃’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 아니라 한 단계 진보한 ‘사회지도층 인사’에 대한 까칠한 독설을 한 대가로 진교수에게 돌아온 것은 ‘왕따’였다.

블로그 ‘독설닷컴’에서 사회적 독설을 남발한 덕에 갖은 악플러들에게 시달렸다. 우파들은 ‘빨갱이’라고 비난했고 좌파들은 ‘사이비’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눞히고 제단하려 했다. 남에게 독설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의 독설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독설가는 어떤 독설로부터도 열려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사회적 독설을 하는 것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할 수 있다. 서울대 김세균 교수는 “둘 다 자선사업을 행했다. 그러나 헬렌 켈러는 동시에 자선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한 반면, 햅번은 자선사업만을 했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찬사를 받았지만 자선이 필요한 사회를 유지시키는 데에 기여했다”라고 지적하며 ‘사회적 독설’을 역설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사회적 독설'은 평가를 해줄 만하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은 흔히 말하듯 점잖게 공자같은 말씀만 한다. 왜? 다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니까, 까칠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자기가 잘난 줄 아는 사람들은 잘 삐친다. 그런데 조국 교수는 따끔하게 할 말 한다. 최근에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에 대해서도 학생들의 연쇄 자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독설이 풍년인 시대, 마지막으로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독설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빠른 판단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 과정을 생략하고 독설가에 의지해 섣부르게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독설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의적인 선전 선동에 이용될 수 있다. 독설을 즐기되 매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야 한다.


주> 월간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아래는 조국 교수님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린
'서남표 총장 사퇴 요구의 변'입니다.


조국 교수, "서남표 총장 사퇴 요구의 변"

1. 다른 대학에서도 학점경쟁과 학생자살이 진행되고 있는데, 왜 유독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냐고? 서 총장이 유례가 없는 경쟁과 강박의 제도를 창설하여 이를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부쳤고, 이러한 방식이 대학개혁의 모범인 것처럼 상찬되고 있기에.
 
2. 내가 '반KAIST 주의자'라고? 나는 과학기술발전에 기여한 KAIST(인)의 역할에 존경심을 갖고 있음. 그러나 KAIST가 국비지원을 가지고 '학점기계'가 아닌 '과학영재'를 키워야 한다고 믿기에, 서남표식 개혁을 비판한 것임.
 
3. 법학자가 과학기술에 대하여 뭘 안다고 간섭이냐고? 전공을 떠나 대학의 발전방향과 교육의 방법에 대해서는 교수라면 누구나 얘기할 수 있음. '직업윤리'의 문제임. 물론 시민 역시 동 주제에 대하여 발언할 권리가 있음.
 
4. 서 총장만 물러가면 해결되냐고? 물론 아님. 서 총장에게 '원한'이 있냐고? 만나본 적도 없음. 그러나 사태의 최고책임자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진 KAIST 구성원들도 방향을 재설정하기란 어려움은 분명함.
 
5. 학생자살에는 제도 외에 개인적 이유가 있다고? 물론 자살의 원인은 복합적임. 그러나 우울증 등 개인적 이유가 증폭되도록 만든 제도를 외면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음. 학내 카운셀링제도를 도입하는 방법 외에 경쟁과 강박의 제도를 개폐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