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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기자들, PD들

언론인이 되려는 대학생들에게 주는 충고

by 독설닷컴, 여행감독1호 2013. 11. 8.



주)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퍼가기를 많이 하시네요. 

괜히 꼰대같은 얘기나 한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기자가 되려고 하는 모교 후배들에게 해주었던 얘기인데, 

혹시나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 인생 3모작 시대다. 평생 직업은 없다. 평생 직업으로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1모작 직업으로 기자는 할 만한 직업이다. 세상과의 스킨십이 깊고 넓기 때문이다. 세상을 몸으로 느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그 세상을 바꾸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다. 


@ 잘못된 2모작의 사례 


http://poisontongue.sisain.co.kr/1289


이명박정부가 남긴 아주 나쁜 선례 중 하나는 정권에 부역한 언론인이 출세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프레스 프렌들리' 하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프렌들리'한 언론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으로 '프레스 프렌들리'를 달성했습니다. 

다음은 제가 파악한 이명박 정부 폴리널리스트 88인 명단입니다. 누군가는 기록해야 할 것 같아 제가 그 악역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잘 나가는 언론인 88인 명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시에 가장 부끄러운 언론인 88인의 명단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인이 어느날 갑자기 권력 옆으로 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전반전에 심판을 봤던 사람이 후반전에 상대팀 선수로 출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전반전에 그 사람이 공정하게 심판을 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 기자를 하면 기사 안팎을 볼 수 있다. 어떤 훌륭한 사람도 기사처럼 훌륭하지 않고 어떤 흉악법도 기사만큼 흉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의 진실에 좀 더 근접할 수 있다. 


'김정일 사망설', 평양에 직접 다녀와 보니...


http://poisontongue.sisain.co.kr/331



-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를 거치면서, 기자의 정체성이 바뀌고 있다. 시대는 ‘이슈 코디네이터’ 역할을 기자에게 요구한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안’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으로 관심을 옮기는 일을 기자가 해야 한다. 


-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말하던 시대에서 ‘모든 시민은 미디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로 진화했다. 사람들은 뉴스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에 모두 참여하는 3방향 소통을 하고 있다. 모든 시민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작가를 자처하는 시대가 진정한 사진작가를 돋보이게 하듯이 모든 시민이 블로거로 기자를 자처한 지금이 진정한 기자를 돋보이게 할 것이다. 


- 멀티미디어 시대라는 것은 멀티미디어형 기자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같은 일을 더 잘할 입사지원자보다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입사지원자를 선호한다. 기자는 정보전의 최전선에 선 사람이다. 최대한 다양한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것이 좋다. 


@ 언론노조위원장 딸의 기록 정신 


http://poisontongue.sisain.co.kr/1026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경찰에 긴급 체포될 때 초등학생 둘째딸이 이 모습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초등학생 딸이 찍은 아빠의 체포 장면'이라는 글로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다. 기록 정신은 중요하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여론이 환기 되어 아빠를 구속하려던 경찰의 움직임에 급 제동이 걸렸다. 중요한 순간 효과적인 미디어 활용은 결과를 정반대로 바꾸기도 한다.  


"최상재 위원장 둘째딸입니다. 제가 진짜 찍은사진 맞구요..

경찰 3명이 와서 아빠를 잡아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제 힘으로는 안될 것이면 물증이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찍었습니다. 사실 저도 우왕 좌왕할때 찍은 사진이어서...

저도 초등학생이지만 알건 압니다. 아빠께서 이런 일 하시는데 모르겠습니까? 힘내라는 응원말들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겠습니다." 


- 한겨레21은 진보를 ‘지향’하는 매체고 시사IN은 상식을 ‘지탱’하는 매체다. 지향점이 다르고 지탱하는 가치가 다르다. 상식은 과거의 경험의 총체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암묵적 합의이며 희망찬 미래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어쩌면 보수적인 일일 수도 있다. 


- 저널리스트는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 있다. 항상 비주류에 서서 주류를 봐야지, 주류의 시선에서 비주류를 봐서는 안 된다. 주류를 욕망하는 순간 저널리즘은 왜곡된다. 


@ 조중동 종편에 대해서...


http://poisontongue.sisain.co.kr/1857


나는 조중동 종편을 정권의 장물이라고 생각한다. 장물은 알고 구입할 경우, 장물취득죄가 된다. 모르고 구입하면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예의다.

