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여름, 열심히 그림을 팔았다.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에 항의해 벌인 6개월 동안의 파업을 끝내고 <시사IN> 창간을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창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후원 전시회를 열었는데, 문화부 기자를 오래 한 내가 담당이 되었다.
그림을 파는 것도 어려웠지만 팔 그림을 마련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온갖 인맥과 인연을 다 동원해서 그림을 모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까지 도와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그림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팔았다.
제법 팔았다. 칠칠치 못해서 중간에 사기를 당하기도 했지만 5000만원 정도 남겨서 <시사IN> 창간기금에 보탰다. 후원 전시회에서 팔지 못한 그림은 경매로 ‘땡처리’를 했는데, 그러고도 처리하지 못한 몇몇 그림은 떠맡아 구입해 지인들 결혼식이나 집들이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래도 다 팔지는 못했다. 아직도 <시사IN> 지하 창고에는 그때 팔지 못한 그림이 남아 있다.
4년 후 여름, 이번에는 책이다. 열심히 책을 모으고 있다. ‘좋은 책을 모아 책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취지의 ‘기적의 책꽂이’ 캠페인을 맡았다. 열심히 모았다. 한 달 만에 7000권 정도를 모았다. 두 달 동안 1만 권을 모으는 것이 목표였는데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4년 전 그림 모을 때도 참 신이 났는데, 이번에는 더 신이 났다.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 이렇게 엔도르핀을 돌게 할 줄은 몰랐다.
자나 깨나 책이었다. 어디 책 줄 사람 없나, 어디 책 줄 출판사 없나, 책 기증할 저자 없나, 두리번거렸다. 취재원을 만날 때에도 뒤에 있는 책장을 보았다. 모든 만남의 결론은 ‘책 좀 기증하시죠’라는 것이었다. 책을 기증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야 자리를 털곤 했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회사에는 출판사에서 보낸 책이 제법 있다. 회사를 어슬렁거리는 책은 잽싸게 낚아채서 편집국에 있는 ‘기적의 책꽂이’에 꽂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책꽂이에서 열심히 책을 솎아냈다. 책 욕심이 제법 있어 그동안 책을 꽤 모아놓았는데, 아낌없이 주저 없이 후회 없이 마구 뽑았다. 한번 훑어보고라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곤 했지만, 대부분 보지 못하고 그냥 보냈다. 그렇게 몇 상자를 보냈다. 그렇게 책 솎아내기와 책장 가지치기를 마치고 생각했다. ‘이제 책 도둑질만 남았구나.’
간단한 '기적의 책꽂이' 설명
'기적의 책꽂이' 취지는 간단합니다.
남는 책을 모아서 책이 꼭 필요한 곳에 전달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소통하자는 부차적인 목표도 있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책 정거장'에 책을 보내주시면 선별해서 모아둡니다.
(서울밝은세상안과, 트래블메이트, 카페바인, 시사IN 편집국이 책 정거장입니다.)
그리고 책이 필요한 곳으로부터 신청을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정된 곳에 책을 보내줍니다.
모아서 / 정리하고 / 보내준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다른 봉사 프로젝트와 결합하는 모형입니다.
'기적의 책꽂이'는 앱스토어가 되고 이들은 어플리케이션이 되는 것입니다.
주로 독서 멘토링을 하는 곳이 어플리케이션이 되는데,
포이동 재건마을 '인연공부방'에 책을 기증할 때는 '평화캠프'를 통해
강원도 양구배꼽산촌유학 체험센터에 책을 기증할 때는 '아름다운배움'을 통해
책을 기증해서 잘 활용되도록 했습니다.
'기적의 책꽂이'는 시즌제로 진행됩니다.
시즌1의 경우 9월2일까지 책을 모아 9월3일에 전달합니다.
시즌2의 경우 10월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시즌 중간에도 책은 계속 모읍니다)
'기적의 책꽂이' 시즌1의 목표는 만 권이었는데,
벌써 만5천 권을 돌파했습니다.
아마 2만 권 정도 모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끝까지 달려보겠습니다.
포이동 재건마을 '인연공부방'의 신지혜 선생님
주> 다음은 <기적의 책꽂이> 경과입니다.
# 시사IN 204호
포이동 재건마을 ‘인연 공부방’에 기적의 책 전달
지난 6월12일,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일대의 판자촌, 포이동 재건마을에 화재가 났다. 불로 전체 96가구 중 75가구가 피해를 보았다. 주민들은 대부분 1980년대 강제 이주당한 철거민들이었다.
수십 년 동안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은 ‘투명인간’처럼 살았다. 아무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화재가 났다. 화마는 더 빼앗을 수 없는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심했다. 아무도 관심을 써주지 않았다. 심지어 강남구청조차도. 강남구청은 예산이 부족해 서울시에 지원 요청을 했는데 답이 지연된다며 화재 잔해도 치워주지 않아 주민이 직접 치워야 했다.
