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18년째 살고 있는 프랑스인 벵자맹 주아노 씨와 중심가를 함께 걸었다. 박원순 시장의 문화 정책에 대해서 타자의 시선으로 현장에서 평가해보자는 의도였다. 박원순 시장이 만드는 서울의 모습이 궁금하다는 그는 서울이 그동안 ‘젊은이를 위한 도시’였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만드는 '마을 공동체'가 가능할지, 오세훈 시장의 정책과 비교하고 서울과 파리의 차이점도 비교했다.
오세훈의 디자인 서울 vs 박원순의 소셜디자인 서울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을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4300억원을 들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설을 추진했다. 반면 자신의 직업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했던 박원순 시장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대표적인 전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유형의 디자인을 통해 서울을 세련된 도시로 만들고자 했던 오 전 시장과 무형의 사회 시스템 디자인을 통해 삶의 생태계를 재구축하려는 박 시장의 철학은 극과 극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을 복원하고 버스 중앙차로제를 시행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광화문광장을 만들고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벌였다. 박원순 시장은 어떤 업적을 남길 것인가? 일단 대규모 토목사업은 벌이지 않을 것 같다.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나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대해서는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가장 관심을 두었던 ‘마을 만들기’를 서울로 확장하겠다고도 했다.
박원순이 그리는 서울은 아직 스케치 작업 중이다. 취임 6개월 동안 그는 열심히 ‘청책회(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는 모임)’를 하고 다녔다. 청책회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박 시장은 관련 부서에 제안 내용을 검토하고 기획안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각 부서에서 만든 현황 파악 패널과 정책에 대한 여러 기획안을 모은 파일이 시장실을 가득 채웠다. 박 시장의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십’에 시청 직원들은 버거워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골조를 세우고 오세훈 전 시장이 인테리어를 마무리한 서울을 박원순 시장이 어떻게 속을 채울지 궁금하다는 프랑스인 벵자맹 주아노 씨와 서울 시내 중심가를 함께 걸었다. 서울에 18년째 살고 있는 벵자맹 씨는 <미슐랭 가이드>의 한국편 ‘그린가이드’(여행정보) 편집에 참여하기도 한 서울통이다. 서울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써서 프랑스에 한국을 소개했다.
"처음 왔을 때 서울은 자동차들의 도시였다"
프랑스문화원에서 시작한 여정의 첫 번째 탐방 대상은 복원 중인 남대문이었다. 벵자맹 씨는 남대문에 대한 관리체계 변화가 바로 서울시 문화정책의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 서울에 왔을 때 남대문은 섬이었다. 자동차로 고립되어 있었다. 서울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가 사는 도시였다. 남대문은 자동차에 둘러싸여 사람이 접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안내판도 그 안에 있어서 읽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이었을 때 남대문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비로소 시민들이 남대문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서울성곽 복원 사업에 역점을 두고 성곽길을 조성해 시민 편의시설로 만들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성곽 복원 사업을 이어받기로 했다. 18㎞의 서울성곽을 단계적으로 복원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도모한다.
서울시청으로 이동했다. 새 청사를 짓는 동안 서울시 공무원들은 다산플라자 등 서소문 별관에서 주로 일한다. 이곳에서 먼저 공정무역 커피를 파는 카페 ‘뜨락’을 둘러보았다. 박 시장은 공정무역이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시장실 앞에 전시돼 있다는 사회적 기업 제품을 보기 위해 다산플라자 7층으로 올라갔다. 전시품은 공예품이었다. 비서실 직원들은 전시품이 계속 바뀐다며 이번에는 ‘공예도시 서울’을 홍보하기 위해 전통 공예품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했다.
감기 몸살로 스케줄 취소한 박원순 시장 "들어오세요~~~"
벵자맹 씨와 서울 탐방 중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시장실을 둘러볼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박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다며 알아보겠다고 들어간 비서실 직원은 즉석에서 시장 면담까지 주선해주었다. 감기 몸살 때문에 외부 일정을 취소해 잠깐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장실에는 각종 서류와 자료 그리고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갈라진 의견을 합치자는 의미에서 양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든 책장에는 서류철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서울시 문화탐방을 하고 있다고 하자 박 시장은 파일을 하나하나 꺼내 정책들을 설명했다. ‘근대 외국인 유적’ ‘한양도성 복원’ ‘남산 안기부 터 개선’ ‘나이트 라이프 서울’ 등이 소주제별로 묶여 있었다.
돌고래 제돌이 방사 관련 서류철에는 박 시장의 생각이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가 담겨 있었다. 1994년에 이미 ‘동물권의 전개와 한국인의 동물 인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던 박 시장이 제돌이 방사를 일회성 이벤트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관련 서류의 마지막 문구가 눈에 띄었다. ‘동물이 행복한 서울’이라는 구절로 끝이 났다.