조중동 종편 출연에 대해서 제 기본 입장은 하던 말던 '관심없다'이다. 지상파와 케이블에 밀리는 방송 3부리그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가타부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존재감도 없는 방송의 존재감도 없는 사람들이니.

내가 중요시하는 것은 조중동 종편에 출연한다는 '액션'보다, 출연하면서 보여주는 '애티튜드'이다. 그냥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나는 종편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관심없다, 정도를 넘어서 이를 비판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희롱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조중동 종편 출연에 대해서... 연예인은 연예인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지식인은 지식인의 입장이 있을 것이고, 언론인은 언론인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중 언론인에게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종편 해악을 몰라도 죄다.

일흔이 넘은 동아투위 선배님들과 예순이 넘은 80년 해직언론인들이 조중동 종편의 불법탈법편법을 성토하며 한 겨울에 거리로 나섰다. 그런데 후배들이 종편 출범하니까 옳다꾸나 하고 숟가락을 얹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고 본다. 내 생각은 그렇다.



- 저널리즘은 입체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싫은 사람의 장점을 보고 좋은 사람의 단점을 보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개인적인 글을 올릴 때는 나 역시 싫은 사람의 싫은 이유를 적고 좋은 사람의 좋은 이유를 적는다. 그러나 기사를 쓸 때는 다르다.)


- 여러분이 기자가 된 순간, 세상과 약속을 한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다’라고. 누군가 안 좋은 소리를 해야 하고, 누군가 까칠한 역할을 맡아야 할 때, 그것은 당신이 맡아야 할 일이다. 


- 언론 자유는 ‘외부 투쟁’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내부 투쟁’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조중동 기자들에게는 이 ‘내부 투쟁’ 프레임이 없기 때문에 회사에 종속되는 것이다. 


@ 해직언론인들의 '해직일기' 중에서...


http://poisontongue.sisain.co.kr/1874


“국민일보 주식회사가 ‘해사행위’ 등을 이유로 나를 해고한 것은 2011년 10월 13일이었다. 해고가 확정되자 조합원 120여명이 “우리 모두가 조상운이다. 우리 모두를 해고하라”고 공분했다. 고마웠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외침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종면 전 위원장, 이근행 전 위원장의 사례에서 보듯 ‘끝까지 지켜지는 노조 위원장’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나는 확인하고 다짐했다. 아직 이 파업은 끝나지 않았다고. 끝날 때까지는 결코 끝난 게 아니라고. 설령 파업이 끝난다고 해도 나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저들이 믿는 하나님이 있고, 파업 조합원들이 믿는 하나님이 따로 계시는 게 아니라면 머지않아 이 싸움은 하나님의 뜻대로 끝날 것이다.“ (조상운, 전 국민일보 노조위원장)



- 맷집을 길러라.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곳이 언론이다. 당연히 의견이 다른 쪽에서 공격이 온다. 가려서 들어라. 받아들일 만한 것은 받아들이고,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무시할 것은 무시해라. 


- 세상에 중간은 없다. 오직 중간에 숨고 싶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중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위해 사고를 멈췄다는 의미다.



주) 후배들을 위해 일전에 기고했던 글이 있어 이 글도 첨부합니다.


@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려는 후배들에게



때로 진실은 불편할 때가 있다. 고려대 언론학부 후배 4명이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무크지 ‘Unknown’을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 첫 작품으로 언론학부 개명에 대해서 심층 취재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게 될 것 같아 걱정되었다. 그 ‘불편한 진실’ 앞에서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을지, 못내 걱정되었다. 


학부 재학시절 한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언론사 시험을 칠 때 서류와 필기시험에서 떨어지는 것은 여러분 책임이지만 실기시험과 면접에서 떨어지는 것은 선배와 교수들 책임이다” 수업시간에 들은 얘기였다. 선배와 교수들을 믿으라는 말이었다. 우리 사회 언론인이 특권층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언론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도 특권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중에 그 교수의 딸이 유명한 신문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교수의 딸이 서류와 필기시험은 자신의 실력으로 통과했지만 실기와 면접은 선배와 교수의 도움으로 합격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버렸다. 지금도 특권에 길들여진 그 교수의 딸이 특권층을 고발하는 기자가 아닌 특권층에 편입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기자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1년 전쯤 고대 언론학부를 취재한다는 한 대학생기자를 만났다. YTN 사태로 인해 6명의 기자가 해직당했는데, 그 중의 한 명인 조승호 기자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출신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언론학부 학생들을 만났다고 했다. 언론학부 학생회 집행부로부터 그가 들은 대답은 “YTN사태가 뭐에요?”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소식만 들은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는 소식도 들었다. 1년 후배인, MBC <무한도전>을 연출하는 김태호 PD가 특강을 하러 오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찬다는, 그리고 사진을 같이 찍고 사인을 받아가는 등 아이돌그룹 팬클럽마냥 극성을 부린다는 이야기는 바람결에 전해들었다.