8월3일, 재건마을을 찾았다. 화재 이후 주민의 4분의 3은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공동생활 중인 마을 주민들이 재건을 위해 화재 발생 50일 만에 맨 처음 지은 가건물은 아이들 공부방이었다. 옆에 할아버지·할머니를 위한 방도 마련했지만 아이들 공부방은 가장 크게 짓고 수세식 변기와 싱크대까지 마련해주었다. 공부방과 경로당을 먼저 지은 것은 주민들이 함께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포이동 재건마을에는 초등학생 세 명, 중학생 네 명, 고등학생 세 명이 있다. 활동가들이 이 학생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8월1~3일 사흘 동안은 평화캠프가 주최한 여름 수련회에 참여 중이었다. 신지혜 활동가는 “아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가 컸다. 무심코 내뱉는 말 중에 깊은 상처가 읽혔다”라고 말했다.
포이동 화재 관련 사진전이 열리는 아이들 공부방은 아직 마무리 작업이 덜된 상태였다. 대책위원회 조철순 위원장은 하루빨리 아이들 공부방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이곳에 MC 김제동씨가 기증한 돈으로 구입한 ‘김제동 책꽂이’를 놓고 ‘기적의 책꽂이’에서 모은 책을 1000권 정도 기증할 예정이다. 더불어 트래블메이트 책 정거장에 익명의 누군가가 기증한 피아노도 이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포이동 재건마을 외에 ‘기적의 책꽂이’는 농어촌 아이들의 독서 교육을 위해 ‘장돌뱅이 공부방’을 운영하는 ‘아름다운 배움’ 봉사 팀도 지원한다. 양구산촌유학센터에서 8월8~17일 열흘간 양구 지역 중학생들에게 독서 지도를 하는데, 이곳에도 책을 지원할 예정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자녀들을 위해서도 봉사자들이 공부방을 만들고 있는데 이곳에도 조만간 책을 기증할 예정이다. 8월4일 현재, ‘기적의 책꽂이’에는 책 8000여 권이 모였다.
'기적의 책꽂이'에 기증된 책을 정리 중인 자원봉사자들.
# 시사IN 203호
박재범, JYJ 팬클럽도 ‘기적의 책꽂이’에 동참
‘좋은 책을 모아 책이 꼭 필요한 곳에 전해주자’라는 <시사IN> 캠페인 ‘기적의 책꽂이’가 첫 번째 책 배달을 앞두고 있다. 소외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독서 지도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 모임 ‘아름다운 배움’ 팀을 통해 강원도 양구산촌유학센터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들은 8월7일부터 열흘 동안 현지 독서 지도 활동을 하는데 이때 배달된다. 그동안 자체 보유한 장서로 청소년들을 교육해왔으나 책을 나눠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기적의 책꽂이’를 통해 이것이 가능해졌다.
8월20일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자녀들이 ‘기적의 책꽂이’의 책 정거장 구실을 하는 압구정동 서울밝은세상안과를 찾을 예정이다. 가수 박혜경씨와 레몬트리공작단 자원봉사자들이 그동안 돌봐온 아이들인데, 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책을 직접 뽑아갈 수 있게 해줄 계획이다. 원래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을 위해 조그만 공부방을 마련해줄 예정이었는데, 일단 책을 먼저 나눠주고 읽힌 뒤 공부방이 마련되면 책꽂이에 모으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시사IN> 홈페이지 등으로 책을 받을 곳을 신청받고 있는데 다양한 사연이 올라오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를 비롯해, 가정해체·학대 등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돌보는 ‘참사랑그룹홈’, 그리고 사정이 어려운 지역아동센터와 청소년 문화센터에서도 문의가 줄을 잇는다.
성인을 위한 책을 원하는 곳도 많았다. 특히 미혼모 지원시설에서 요청이 많았는데, 책꽂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태연 목사는 “힘을 줄 수 있는 책은 물론이고 자활 교육에 필요한 실무 교재가 절실하다. 유아용 서적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 서울 영등포 노숙인상담보호센터 ‘햇살보금자리’는 삶의 희망이 되는 책을, 경기도 과천 인서울컴퓨터학원은 중국 동포 아주머니들에게 한국어 재교육을 하는 데 필요한 교재 등을 요청했다.
해외에서도 요청이 오고 있다. 네팔에서는 박토푸르 희망학교 학생들을 위한 책을 부탁한다는 요청이 왔다. 이 학교는 근처 벽돌공장 노동자의 자녀를 위해 세워졌다. 최하위 계층 자녀가 대부분인지라 미취학 아동부터 청소년까지 대부분 학교를 가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한다고 한다. 이 외에 일본 대지진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 등을 도와주자는 의견도 올라왔다.
책 기증받을 곳은 앞으로도 계속 신청을 받는다. 9월2일까지 ‘기적의 책꽂이’ 시즌1을 마친 뒤에 가을에 시즌2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책을 신청한 곳은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방문해 어떤 곳인지를 확인하고, ‘김제동 책꽂이’를 미리 설치한 뒤 9월3~4일 이틀간 책을 전달할 예정이다.