담소를 나누며 벵자맹 씨가 “서울은 사는 도시가 아니라 이용하는 도시다. 서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서울시민을 100여 명 이상 인터뷰했다. 그들 중 90% 이상이 은퇴 후에는 서울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서울은 사는 도시가 맞다.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산다”라고 일단 농을 친 뒤, “앞으로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벵자맹 씨와 같은 외국인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 서울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주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살 만한 도시란 어떤 도시일까? 벵자맹 씨는 서울과 파리를 비교해서 설명했다. “서울 사람들은 주말에 시 바깥으로 나가려고 안달한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을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리 사람들은 오히려 시 안으로 들어간다. 파리에 가장 즐길 것이 많은데 왜 나가냐는 것이다. 파리에 살면서 주말에 파리 밖으로 나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울은 전통의 껍데기만 쓰고 내용물은 버린다"
시장실을 나와 잠시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렀다. 현 서울시립미술관은 옛 대법원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벵자맹 씨는 겉은 보전하면서 속은 전부 뜯어고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옛날 건물을 어떻게 쓰느냐가 현재의 철학을 보여준다.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쓴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외관은 전통을 유지하면서 안은 전부 현대식으로 바꾼다. 모순적 역사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전통을 이용하면서 부정하는 것이다.”
서울시 옛 청사를 보면서도 그는 한국의 역사 지우기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의 폐해를 경험한 유럽 국가들은 ‘기억의 의무’를 중시한다. 일제강점기 건물을 없앤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의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정확히 분석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위용을 드러낸 서울시 새 청사 앞에 서자 벵자맹 씨가 물었다. 새 청사가 무엇처럼 보이느냐는 것이었다. 파도를 나타낸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쓰나미’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쓰나미가 일제강점기 건물인 서울시 옛 청사를 삼키듯이 뒤에 서 있다. 기묘한 형상인데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대로 바라보니 정말 그랬다.
"서울시 신청사는 거대한 쓰나미같다"
화려한 앞모습에 비해 새 청사의 뒷모습은 초라했다. 지극히 평범했다. 그것을 보고 벵자맹 씨는 “서울은 앞모습의 도시다. 뒷모습을 보면 마치 마법이 사라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화려한 무대 앞과 초라한 무대 뒤 모습처럼 선명하게 대비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주 다른 이벤트가 열리는 서울광장을 서울이 스펙터클한 도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더 자극적인 볼거리를 위해 수시로 부수고 짓는 스펙터클한 도시다. 음악분수가 그렇고 다리에 비추는 조명이 그렇고 이런 이벤트 무대가 그렇다”라고 말했다.
서울광장의 잔디를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의 광장은 복합 공간으로 재해석되었다. 서울은 도시계획이 강하게 집행되는 도시임에도 광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선적이다.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 것만도 대단한 발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계천은 건물 밖에 있는 복도"
발걸음을 청계천으로 향했다. 많은 시민이 청계천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그는 복원된 청계천을 파리 센 강변의 ‘파리비치’와 비교했다. “청계천과 파리비치의 가장 큰 차이는 쉼표가 없다는 것이다. 파리비치는 카페를 비롯해 곳곳에 쉼표가 있다. 그런데 청계천은 지나가는 복도와 같다. 인증 사진을 찍고 그냥 지나가는 곳이다. 한 번은 오겠지만 두 번 찾을 이유는 없다.”
한국관광공사 앞에서 그는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서울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은 메이팅 도시다. ‘젊은이를 위한 도시’다. 결혼이나 연애를 위해 짝을 만나는 도시다. 홍대 앞·이태원·강남역·청담동…. 도시의 유흥 공간에는 젊은 사람밖에 없다. 서울은 젊은 사람이 노는 도시다. 이 잔치는 서른다섯쯤이면 끝이 난다. 그러면 더 이상 재미있는 도시가 아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도착했다. 이곳은 오세훈 전 시장의 대선 승부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대권을 잡은 것처럼 DDP로 디자인서울을 구축해 대선에 뛰어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4300여 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광화문광장이 세상에서 가장 큰 중앙분리대라는 비난을 받았던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전시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좋든 싫든 박원순 시장은 DDP의 구원투수가 되어야 했다. 지난 4월24일 박 시장은 DDP를 위한 청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발표자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바로 문화연대 이원재 사무처장이었다. 문화연대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구축에 가장 반대했던 단체다. 그런 단체의 반대의견까지 수렴하려고 노력한 셈이다.
탐방을 마치며 박원순 시장의 시정과 문화정책은 아직 어떤 건더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자 벵자맹 씨가 충고했다. “한국 사람들은 ‘한마디로’ 설명해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세상에 한마디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한마디로 정의되는 것은 한마디로 오해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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