학교 밖의 행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과 출신 선배 몇 명은 첨병이 되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대선 캠프에 기웃거리며 노후를 설계했던 그들은 용케 권력이 던진 뼈다귀를 받아 물었다. 그리고 더 큰 뼈다귀를 물기 위해 암중모색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다른 기자들로부터 전해들었다.


다른 학교 교수들이 이런 이명박정부의 행태를 비판하며 ‘미디어공공성포럼’을 조직했을 때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들의 이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명부를 통해 확인했다. 다행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론학회와 방송학회를 좌지우지한다는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들의 이름은 겨우 한두 명을 찾을 수 있었다. 


후배들에게 이 ‘불편한 진실’만 보라고 강권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를 외면하고 ‘달콤한 사실’만 보려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달콤한 사실’만 보면 왠지 우쭐해지고 뭔가 길이 보일 것 같은, 그 특권의 체례를 통해 뭔가 덕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길다. 한 번 기생하게 되면 영원히 기생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법칙이다. 비판을 업으로 하는 언론계는 특히 그렇다. 다행히 좋은 싹이 보인다. 후배들이 특권의식을 버리고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치기 위해 ‘Uuknown'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지를 보낸다.  

 

지난 겨울 선배들은 거리에서 송년회를 했다. 12월31일, 미디어악법 국회 상정을 막기 위해  과출신 언론인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달려 나왔다. 추운 날이었다. 한기가 들고 손이 어는 날이었다. 그러나 선배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켰다. 뒤이어 언론계에 들어올 후배들이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쓸 수 있는, 혹은 방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부디 후배들이, 자신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선배들의 치열한 기자정신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주) 대학 학보사 기자들이 '학내 언론자유 회복' 문제에 대해서 자주 문의를 해서 정리해 본 글입니다. 


길을 묻는 대학언론인에게



지난해 11월, ‘2008 대학 총학생회선거’에 관한 특집 기사를 취재했다. 기존의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두 가지 프레임, ‘운동권 총학생회에 대한 반감’ ‘학우들의 무관심’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에 함께 하지 않은 비운동권 총학생회에 대한 심판선거가 치러지면서 이전과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서 이를 기획 기사로 꾸렸다.


취재를 하면서 의아한 것이 있었다. 각 학교 총학생회에 대한 문제제기나 총학 선거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로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학보사 등 학내 언론게시판이 논쟁 무대가 아니었다. 학보사 등 학내언론은 양비론적인 기계적 비판기사만 내고 있을 뿐 총학생회 선거와 관련한 ‘공론의 장’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대학 총학생회 선거판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지만 그 변화가 학교 담장 너머로 전달되지 못했고 학우들의 관심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학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블로그(고재열의 독설닷컴)를 통해 대학언론의 문제를 짚어보기 시작했다. 심각했다. 심지어 ‘학교 비판보도는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학보사 기자로 임명되는 대학도 있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가 실렸다고 학보를 통째로 훔쳐가는 총학생회도 있었다. 어쩌다 대학언론이 요지경에 이르렀는지, 참담한 심정이었다.


학교 당국과 총학생회는 ‘회유와 협박’을 통해 대학언론을 길들이고 있었다. 장학금 취재비 회식비 등으로 학보사 기자들을 길들이는 학교가 많았다. 그런 당근을 주면서 주간교수는 기획에 관여하는 채찍을 휘둘렀다. 재정을 학생회비에 의존하는 대학언론은 총학생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재정을 무기로 총학생회가 대학언론을 기관지처럼 활용하려는 사례가 왕왕 눈에 띄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대학언론에서 언론자유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점까지 후퇴해 있었다. ‘그래봤자 기사로 쓸 수도 없는 걸’, 미리 체념하고 학교 비판기사는 아예 기획도 하지 않는 ‘자기검열’ 단계까지 이른 것 같았다. 대학언론 기자들의 어깨는 처져 있었고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외부의 압력에 대응하는 자세도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거의 자포자기에 가까웠다.