7월29일까지 기적의 책꽂이에는 6000여 권이 기증되었다. 폭우 피해가 심했던 7월27~28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15~20상자 정도 책이 계속 모였다. 지난주는 가수 박재범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동참하면서, 해외 팬들까지 책을 보내주고 있다.
기적의 책꽂이에 기적이 줄을 잇고 있다
@ 시사IN 202호
'기적의 책꽂이'에 책을 가장 많이 기증한 사람은?
<시사IN> 창간 200호 기념 프로젝트 ‘기적의 책꽂이’가 순항 중이다. 남는 책을 모아 필요한 곳에 주자는 ‘책 헌혈’ 이벤트에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7월22일 현재 기증된 책이 3000권을 넘어섰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열리는 자원봉사자 모임에도 지난 5주간 100여 명이 참석했다.
‘기적의 책꽂이’ 자원봉사자 모임의 첫 번째 원칙은 모일 때 책을 가져오는 것이다. 기자 또한 세 번에 걸쳐 책을 기증했다. 책 욕심이 있어서 읽지 않더라도 집에 책을 쌓아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기증할 책을 골라내고 나니 집안 분위기도 훨씬 산뜻해졌다. 솎아내기와 가지치기가 채소와 과일을 더 영글게 만들듯 책꽂이 또한 ‘책 창고’에서 매력적인 ‘책 진열대’로 거듭났다.
다른 기증자도 책과 새롭게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모임에 참석한 김지은씨는 “책을 정리하면서 어릴 적 꿈을 새로이 발견하는 경험을 했다. 이 책을 받는 사람도 나처럼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정하씨는 “이 책을 읽으며 잡념을 이겨냈다. 내 책을 받는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헌혈이 환자의 몸을 소생시킨다면 ‘책 헌혈’은 영혼을 소생시킨다. 그리고 기증자의 영혼도 맑게 해준다. 임경희씨는 “‘기적’은 절대자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라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의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헌혈을 주기적으로 하는 사람처럼 책 기부가 습관이 된 사람도 나타났다. 조건상씨를 비롯해 여러 기증자가 몇 번에 걸쳐 책을 기부했다. 박지인씨나 김남정씨는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해 새 책을 바로 기부하기도 했다.
기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기적의 책꽂이’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책을 가장 많이 기증했다.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는 서울밝은세상안과 이제명 원장은 어린이 책 열 상자를 기증해 최다 기증자가 되었다. 실무를 맡고 있는 김진우 기획실장도 쌍둥이 자녀가 보던 어린이 책 세 상자를 기증했다.
재능을 기부하는 이도 있었다. 트위터 차 모임을 이끄는 김나희씨는 자원봉사자 모임에 차를 가져와 대접했고, 소믈리에 한상돈씨는 와인을 준비해 시음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공인회계사 최지혜씨는 회계를 맡아주기로 했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기적의 책꽂이’의 PI(Project Identity)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도서관 사서처럼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소병문·권현미·서가진 씨 등은 책 분류를 돕고 있다.
8월부터는 책 기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책을 기부할 곳은 김성주씨를 중심으로 한 답사팀이 물색 중이다. 김씨는 “먼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자녀를 초대해 원하는 책을 골라가게 할 예정이다. 원래 공부방이 생기면 기증하려 했지만 공부방 마련이 당분간 어려울 것 같아서 책 먼저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기적의 책꽂이’에 책을 기부하고 싶은 분은 기증할 책을 보내주시면 됩니다.
매주 목요일에는 ‘번개 모임’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시사IN> 홈페이지를 참조해주십시오.
책 보낼 곳
서울밝은세상안과(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65-1 한양타운 6층/담당자 이종수/문의:02-3443-0880, 070-7418-4211)
트래블메이트(서울 동작구 신대방1동 692-2 이메이트빌딩 1층/ 02-833-4165)
카페바인(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2-7 2층/ 070-8759-8432)
<시사IN> 편집국(서울 종로구 교북동 11-1 부귀빌딩 6층/02-3700-3200)
*서울밝은세상안과는 ‘착불 택배’ 가능합니다.
‘기적의 책꽂이’ 관련 모임
기적의 책꽂이 블로그 (http://poisontongue.sisain.co.kr)
책을 기증받고 싶으신 곳은 이곳에 남겨주세요 =>
http://bit.ly/lvlEBn
# 책을 기부받을 곳에 책꽂이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를 마련하기 위한 기금도 모금하고 있습니다.
김제동씨가 천만원을 기증해서 시즌1 책꽂이값은 어느 정도 확보했습니다.
082-072621-01-019 (기업은행 고재열)
아래는 '기적의 책꽂이'에 책을 기증할 수 있는 책 정거장입니다.
# 책배달 자원봉사자를 구합니다.
9월3일 2만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전달해야 합니다.
트럭/승합차/SUV 등 일단 차가 많이 필요합니다.
(1톤 트럭의 경우 3천~4천권, 승합차 1천5백~2천권 정도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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