대학언론 기자들에게, 분연히 떨쳐 일어나라고 쉽게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외부의 압력에 맞서는 것은 기사 취재와 기사 작성과 같은 기자의 중요한 업무의 하나다. 직업으로서 언론인을 생각하는 대학언론 기자라면 대학언론 활동을 토해 기자의 기술 뿐만아니라 기자의 자세도 익힐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언론자유에 대한 맞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학교당국이 서라는 데로, 총학생회가 서라는 데로 앞줄을 맞춰서는 안 된다. 언론은 비판기능을 토해 집단에 기여하는 곳이다. 줄서기 강요에 따라서는 안 된다. 앞으로 나란히가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줄을 맞춰야 한다. 동료들과 옆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옆줄을 맞추고 언론의 원칙을 사수해야 한다. 내가 뒷걸음질치면 그만큼 언론자유가 후퇴한다는 각오로 옆줄을 맞춰줘야 한다. 


기자는 판단을 하는 직업이다. 어떤 것을 기사화 할 지, 어떤 부분을 취재할 지, 어떻게 기사화 할 지, 끊임없이 판단해야 한다. 기자 개인의 판단뿐만 아니라 게이트 키핑 과정을 겪으면서 남의 판단까지 곁들여진다. 뉴스는 결국 복합적인 판단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좋은 기사란 옳은 판단의 결과물이다. 옳은 판단을 하기 위해서 기자는 때로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거칠게 말해서, 불편한 판단을 감당하는 기자는 좋은 기자고 편한 판단에 안주하는 기자는 나쁜 기자다. 기자가 편해지려고 할수록 독자가 불편해지고 기자가 불편을 감수할수록 독자가 편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그러나 불편한- 판단과 나쁜 -그러나 편한- 판단은 어떻게 나뉠까? 그것은 누구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 독자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 취재원을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 경영진과 데스크를 염두하고 한 판단인지에 따라 질이 갈린다. 전자일수록 좋은 판단이고 후자일수록 나쁜 판단이다.


나쁜 판단보다 더 나쁜 것은 판단을 회피하는 것이다. 판단을 피하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것이고, 갈등을 피하는 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 논쟁을 피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것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언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기자는 판단할 때 판단해야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끝없이 되물어야 한다. 기자가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 판단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바로 상식의 나침반이다. 상식은 과거의 경험이 빚어낸 총체적 결과물이며 현재를 살아가는 약속이며 미래의 전제조건이다. 기자는 상식의 나침반에 합당한 판단을 해야 한다. 언론은 상식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관점에서 ‘대학 언론의 위기’를 짚어보자면, 대학 언론인들이 불편한 판단을 회피하면서 이 위기가 심화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교 당국의 간섭과 총학생회의 압력 등에 대해 그때그때 판단하고 행동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문제를 키웠고 간섭과 압력이 점점 더 심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학언론인들에게도 핑계는 있다. 대학 당국은 교묘한 방식으로 간섭을 정당화하고 있고 누대에 걸쳐 선배들이 방치한 문제라 이제 관행화 되어서 고치기 힘들다. 학내 언론독립 문제를 학우들이 외면하기 때문에 동력도 없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문제를 풀어야 할 주체는 ‘지금, 우리’라는 것이다.   


학내 언론독립 문제를 들여다보라는 것이 결단을 내리라는 얘기는 아니다. 판단을 유보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문제를 문제로 여기지 않는 문제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대학 사회의 상식’을 지키기 위해서 불편한 판단을 감내해야 한다. 


이쯤에서 ‘눈을 들어 선배들을 보라’라고 말하고 싶다. ‘낙하산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다 6명이 해직된 YTN 기자들을 보라(해직된 기자 중 정유신 기자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MBC <PD수첩> PD들을 보라. 이들 외에도 많은 언론인들이 언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


물론 그들은 직업언론인으로서 더 많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런 역할을 피해야 할 수많은 핑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독자를 위한, 불편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았다. 그것이 언론의 정도다.


대학 언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인의 기본자세를 물어야 한다. 기자는 판단을 하는 직업이다. 독자인 학우들을 위한 불편한 판단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불편한 판단이 모여 대학언론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대학 사회의 상식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